티베리우스 미누키우스 아우구리누스 라틴어: Tiberius Minucius Auguri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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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305년 |
출생지 | 로마 공화국 로마 |
사망지 | 보비아눔 |
지위 | 플레브스 |
국가 | 로마 공화국 |
가족 |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페수스(아들) |
참전 | 삼니움 전쟁 등 |
직업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임기 | 기원전 305년 |
전임 |
퀸투스 마르키우스 트레물루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르비나 |
동기 |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
후임 |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 마르쿠스 풀비우스 쿠르부스 파이티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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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공화국 집정관.2. 생애
고대 로마의 파트리키 가문인 미누키우스 씨족의 평민 지파인 아우구리누스 가문의 시조이다. 기원전 305년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메겔루스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된 뒤 삼니움과의 전쟁을 벌였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 따르면, 삼니움 족이 팔레네르가우 시를 공격하자, 두 집정관은 이들을 요격해 승리를 거두고 2,000명 이상의 포로를 확보했다. 이후 겔리우스 가이우스라는 이름의 삼니움 장군을 물리쳐 생포하고 6,000명의 병사를 사로잡았으며, 볼라 시를 공략했으며, 여시를 몰아 로마의 동맹 도시인 소라, 아르피눔, 케센니아를 삼니움으로부터 탈환했다고 한다.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삼니움인들은 팔레네르가우에 인접해 있는 캄파니아의 아게르 스텔라스 시를 공격했다. 메겔루스는 이에 대응해 티페르눔을 공격했고, 그는 보비아눔을 공격했다. 티페르눔에 진격한 메겔루스는 삼니움인과의 전투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인근의 고지에 숙영지를 세우고 삼니움군과 대치했다. 그러다가 야밤에 적이 방심하는 틈을 타 숙영지에 수비대를 남겨둔 뒤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동료 집정관이 있는 보비아눔으로 강행군했다. 그러면서 아우구리누스에게 자신이 가고 있으니 어서 전투를 개시하라고 독촉하는 서신을 보냈다.
아우구리누스는 서신을 받는 즉시 군대를 출격시켜 대치 중이던 삼니움군과 교전했다. 전투는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지만 양측 모두 비슷한 사상자만 거둘 뿐 승패가 좀처럼 갈리지 않았다. 이때 메겔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전장에 등장하자, 삼니움인들은 전의를 급격히 상실했다. 로마군은 그런 삼니움인들을 몰아쳐 섬멸한 뒤 다음날 보비아눔을 포위 공격해 순식간에 함락했다. 또한 메겔루스와 함께 삼니움 장군 스타티우스 겔리우스를 요격해 격파하고 겔리우스를 포함한 여러 삼니움인을 생포했다.
한편 리비우스는 한 기록에는 두 집정관이 보비아눔을 공략한 뒤 로마로 귀환하여 개선식을 거행했다고 밝혔지만, 다른 기록에는 아우구리누스가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사망했고 마르쿠스 풀비우스 쿠르부스 파이티누스가 보결 집정관으로 선임되어 메겔루스와 함께 보비아눔을 공략했다고 한다. 파스티 카피톨리니는 <개선장군 목록>에서 마르쿠스 풀비우스 쿠르부스 파이티누스가 삼니움 족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뒤 개선식을 거행한 사실만 기재되었을 뿐 그가 개선식을 거행했다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로 볼 때 리비우스의 설명대로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들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페수스는 기원전 300년 오굴니우스 법에 따라 고위 사제인 아우구르(Augur)에 선출된 최초의 평민 5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