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6 00:31:30

트레니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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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52301><colcolor=#ffffff> 리투아니아 대공국 2대 대공
트레니오타
Treniota
파일:트레니오타.jpg
출생 미상
리투아니아 대공국
사망 1264년
리투아니아 대공국
재위 리투아니아 대공국 대공
1263년 9월 12일 ~ 1264년
자녀 엘리샤 라브리셰프스키
아버지 비킨타스
어머니 민다우가스의 누이
종교 발트 신화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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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2대 대공.

2. 생애

사모가티아 공작 비킨다스와 민다우가스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이 사이의 아들이다. 1251년 아버지가 민다우가스와 전쟁을 벌이다가 트베라이 인근에서 전사한 뒤 사모기타이인들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 15세기에 익명의 저자가 중세 고지대 독일어로 집필한 <리보니아 운율 연대기(Livländische Reimchronik)>에 따르면, 그는 1260년에 튜튼 기사단의 침략을 두르베 호수에서 격파했고, 여세를 몰아 라트비아로 진군해 에스토니아 해안에 도달했으며, 마조프셰 일대를 습격했다. 이로 인해 트레니오타의 명성이 드높아지면서, 리투아니아 국왕을 자처하던 민다우가스의 입지가 점점 약해졌다. 또한 민다우가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데 비해, 그는 발트 신앙을 이어갔다.

그러던 1262년, 민다우가스의 아내 모르타가 사망했다. 민다우가스는 모르타의 장례식에 날시아 공작 다우멘타스의 아내이자 자신의 누이를 참석시킨 뒤, 그녀를 돌려보내지 않고 새 아내로 삼았다. 이에 분노한 다우멘타스는 트레니오타와 함께 민다우가스를 암살하기 위한 음모를 세웠다. 1263년 9월 12일, 민다우가스와 두 아들 루클리스, 루페이키스는 아글로나에서 트레니오타에게 암살당했다. 그 후 리투아니아 대공이 된 그는 민다우가스가 생전에 세웠던 성당을 발트 신앙의 신들을 섬기는 종교 시설로 개조했고, 성직자들을 모조리 축출했다.

이후 폴라츠크 공작 토브티빌이 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그는 이를 진압하고 토브티빌을 죽였다. 그러나 1264년, 민다우가스의 지지자들이 트레니오타를 암살하고 민다우가스의 아들 바이셀가를 새 대공으로 옹립했다.

<슬라브 성자의 전기>에 따르면, 그의 딸 엘리샤 라브리셰프스키는 아버지와는 달리 가톨릭 신앙이 투철했고, 혼탁한 속세에 있는 것을 싫어해 왕실을 떠나 네만 강의 왼쪽 기슭에 있는 황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은둔했다가 그레고리라는 수도사와 함께 테오토코스 수도원을 세우고 신앙 생활에 전념했다. 그러나 하인에게 배신당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이후 엘리사의 유물은 악마에 들린 이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고, 1805년 크림 타타르족이 수도원 인근에 이르렀다가 그냥 돌아간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에 키예프, 갈리시아 및 모든 러시아의 대주교 유제프 2세 술탄(Иосиф II Солтан)은 1514년 그녀를 성인으로 시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