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2 03:38:32

트레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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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 쿨
Tré Cool
파일:attachment/The.52nd.Annual.Grammy.Awards.CD1.HDTV.XviD-2HD.avi_001130395.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프랭크 에드윈 라이트 3세
Frank Edwin Wright III
출생 1972년 12월 9일 ([age(1972-05-04)]세)
서독 프랑크푸르트
(現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장 168cm
직업 드러머
소속 그린 데이 (1990년~현재)
악기 드럼, 퍼커션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음악성4. 여담

[clearfix]

1. 개요

1990년부터 그린 데이에 합류하여 드럼과 퍼커션을 맡고 있다. 아주 가끔 리드 보컬을 하기도 한다. 드럼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유력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에서는 트레를 ' 존 본햄(John Bonham)'과 ' 키스 문(Keith Moon)'을 떠올리게 하는 드러머이자 '그린 데이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극찬하기도 했다.[1] 그 외에도 2011년 드럼 전문 잡지 'DRUM! Magazine'에서 최고의 펑크 드러머로 선정되는 등 여러모로 실력 하나는 확실하게 인정받고 있다.

2. 생애

트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헬기 조종사였는데, 종전 후 트레의 누나와 트레를 데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윌리츠(Willits)' 시로 이사한다. 그 후 트레는 당시 친한 이웃이었던 래리 리버모어(Larry Livermore)의 권유로 12살(!)의 나이에 펑크 밴드 '더 룩아웃츠(The Lookouts)'의 드러머로서 활동하게 된다. 이때 래리가 드러머로 활동하려면 멋진 예명이 필요하다며 지어준 이름이 바로 '트레 쿨(Tré Cool)'인데, 프랑스어 "très"와 영어 "cool"을 합쳐서 만든 이름[2]이라고 한다. 그 전부터 사람들이 트레를 부를 때 사용하던 별명 "Trey"[3]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고. 여담이지만 트레는 처음엔 이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래리와 엄청 싸웠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해탈한 지 오래.

빌리 조 암스트롱과 마이크 던트를 처음 만난건 아직 그 둘이 '스위트 칠드런(Sweet Children)'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였다고 한다. 같은 'DIY 924 Gilman Street' 펑크 씬에서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마주쳤는데, 동갑내기면서 같은 씬의 고참 밴드 '더 룩아웃츠(The Lookouts)'의 드러머로 있는 트레를 보고 빌리 조가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나. 이후 '더 룩아웃츠'의 보컬이었던 래리가 독립 레코드 회사 'Lookout!'를 차리고 '스위트 칠드런'과 계약하게 되면서[4] 셋은 계속해서 친하게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1990년, 당시 그린 데이의 드러머 존 키프마이어(John Kiffmeyer)가 대학교 진학을 위해 밴드활동을 잠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빌리 조와 마이크는 래리의 권유로 트레를 그린 데이의 임시 드러머로 영입한다. 트레가 밴드의 정식 구성원으로 안착한 것은 이후의 일인데, 처음 트레를 영입했을 때만해도 서로의 사운드를 맞춰가느라 힘들어서 밴드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다고 한다. 밴드가 해체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트레는 이 기간 동안 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5]를 봐서 지역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이내 밴드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대학교 자퇴를 결정한다.

3. 음악성

그린 데이에 합류하면서부터는 마이크의 베이스 라인과의 조화를 위해 드럼 구성을 전보다 간소화하면서 리드미컬한 스타일을 도입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그전까지만 해도 좀 더 기교를 중시하는 복잡한 스타일을 지향했는데, 어느 순간 중요한 건 음악이지 악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그래서 이제는 드럼이 밴드의 사운드를 단합시키는 역할을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6]

4. 여담

  • 어째 상당히 기행(...)을 자주 벌인다. 콘서트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웃기는 표정을 지으며, 가끔 자기 자리를 이탈해서 드럼을 치기도 한다. 이상한 변장을 하고 나와 웃기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7] 거의 밴드의 개그 담당 수준이다. 1998년에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최고의 얼터너티브 비디오(Best Alternative Video)' 상을 받고는 기분이 좋아져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있는 유니버설 글로브 모형 위에 기어올라가기도 했다.
  • 여담으로 고등학교 때 무대에서 외발자전거를 타다가 낙차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 두 개의 알 중 하나가 몸속으로 들어가서 반(半)고자가 됐다고 한다. 내가 반고자라니!! 그래도 부인 사이에서 딸도 낳고 아들도 있는 걸 보면 성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1] 해당 기사 원문 발췌 : "His monstrous kick-drum wallop evokes John Bonham, while his manic fills make him punk's answer to Keith Moon. That's high praise, but he's Green Day's most potent weapon and the best reason to celebrate the trio's unexpected embrace of adulthood." 참고로 이 전부터 트레의 정열적인 드럼 연주와 넘치는 장난끼, 드럼 세트를 부수고 불태우는(...) 퍼포먼스 등은 여러면에서 키스 문과 비교되어왔다. [2] 프랑스어 "très"를 직역하면 "아주, 정말"이라는 뜻이다. 즉 이름을 영어식으로 번역하면 "very cool"이 되는데, 이를 한국식으로 의역하면 " 존나 쩔어!"(...)가 된다. [3] 트레의 본명이 '프랭크 에드윈 라이트 3세'여서 붙여진 별명. 영미권에서 이름이 'XXX 3세'인 사람들을 흔히 부르는 애칭이다. [4] 위에서도 상술되어있듯이, '스위트 칠드런'은 직후 《1,000 Hours》라는 EP판으로 데뷔하면서 현재의 '그린 데이'로 밴드명을 바꾼다. [5] 정확히 말하면 트레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GED를 땄다. 미국에서는 정규 고교 교육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이 GED를 따면 고졸 학력이 인정되어 대학교 진학이 가능해진다. [6] 사실상 펑크 락이란 장르에서 드럼은 복잡한 기교보단, 기본기에 충실한 것이 더 중요하다. 만약 기교를 중시하는 스타일을 계속 밀어 붙였다면 펑크 락이 아닌 파워 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 메탈쪽으로 전향을 했어야 됐을 것이다. [7] 예전에 한창 젊었을 때는 트레 본인이 작사·작곡한 (앨범에 히든트랙으로 삽입된) 곡들도 콘서트 장에서 가끔 불렀는데, 이제는 그런거 없다(...). 다만 가끔 콘서트에서 그린데이의 쉬어가는 곡이자 팬서비스 타임으로 유명한 "King for a Day"를 부를때, 빌리와 트레가 자리를 바꿔서 빌리가 드럼을 치고 트레가 웃기는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