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피드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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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피드족 5대 군주 Thrasaric | 트라사리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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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트라사리크 |
라틴어 | Thrasaric | |
생몰 년도 | 미상 ~ 미상 | |
재위 기간 | 488년 ~ 50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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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 기록에 전해지는 게피드족 5번째 군주.2. 행적
게피드족 4대 군주 트라우스틸라의 아들로, 488년 아버지가 테오도리크 대왕이 이끄는 동고트군과 전투를 치르다 전사한 뒤 왕위에 올랐다. 마그니우스 펠릭스 엔노디우스의 《테오도리크 대왕에 대한 찬가》에 따르면, 대다수 게피드족은 트라사리크를 지지했고, 소규모 게피드족은 군데리크를 지지했다고 한다. 일부 현대 학자들은 군데리크는 트라우스틸라의 작은 아들이었으며, 트라우스틸라 사후 게피드 땅에 대한 권력을 공유한 공동 왕이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다른 학자들은 군데리크는 군대 지휘관으로, 약탈로 먹고 살던 게피드족을 이끌었다고 본다. 엔노디우스는 군데리크가 테오도리크 대왕과 오랫동안 불화를 벌였다고 전했는데, 이로 볼 때 동고트족에 대한 게피드족 일부의 강렬한 적대감으로 인해 게피드족의 분할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500년, 게피드족 3대 군주 기스무스의 아들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트라우스틸라와 트라사리크에게 밀렸던 문두스가 성인이 된 뒤 왕위를 되찾기 위해 내전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다뉴브 강 오른쪽 강둑으로 이동한 뒤, 민병대와 강도로 구성된 대규모 군대를 모아 게피드족의 땅과 동로마 제국에 속한 지역을 모두 공격했다. 504년, 테오도리크 대왕은 488년 동고트 왕국의 영역이 되었다가 모종의 시기에 게피드족에게 다시 넘어간 시르미움을 탈환하고자 피치아 휘하 동고트군을 파견했다. 피치아는 시르미움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문두스와 연합해 트라사리크와 군데리크의 게피드 동맹군을 격파했다. 그렇게 시르미움을 확보한 동고트군은 여세를 이어가 고레움 마르기 전투에서 일리리움의 마기스테르 밀리쿰인 플라비우스 사비니아누스가 이끄는 동로마군을 격파했다. 동고트 왕국은 이 전쟁의 승리로 인해 시르미움 주변 땅을 접수했고, 판노니아와 상부 모이시아를 자국의 영토였던 싱기두눔과 합병했다.
트라사리크는 문두스-동고트 연합군에 무너진 뒤 기록상에서 사라졌으며, 게피드족은 동고트 왕국에 예속되었다. 그러다가 526년 테오도리크 대왕이 사망한 뒤 독립했고, 엘레문드가 게피드의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