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피드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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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피드족 7대 군주 Thurisind | 투리신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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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투리신드 |
라틴어 | Thurisind | |
생몰 년도 | 미상 ~ 560년 | |
재위 기간 | 548년 ~ 56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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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 기록에 전해지는 게피드족 7번째 군주.2. 행적
투리신드의 기원과 초기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548년 엘레문드가 사망한 뒤, 투리신드는 정변을 일으켜 왕좌를 장악하고 엘레문드의 아들 오스트로고타를 추방했다. 오스트로고타와 추종자들은 게피드족의 이웃 부족인 랑고바르드족으로 피신했다. 그 후 투리신드는 장남 투리시모드를 게피드 왕국의 가장 큰 도시인 시르미움의 군대 사령관으로 삼아 후계자로 공인했다.546년에서 548년 사이, 동로마 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랑고바르드족의 왕 아우도인을 설득해 다뉴브 강에 접한 옛 로마 속주인 판노니아를 접수하도록 했다. 황제는 이를 통해 판노니아를 지배하는 게피드족과 랑고바르드족이 격돌함으로써, 자국의 영토를 침탈하는 게피드족을 억제하기를 희망했다. 프로코피우스에 따르면,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37년 로마의 도시였던 시르미움을 게피드족에게 빼앗긴 것에 분노했으며, 어떻게든 보복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이후 랑고바르드족과 게피드족간의 전쟁이 벌어질 기미가 감돌았고, 랑고바르드족의 왕 아우도인과 게피드 왕국의 왕 투리신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궁정에 사절을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랑고바르드족의 편을 들어 그들을 공식적인 동맹으로 삼았고, 게피드족에게 대항해 군대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549년, 게피드족과 랑고바르드족이 전장에서 대치했다. 이때 투리신드는 아우도인에게 휴전을 제안했고, 아우도인은 이를 수락했다. 얼마 후 일리리쿰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인 요한네스가 10,000명에 달하는 기병대를 이끌고 도착했지만, 전쟁은 이미 끝났다. 요한네스는 그 대신 게피드족의 동맹 부족인 헤룰리족과 맞붙어 상당한 적병을 사살한 뒤 돌아갔다. 한편, 아우도인은 휴전을 맺는 조건으로 자신의 경쟁자이며 현재 게피드족에 망명간 힐디기스를 처단하라고 요구했다. 투리신드는 죽이는 건 거절했지만, 힐디기스가 게피드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도록 했다.
550년 게피드족과 랑고바르드족은 다시 전쟁을 재개했지만, 양자는 서로와 맞붙는 걸 껄끄러워해 대치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아우도인이 먼저 2년간 휴전하자고 제안했고, 투리신드는 받아들였다. 그 후 투리신드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압력을 행사하고자 쿠트리구르족과 동맹을 맺고 이들이 550년 또는 551년에 다뉴브 강을 건너 일리리쿰을 공격해 약탈을 자행하도록 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이에 대응해 동맹 부족인 우티구르족을 동원했고, 우티구르족은 크림 테트라크사이트 족과 연합해 쿠트리구르족의 본거지인 흑해 북서부 해안을 침공했다. 이 소식을 접한 쿠트리구르족은 발칸 반도를 급히 떠나 본거지로 돌아갔다. 하지만 투리신드는 포기하지 않고 동로마 제국을 적대하는 슬라브 계열 부족인 스클라베니족과 동맹을 맺고, 자국이 다뉴브 강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걸 이용해 스클라베니족을 동로마 제국 영토로 수송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대가를 받았다.
한편,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이탈리아의 동고트족에게 대항해 원정군을 보내려 했지만, 투리신드의 연이은 훼방으로 인해 진척이 잘 되지 않자, 투리신드와 화해하려 했다. 투리신드는 이에 응하기로 하고, 사절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내 동로마 제국과 랑고바르드족이 맺은 것과 같은 수준의 동맹을 맺고, 원로원 의원 12명이 조약을 지지하겠다고 맹세하도록 요구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이에 응했고, 551년 나르세스가 이끄는 동로마군이 이탈리아로 진군할 때 게피드족 400명이 참여했다. 그 후 552년 휴전이 만료되자 투리신드와 아우도인은 다시 전쟁을 벌였다. 동로마 제국은 랑고바르드족이 나르세스를 돕기 위해 전사 5,500명을 보내준 것에 보답해 이에 상응하는 병력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게르마누스 장군의 아들인 유스티누스와 유스티니아누스, 아라티우스, 헤룰리족의 수아르투아스, 아우도인의 처남인 아말라프리드 등으로 구성된 동로마군이 결성되었지만, 울피아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느라 대부분이 그쪽으로 이동했고, 아말라프리드가 이끄는 군대만이 랑고바르드족과 합세했다. 이후 시르미움 서쪽에서 벌어진 아스펠트 전투에서, 게피드족은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으며, 투리신드의 아들 투리시모드는 아우도인의 아들 알보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게피드족에, 제국에 복종하고 공물과 보조병을 바치며, 다키아 리펜시스와 싱기두눔 일대를 반환하는 대가로 그들의 주권을 보장해 주겠다고 제안했고, 투리신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파울 부제에 따르면, 투리신드는 장남 투리시모드를 살해한 알보인을 초대했고, 알보인은 동료 40명과 함께 투리신드의 궁정에 찾아왔다. 투리신드는 알보인과 그의 동료들을 영접하고 회를 조직해, 죽은 아들이 이전에 앉았던 자리를 알보인에게 제공했다. 투리스모드가 생전에 착용했던 무기를 돌려줬고, 투리신드는 투리스모드의 팔 갑옷을 알보인에게 돌려줬다. 이때 투리시모드의 동생 쿠니문드가 알보인에게 시비를 걸자 알보인이 응수하면서 둘이 한판 붙을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투리신드는 급히 두 사람을 말려서 진정시킨 뒤 알보인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투리신드는 560년에 사망했고, 아들 쿠니문드가 게피드족의 마지막 왕으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