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突騎施, 서돌궐의 별부.2. 상세
서돌궐의 별부로, 651년 중국 사료에 처음 언급된다. 당시 이들은 돌궐의 지배 아래 일리 계곡에 살고 있었다. 돌궐이 멸망하자 투르판과 쿠샤 지역으로 밀려온 온-오크 부족 전체를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두었다. 이는 우쉴리의 지도 아래 이루어졌다. 그에게는 ‘바가 타르칸’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그의 최전성기에는 카프간 카간의 인도 아래 다시 힘을 되찾은 돌궐의 확장을 막기 위해 당, 키르기즈 등과 동맹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우쉴리는 698년 볼슈 전투에서 돌궐의 군 사령관 톤유쿡에게 패했고, 수많은 병력이 포로로 끌려간 이래 돌궐의 봉국이 됐다.이후 711년경 볼슈 인근에서 치러진 전투에서 돌궐 제2제국에 또 다시 패했다. 우쉴리의 아들 소코는 다시 중국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돌궐과의 싸움을 앞두고 소코의 동생 체무가 반기를 들어 묵철에게 투항했다. 이 때 이미 투르기스는 오르혼 비문에 나타나듯 카라(흑) 투르기스와 사르(황) 투르기스라는 두 개의 나라로 분열되었다.
투르기스에 대한 돌궐의 지배는 오래가지 못했다.[1] 투르기스는 717년 곧바로 독립했다. 새 카간으로 초르 술루를 선택한 다수의 돌궐 부족장들은 비가가한을 버리고 술루의 치하로 들어갔다. 술루는 수도를 탈라스 북서부의 발라사군으로 옮겼다. 술루는 탈라스에서 중앙아시아로 밀고 들어오던 우마이야 왕조를 물리치기도 했다. 우마이야 왕조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이후 카라 투르기스와 사르 투르기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 738년까지 계속됐다. 결국 두 나라는 766년 카를룩이라는 또 다른 민족에 의해 멸망했다.
3. 관련 인물
[1]
이때는 돌궐이 묵철의 폭정으로 내분을 겪고 있었는데, 묵철이 바이르쿠의 난을 진압하고 돌아오다가 패잔병들에게 암살당했고
부구가한이 가한 자리에 올랐으나
퀼테긴과 묵극련에 의해 자신은 물론 묵철의 일족 모두가 죽었고 묵극련은
비가가한으로 즉위했다.
[2]
튀르기시 가서 부족의 후예인 당대의 번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