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05 14:43:21

도쿠시마 성

토쿠시마 성에서 넘어옴
파일:786-tokusima.jpg
성의 원래 모습

파일:external/www.awanavi.jp/s_tokusimatyuokoen.jpg

徳島城(1586 ~ 1869년). 지금은 도쿠시마 성터(徳島城跡)와 도쿠시마 중앙공원(徳島中央公園)이라는 명칭이 많이 쓰인다. 일본 100명성 중 하나. [1][2]
1. 개요2. 역사3. 관광4. 유적5. 기타

1. 개요

도쿠시마현 도쿠시마시 아와노쿠니(난카이도). 제곽식(梯郭式) 평산성(平山城)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하시바 히데요시 시코쿠 정벌이 끝나고 하치스카 이에마사가 아와로 입부하자마자 축성을 시작해 1586년에 완공되어 메이지 유신을 맞기까지 284년 동안 하치스카 가문의 아와, 도쿠시마 번의 통치거점으로 사용된 성이다.

2. 역사

도쿠시마 성의 전신은 호소카와 요시유키가 1385년에 쌓은 이노츠 성(渭津城)이라고 전해진다. 이노츠 성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 지는 전해지진 않지만, 아와노쿠니는 아와 호소카와 가문과 미요시 가문, 쵸소카베 가문의 지배를 거쳐 하치스카 가문의 시대에 이르게 되었다.

원래 아와는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그의 왼팔격인 하치스카 마사카츠가 수여받을 예정이었지만 마사카츠는 이를 거절하며 영지를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어 아와의 새로운 주인은 하치스카 이에마사가 되었다.[3]

이에마사는 아와를 향해 출발하여 1585년 8월, 이치노미야 성(一宮城)에 도착하였다. 이에마사는 도요토미 정권의 의향에 따라 이치노미야 성에 입성함과 거의 동시에 이노츠 성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축성을 개시했다.[4]

1586년에 성이 완공되자 이에마사는 도쿠시마 성이라 이름을 바꾸고 도쿠시마 성으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으로 아와의 통치를 시작했다.[5] 넓디 넓은 아와를 통치하기 위해 이에마사는 아홉 곳의 중요 지역을 선별하여 그 지역에 지성을 축성할 것을 명령하며 자신의 가신들을 파견하였다. 가신들은 이에마사의 명령대로 담당 지역에 도착하여 지역의 중세성을 근세성으로 개수하였고 통치에 힘쓰게 되었다.[6]

이후 이에마사는 도요토미 가문을 따라 각지를 전전하였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아와는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반환되고 자신은 추방되어 하치스카 가문 멸망의 위기를 맞이하였으나 그의 아들이었던 하치스카 요시시게(蜂須賀至鎮)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에 붙어 참전하였기에 하치스카 가문은 다시 아와를 통치할수 있게 되었다. 요시시게는 이후에도 이에야스를 따라 전공을 올려 1615년 5월에는 아와지노쿠니를 가증받아 25만 7천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요시시게의 시대 이후로 도쿠시마 성은 여러번의 개축 과정을 거쳤고 1869년 6월 24일 판적봉환이 실시되자 도쿠시마 성은 그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윽고 1875년 5월 와시노몬(鷲の門)을 제외한 성의 모든 건축물들이 해체되었다. 1905년에는 성터를 공원화 시키는 사업을 진행하였고 이내 지금의 도쿠시마 중앙공원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3. 관광

도쿠시마 성터는 도쿠시마역의 뒷편에 있기에 역에서 출발하게 되면 옛날에는 강이였던 JR 시코쿠의 선로를 육교로 넘어가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 도쿠시마 성터는 건물이란 건물이 전부 해체되어 다리와 이시가키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와시노몬 마저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불타 없어져 복원된 상태기에 성터 내에 현존 유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광지 자체로써의 매력은 정말 바닥을 기는 상태다...

성 아래 구역은 전부 공원으로 정비되어 야구라 터와 해자, 이시가키가 남아있고 고텐이 있던 자리는 오모테고텐(表御殿)을 복원시켜 도쿠시마 시립 도쿠시마 성 박물관을 설치하였으며 박물관 옆에는 옛 정원이 남아있다. 성터를 올라가면 건물은 일체 없으며 쿠루와 터와 이시가키 일부만이 남아 있는 눈물 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성을 보고 싶다면 옆동네의 마츠야마 성, 마루가메 성, 고치 성을 가도록하자. 물론 일본 100명성 스탬프 랠리가 여행 목적이라면 무조건 여기 와야 된다

4. 유적

현존 유적은 전멸한 상태지만 그 터는 유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어 현재에도 그 형태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

육교를 건너 들어가면 성문이 아닌 타이코 야구라(太鼓櫓)터에 도착하게 된다. 도착한 위치에서 왼쪽으로 가면 오모테고텐과 성터로 갈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정문터와 와시노몬을 볼 수 있다.

마스가타 형식의 문터를 지나면 게죠 바시(下乗橋)를 지나 와시노몬이 나오게 된다. 둘다 도쿠시마 성의 정문 역할을 맡았으며 폐성된 뒤에도 해체되지 않았으나 게죠 바시는 두번의 개수를 거쳐 둥근 형태를 띄던 목제 다리에서 평평한 석제 다리가 되었으며 와시노몬은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소실되어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소실된 와시노몬은 1989년 도쿠시마 시 제 100주년을 기념하여 복원돼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왼쪽으로 가면 고텐과 정원이 있던 장소가 나온다. 위에서 말한 대로 오모테고텐은 복원되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정원 또한 잘 보존되어 있기에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티켓은 박물관 내부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박물관과 정원을 전부 둘러볼 수 있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가격은 성인 기준 300엔이며 몇몇 특별전은 500엔으로 받는다. 박물관 내에는 하치스카 가문과 관련된 유물과 도쿠시마 번 시절의 이야기와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다. 일반전시 때 눈에 띄는 전시품은 번주가 사용하였다는 배, 센잔마루(千山丸)와 도쿠시마 번의 지도, 옛 도쿠시마 성의 모습을 복원한 디오라마와 성의 지도가 있으며 특별전시 때는 테마에 맞춰 각지에서 현존 서장, 유물들을 끌어모아 박물관 거의 전체를 이용하여 전시하므로 도쿠시마에 놀러 왔으면 한번쯤 들려볼 만한 박물관이다. 오모테고텐 정원은 센고쿠 ~ 에도 시대의 사람, 우에다 소고(上田宗箇)가 만들었다고 하며 규모가 작고 박물관의 바로 옆에 위치하기에 간단하게 둘러보기에 좋은 정원이다.

이제 조금 더 안쪽으로 진입하면 성터의 유적이 남아있는 시로야마(城山)의 동쪽 등산로가 나온다. 등산로는 전부 돌계단으로 정비 되어 있고 표고는 61M이기 때문에 동네 뒷산 오르는 느낌으로 둘러보면 된다. 처음으로 나오는 쿠루와는 히가시 니노마루(東二の丸)로 텐슈가 남아 있다.[7] 다시 올라가면 조그만 사당이 있는 혼마루가 나온다. 혼마루는 운동장마냥 깨끗한 상태이지만 옛날에는 관리소나 무기를 보관하는 야구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반대쪽으로는 니시 니노마루(西二の丸)와 산노마루가 있으며 이쪽으로 나오면 다시 공원에 도착하게 된다.

5. 기타

파일:external/www.awanavi.jp/s_shiroyama.jpg

일본의 성 중에서도 굉장히 심플한 나와바리를 자랑한다. 또한 강의 지류가 많은 도쿠시마 지역의 특성을 살려 스케토가와(助任川)와 테라시마가와(寺島川)를 이용해 자연적으로 해자의 기능을 담당하게 했다.

성터 내에서 패총이 확인되어 옛날에는 성터가 바다였다는 것을 알수있다

원래는 공원에 하치스카 마사카츠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으나 2차 세계대전 일본군이 자원으로 이용함에 따라 동상은 공출되어 사라졌다. 이후 1965년에 다시 동상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하치스카 이에마사 동상이다.


[1] 일본 100명성의 선발 기준들 중 도도부현마다 최소 한 개는 꼭 뽑아야 한다는 게 있었던지라 도쿠시마 성이 여기에 포함된 것일 뿐, 이 기준이 없었다면 선정되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도쿠시마현에 소재한 성들 중 일본 100명성에 선정된 곳이 여기뿐임을 미루어 볼 때, 이 동네에서는 100명성에 뽑을 만한 성이 어지간히 없었던 듯... 일본의 현존천수 열두 곳 중 무려 네 곳이 몰려 있는 시코쿠임을 감안하면 특이한 사례라 하겠다. [2] 단적으로 현재 도쿠시마 현내에서 당시 건축물이 남아있는 성터는 전혀 없다고 봐도 좋다. 일반인에게 보여줄 만한 유적이라도 존재하는 성터는 쇼즈이 성관, 이치노미야 성, 도쿠시마 성 정도로 나머지는 공사로 인해 파괴되거나 쿠루와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정도로 도쿠시마 현의 성터 유적 보존 상태는 최악을 달리는 중이다. [3] 마사카츠는 계속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보좌하다 다음 년인 1586년에 사망하였다. [4] 도쿠시마 성 축성 이후 이에마사는 가신인 마스다 미야우치에게 이치노미야 성을 맡겼다. [5] 도쿠시마 성이 완공되자 이에마사는 매우 기뻐하며 가신, 백성 상관없이 도쿠시마 성 아래로 모이게 한다음 다함께 춤을 추게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도쿠시마현의 전통 춤인 아와오도리의 세가지 유래 중 하나라고 한다. [6] 이 지성들은 아와9성(阿波九城)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1615년에 일국일성령(一国一城令)이 발령되자 1638년에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폐성되었다. 가신들은 지성이 폐성된 뒤에도 새로운 건물을 만들어 담당 지역을 통치해 나갔다. [7] 원래는 혼마루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2~3대 번주의 시기에 해체되어 히가시 니노마루에 텐슈대(天守台)가 없는 텐슈를 설치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