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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익한 주말, 후회 없는 선택
1991년 5월 25일부터 1993년 10월 16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 50분 KBS 2TV에서 방영된 가요쇼 프로그램.[2] 가끔 특집에 따라 6시 20분에 시작하기도 했었다. 1980년에 시작된 KBS 100분쇼 - 쇼 86 - 쇼! 여러분 - 쇼 특급 - 쇼 토요특급 계보의 정신적 후속작이다.[3] 여성 2MC 체제, 테마 쇼, CG 무대 등 다양하고 색다른 볼거리로 동시간대 MBC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같은 해 개국한 SBS(당시 서울방송)의 쇼 서울서울[4]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사실상 정통 가요쇼 전성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프로그램.[5]
2. 역사
1991년 4월 13일 10년 동안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진행자 자리를 지키던 이덕화가 하차하면서 수 년간 토요일 7시대를 지배하던 KBS 유머 1번지/MBC 토토즐의 구도에 격변이 예고되었다.[6] 이에 KBS는 91년 봄 개편과 함께 KBS 1TV에서 8시대에 방영 중이던 쇼 토요특급을 토요대행진으로 리뉴얼하고 채널과 시간대도 2TV 7시대로 변경하면서 토토즐과의 정면승부를 선택한다.[7][8] MC는 쇼 토요특급에서 임하룡과 공동 MC였던 고현정[9]과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MC와 리포터로 활약하던 장윤정[10]을 캐스팅하며 국내 최초로 여성 2MC 체제로 기획되었다. 동시에 제작진도 배철호[11]/윤인섭 PD 체제에서 젊음의 행진, 100분 쇼 등 각종 쇼 프로를 연출한 경력이 있는 진필홍 PD로 교체했다.결과는 성공적이었다. MC진의 경우, 토토즐의 MC로 투입된 박상원, 김연주[12]보다 진행의 안정감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매력에 있어서는 확실히 그 두 사람을 압도했다.[13][14] 무대 구성에서도 그 동안 KBS 가요쇼에서 볼 수 없었던 세련미를 더하고 조인트 무대, 테마 쇼, CG, 잠깐 마술쇼[15] 등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특히 해외 올로케이션 촬영은 토토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획이었고,[16] 봄여름가을겨울, 오석준[17], 장필순 등 TV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합동 공연도 볼 수 있었다.[18] 또 MC석을 기존의 무대 왼쪽 구석 대신 객석 뒤편에 마련해 마치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했는데,[19] 이 구도는 이후 가요톱10과 뮤직뱅크에서 재현된다. 그만큼 KBS에서 공을 많이 들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데, KBS 아카이브 자료 공개 현황을 통해 보면, 이 시기 가요톱10이나 젊음의 행진은 KBS에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 반면, 토요대행진은 1회부터 훼손 없이 보관되어 있었다.[20] 따라서 1990년대 초반 활동 모습을 담긴 자료화면을 인용할 때 이 프로그램의 자료화면을 쓰고 있다.
사실 당시 토토즐과 구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토토즐을 벤치마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 그럼에도 토토즐과 비슷한 인기를 얻으며 1992년 백상예술대상 쇼 부문 작품상을 토토즐과 공동 수상했다.
1992년 여름 쇼 토요특급 MC였던 임하룡이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고 콩트 같은 버라이어티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토요대행진도 버라이어티화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해 10월 가을개편부터 당시 SBS를 견제하기 위해 고현정이 하차하고 김용만이 MC가 되면서 제목을 '전원집합! 토요대행진'[21]으로 바꾸고 2시간으로 편성을 확대하면서 버라이어티 쇼로 재편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용만이 감자골 사태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면서 인기가 흔들리기 시작했고[22], 이후 당시 신인 탤런트였던 이병헌으로 진행자가 바뀌었으나, 이듬해 5월 1일부터 개그맨 서세원으로 진행자가 교체되고 난 후 제목이 다시 '토요대행진'으로 환원되면서 방송시간이 55분으로 줄었다. 하지만 서세원마저도 전속계약 소송에 휘말리면서 9월 11일 방송분부터는 유재석, 양원경의 2MC 체제로 바뀌었으나 결국 한달만인 1993년 10월 16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되었는데[23], 이 날 마지막 방송 엔딩에는 바로 다음주부터 종영될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는지 "다음 주 이시간에..." 라고 남긴 채 프로그램의 종지부를 찍었다.
1995년 '출발! 토요대행진'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 나왔는데, 포맷은 완전한 90년대식 버라이어티로, 시간대가 같은 걸 제외하면 원조 토요대행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특기할만한 사항으로는 이영애가 잠시 MC를 맡았다는 것.
1992년 2월 15일까지 KBS 별관 공개홀[24]에서 진행했으며 동년 2월 22일부터 신관 공개홀에서 진행하기 시작했다.[25] 신관 공개홀에서 진행한 이후 자막 글씨체가 KBS에서 1995년 초까지 사용한 폰트로 변경되었다.[26] 신관 공개홀 로비에 무대를 따로 마련하여 공연하기도 했는데 이 방식은 이후 가요톱10에서도 사용한다.
3. 역대 기획
- 1991년 6월 8일: 91 미스코리아와 함께[27]
- 1991년 6월 22일: 김완선, 신승훈, 심신 빅스타 3인쇼
- 1991년 6월 29일: 제1회 경남산업평화상 축하 공연 및 91 상반기 가요 결산[28]
- 1991년 7월 20일: 별들에게 물어봐
- 1991년 7월 27일: 납량특집
- 1991년 8월 17일: KBS홀 완공 기념 조용필의 꿈
- 1991년 8월 31일: 쇼 컴퓨토피아
- 1991년 9월 7일: 스타 DJ쇼
- 1991년 9월 14일: 우리 모두 여기에[29]
- 1991년 9월 21일: 추석특집 이주일[30]과 함께
- 1991년 10월 5일: 부산 시민의 날 축하쇼[31]
- 1991년 10월 12일: 코리아나의 음악세계
- 1991년 10월 19일: 선후배 특집
- 1991년 11월 2일: 옴니버스 테마 쇼
- 1991년 11월 23일: 제25주년 가수의 날 특집[32][33]
- 1991년 11월 30일: 새만금, 꿈의 노래[34]
- 1991년 12월 7일: 91 한국 노랫말 대상
- 1991년 12월 21일: 91 컴퓨터 영상축전
- 1991년 12월 28일: 연말특집 하이라이트[35]
- 1992년 1월 4일: 91 KBS 가요대상 수상자와 함께
- 1992년 1월 11일: 부르는 노래 듣는 노래
- 1992년 2월 1일: 설날특집 올스타가요제
- 1992년 4월 4일: 92 봄[36]
- 1992년 5월 23일: 봄여름가을겨울 92 콘서트[37]
- 1992년 6월 13일: 92 신인가수 총출동[38]
- 1992년 6월 27일: 제2회 경남산업평화상 축하 공연 및 92 상반기 가요 결산[39]
- 1992년 7월 4일: 92 미스코리아와 함께
- 1992년 7월 11일: 92 한국가요제[40]
- 1992년 8월 8일: 93 대전 엑스포 앞으로 1년
- 1992년 9월 12일: 추석특집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4. 역대 MC
- 100분쇼 (1980년 9월 20일 ~ 1986년 5월 24일)
- 쇼 특급 (1987년 3월 7일 ~ 1990년 4월 7일)
- 토요대행진
5. 여담
- 1992년 ~ 1993년 전원집합 토요대행진에서 퀴즈 ARS 번호로 썼던 '700-0700'은 현재 EBS의 불우이웃 돕기 프로그램 '나눔 0700'의 모금 전화로 쓰이고 있다.[49] 이때 당시에는 060 국번이 없기 때문에 광역시(당시 직할시)는 국번없이 번호를 입력해야 연결되었고 광역시 인근 지역은 인근 광역시 국번 누르고 입력해야 했다.
- 2020년 3월 16일부터 4월 24일까지 1991년부터 1993년 방송분을 유튜브 'Again 가요톱10' 채널에 하루 3~4편씩 스트리밍 방송을 했다. 클립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전원집합 토요대행진'과 서세원이 진행하던 토요대행진 방송분까지 스트리밍했다. 되감기 기능으로 시간을 조절하여 시청 가능했다.
- 토요대행진 오프닝 음악은 작곡가 최경식씨[50]가 만들었는데 1989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배상석이 연출했을 때 똑같은 음악이 사용되다[51] 2년 후 어레인지 되어서 재사용되었다. 참고로 이 음악은 2001년 KBS 뉴스 7(KBS 2TV) 티저 영상에도 사용하였다.
[1]
1992년에는 TV 음악 코미디 부문, 1993년에는 TV 쇼 공개오락 부문, 1994년에는 TV 대중문화 부문, 1995년부터 2003년까지 TV 연예오락 부문으로 시상했고, 2004년부터 TV 예능 부문으로 시상하고 있다.
[2]
1992년 가을 개편 후 버라이어티 쇼로 개편.
[3]
앞에 나온 전신격 프로그램들은 모두
KBS 1TV에서 방영되었다.
[4]
1991년 12월 13일 첫 방영.
[5]
이후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은 1993년을 기점으로 가수들이 노래 부르는 가요쇼에서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스타쇼로 이동하여 90년대 주류 포맷이 된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가 1993년 말에 포맷을 변경한 게 주된 예.
[6]
코미디 vs 가요쇼의 구도로 동시간대이기는 하지만 각자 다른 시청층을 겨냥한다는 점에서 라이벌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7]
KBS는 앞서 1988년
쇼 비디오 쟈키를 MBC
일요일밤의 대행진 시간대에 맞불 편성하면서 재미를 본 경험이 있다.
[8]
현재까지 방송되고 있는
KBS 뉴스광장,
아침마당,
6시 내고향도 이 개편 때 생겨난 프로그램이다.
[9]
89 미스코리아 선.
[10]
87 미스코리아 진 및 88 미스 유니버스 2위.
[11]
배철수의 동생. SBS 개국 이후 SBS로 이적했다. 이후 현재 MBN 제작본부장 으로 재직 중.
[12]
1989년 MBC 공채 MC 1기로, 나중에
임백천과 결혼했다. 이후
국민의힘에 입당해 대변인을 지니다가 현재는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13]
일단 MC들이 당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미스코리아 출신들이었다. 현재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이돌과는 달리, 90년대 미스코리아 출신 MC들은 어느 정도 진행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장윤정의 후임인 서정민과 염정아도 미스코리아 출신이고 이후 토토즐 MC가 되는 이영현과 이승연도 미스코리아 출신이다.
[14]
MC들의 의상도 민소매, 미니드레스 같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의상이었다. 이 때문에 신문에 선정성을 비판하는 기사가 올라가기도 했다.
[15]
MC들이 직접 도우미로 나섰다.
[16]
70년대
TBC 쇼쇼쇼에서 한번 선보인 적이 있었으나, 80년대까지 여행 자유화가 이뤄지지 않아 해외 촬영이 추진되기 어려웠다. 물론 그 시기에도 1987년에 쇼 특급을 통해 가끔 선보이곤 했었다. 나미가 프랑스 파리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했고 정수라와 전영록이 일본 삿포로 눈의 축제 현장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17]
노래 '웃어요'의 주인공.
[18]
전신 격인 쇼 특급부터 이어진 기획이다.
[19]
이 때문에 프로그램 초반에는 MC들이 공개홀을 몇 차례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
92년 10월 이후 토요대행진이 버라이어티 쇼로 바뀌면서 반대로 토요대행진 자료는 공개가 되지 않는 대신 가요톱10 자료가 온전히 남아있다.
[21]
타이틀 이름처럼 일본의 전설적인 예능 프로그램인
TBS 테레비의
8시라구! 전원집합 타이틀을 카피했으며 1980년 동양방송에서 '토요일이다 전원 출발'로 포맷까지 카피한 적이 있다. 이후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토요일 전원 출발'로 또 다시 타이틀을 카피한다.
[22]
하지만 김용만은 이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복귀하면서
MBC로 이적했다.
[23]
같은 날에는
SBS에서 방송하던 경쟁프로인 "쇼 서울서울" 역시 마지막 방송을 했다.
[24]
구
TBC 여의도 사옥. 현재
가요무대,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를 녹화하는 곳이며,
뮤직뱅크도 아주 가끔 신관 공개홀에 행사나 공사가 있으면 이곳에서 생방송을 한다.
[25]
과거 가요톱10이 방송하던 곳이며 현재
뮤직뱅크,
유희열의 스케치북,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개그콘서트를 녹화하고 있다.
[26]
SBS에서 초창기에 쓴 폰트다.
[27]
대부분 91 미스코리아들의 특별 무대들로 주로 꾸며졌으며, 이 때문에 'Again 가요톱10' 클립에서는 이 편이 생략되었다.
[28]
창원 KBS홀에서 진행했다.
[29]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합동 공연. 전 프로인 쇼 특급과 쇼 토요특급에도 선보인 바 있다.
[30]
1987~1988년 토요대행진의 전신인 쇼 특급의 MC를 보기도 했다.
[31]
80년대에는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주관했었다.
[32]
원로가수들을 초청해 그들의 노래를 듣고 후배 가수들이 부르는 기획.
[33]
80년대 100분 쇼 시절부터 이어진 기획이다. 이후 1992년부터 별도의 특집 프로그램으로 독립하여 2000년대 초반까지 방송한다.
[34]
새만금 착공 기념 축하쇼로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되었으며 사전녹화로 진행되었다.
[35]
1991년 한 해 동안 방송했던 무대를 하이라이트로 묶어서 방송했다. 이 때문에 KBS에서 공개하지 않은 회차이지만 구 KBS 아카이브에서 5분짜리 편집본이 공개된 바 있다.
[36]
서울어린이대공원 야외 음악당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37]
참고로 이날은 MBC에서 토토즐 300회 특집을 대전, 부산을 연결해서 진행했는데 웬만한 인기 가수들은 모두 토토즐에 출연한 상태였다.
[38]
서태지와 아이들, 이현우, 김민종, 이덕진 등이 출연했다.
[39]
창원 KBS홀에서 진행했다.
[40]
가요제였는데 정작 참가자는 립싱크로 노래를 불렀다(...)
[41]
후라이보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원로 코미디언. 1981년까지 진행 후 방송 은퇴. 미국으로 이민한 후에는 목회자의 삶을 살았다.
[42]
86년 7월 12일부터 합류.
[43]
당시 서울예술대학교 현대무용학과 교수.
[44]
3년 간의 MBC 전속 계약을 마친 이주일의 KBS 복귀작. MBC 전속 기간에는 경쟁 프로그램인 토토즐에 고정출연한 적이 있다.
[45]
1990년 미스코리아 진. 1993년 미스코리아 선발 당시 뒷돈 거래 과정이 적발되면서 불명예 은퇴했다.
[46]
91년 KBS 가요대상을
김동건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하면서 KBS 가요대상 역사상 유이한 非아나운서 출신 MC라는 기록을 남겼다.
[47]
프로그램 제목을 전원집합! 토요대행진으로 변경.
[48]
1992년 12월 5일은
김국진, 1993년 1월 16일은
배동성,
양원경 / 1993년 1월 23일은
배동성, 1993년 1월 30일은
심형래가 임시 진행을 맡았다.
[49]
토요대행진이 종영한지 5년 후인 1998년 '효도우미 0700'으로 시작하였으며 이때부터 이 번호를 썼다. 2010년 '나눔 0700'으로 확대 개편했다.
[50]
여명의 눈동자와
걸어서 하늘까지의 타이틀을 만들기도 했고
그것이 알고싶다와
TV 동물농장의 타이틀 음악도 작곡했다.
[51]
토토즐은 연출자 2명이 번갈아가면서 연출했는데 1988 ~ 1990년 시기에 한해서 오프닝 타이틀이 연출자가 누군지에 따라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