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2:24:52

테오필로 쿠비야스

테오필로 쿠비야스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신인상.png
1970 FIFA 월드컵 신인상
파일:브론즈슈.png
1970 FIFA 월드컵 브론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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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실버슈.png
1978 FIFA 월드컵 실버슈
베스트팀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1975 코파 아메리카 MVP
테오필로 쿠비야스

}}} ||
페루의 前 축구 선수
파일:10000030702.jpg
<colbgcolor=#eee><colcolor=#000> 이름 테오필로 쿠비야스
Teófilo Cubillas
본명 테오필로 후안 쿠비야스 아리사가
Teófilo Juan Cubillas Arizaga
출생 1949년 3월 8일 ([age(1949-03-08)]세)
페루 리마군 리마
국적
[[페루|]][[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 체중 71kg
직업 축구 선수 (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은퇴
주발 오른발
소속 <colbgcolor=#eee> 선수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 (1966~1972)
FC 바젤 (1973)
FC 포르투 (1974~1977)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 (1977~1978)
포트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 (1979~1983)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 (1984)
사우스 플로리다 선 (1984~1985)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 (1987~1988)
포트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 (1988)
마이애미 샤크스 (1989)
감독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 (1988)
국가대표 81경기 26골 ( 페루 / 1968~1982)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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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f0f0><colcolor=black> 등번호 페루 대표팀 - 10번
FC 포르투 - 10번
별명 아기 (El Nene)[1]
}}}}}}}}} ||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5. 여담

[clearfix]

1. 개요

골없는 축구는 꽃없는 정원과 같다.

페루의 전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1988년에는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의 감독직을 맡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이 페루 축구의 영웅은 떡잎부터 달랐다. 만 16세였던 1966년에 자국 리그 최고의 명문팀인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에서 데뷔하자마자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19골을 넣으며 득점왕까지 차지해버렸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데뷔 시즌. 1972년까지 리마에서 뛰었는데, 리그에서만 120골 가까이 몰아넣으며 리그 득점왕 2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 1회[2]를 차지했고, 1972년엔 펠레를 제치고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를 수상하는 등 소위 말해 '잘나갔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월드컵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일찍이 증명한 그는 스위스 슈퍼 리그의 명문 클럽인 FC 바젤로 이적했고 1시즌을 뛴 뒤 포르투갈의 FC 포르투로 이적해 3시즌간 활약하면서 1976-77 시즌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1977년 그는 다시 클루브 알리안사 리마로 복귀했고, 1979년 NASL의 포트로더데일 스트라이커스에서 리그 59골을 득점했으며, 이중에는 LA 아즈텍스를 상대로 7분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후 알리안사 리마에서 뛰는 등 여러팀을 전전하다가 1989년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세인 1968년에 국가대표 데뷔를 했다. 20세의 나이로 출전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16강)에서는 불가리아를 상대로 동점골, 모로코를 상대로 멀티골, 서독을 상대로 만회골을 득점했고, 조별리그에서만 4골을 기록하며 우고 소틸, 엑토르 춤피타스 등과 함께 페루의 8강행을 주도했다. 그러나 8강 상대는 펠레가 이끄는 세계 최강 브라질이었고, 쿠비야스는 후반에 호쾌한 슈팅으로 1골을 만회하지만 호베르투 히벨리누, 토스탕, 자이르지뉴에게 연달아 실점하며 4:2로 패배했다. 하지만 쿠비야스는 월드컵 신인상을 수상한다. 이후 월드컵 1년 뒤 열린 대한민국과의 리마 홈 친선전에서 2골을 넣으며 4:0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3]

197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브라질 콜롬비아를 꺾으며 테오도로 페르난데스가 이끌던 1939년 대회 이후 36년 만의 우승을 차지했는데, 쿠비야스는 대회 MVP를 수상한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진출한 쿠비야스는 1차 조별리그(16강)에서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멀티골을 넣었고, 이란에게 해트트릭을 선사하며, 총 5골을 넣으며 페루의 2차 조별리그(8강)에 진출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2차 조별리그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폴란드를 만나서, 특히 아르헨티나에게 6:0으로 대패[4]를 당하게 되면서 2차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를 당하며 조 최하위로 탈락하고 만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1차 조별리그(24강)에서 조 최하위로 탈락했고, 대회가 끝난 후에 은퇴하였다.
파일:FIFA 월드컵 워드마크 화이트.svg
FIFA 월드컵 역대 득점 순위
16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
15 호나우두 (브라질)
14 게르트 뮐러 (독일)
13 리오넬 메시 (아르헨티나)
쥐스트 퐁텐 (프랑스)
12 킬리안 음바페 (프랑스)
펠레 (브라질)
11 위르겐 클린스만 (독일)
산도르 코츠시스 (헝가리)
10 토마스 뮐러 (독일)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아르헨티나)
게리 리네커 (잉글랜드)
헬무트 란 (독일)
테오필로 쿠비야스 (페루)
그제고시 라토 (폴란드)

3. 플레이 스타일


쿠비야스는 펠레와 유사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는데 발군의 드리블 실력과 뛰어난 패싱력으로 팀의 공격을 풀어나가는 10번이었으며, 강력한 슈팅력으로 득점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또한 테크닉과 좋은 프리킥 능력[5]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사우스 플로리다 선

4.2. 개인 수상

5. 여담

  • 1985년 은퇴를 했다가 1988년 알리안사 리마에서 현역 복귀를 한 것이 눈에 띄는 점인데, 이는 1987년 알리안사 리마 선수, 코칭스태프들을 몰살시킨 비행기 사고로 인해 팀이 해체될 위기에 처하자 선수 겸 감독을 맡아 혼란기의 팀을 수습했다. 이 후로는 다른 레전드들과 달리 축구 해설에 전념하며 비교적 조용히 살고 있다.
파일:시대별 최고의 미드필더.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1970년대 미드필더들 중 2위에 이름을 올렸다.



[1] 앳되보이는 그의 외모에서 기인했다. [2] 1972년 6골 [3] 당시 리마 원정 경기에서 뛰었던 정규풍은 본인이 상대해 본 선수 중에 쿠비야스가 가장 잘하는 선수였다고 회고했다. [4] 이 경기는 승부조작 의혹을 받고 있다. [5]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기록한 아웃프런트 프리킥 골이 특히 유명하다. 그리고 그는 펠레, 호베르투 히벨리누, 데이비드 베컴 등과 더불어 2개의 월드컵 대회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킨 5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 [6] 1958~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