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탈시설화( 脫 施 設 化)란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더 이상 시설에 수용하지 않고 내보내는 것을 가리킨다.2. 논의 배경
대한민국에서 탈시설 논의가 나오게 된 배경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선감학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같은 굵직한 사건들과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장애인 시설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인권침해, 장애인 학대 사건들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하술하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강경한 탈시설을 주장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탈시설 아젠다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는데 동시기 그것이 알고싶다 등에 보도되어 떠들썩해진 성람재단 복지시설 사건의 생존자 몇 명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탈시설 아젠다 창립자 중 한두명이 되었기 때문이다.행정 당국은 시설비리 방지를 위해 좀 더 소규모로 쪼개고 독립형 주거 서비스 같은 절충개선방안을 내놓는다고 하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단체는 좋게 해 준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의지가 있는) 장애인의 자유의지와 자기결정권을 규제하기만 할 뿐인, 즉 장애인에게 좋은 시설은 없어진 시설이라는 주장[1]을 지속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3. 견해
3.1. 탈시설을 지지하는 입장
문재인 정부 시절과 이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장애인 인권운동 진영 중 자유주의 내지 좌파 성향이 강한 이들이 주장했지만 이후에는 온건, 중도 보수진영에서도 점진적 수용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추세다. 이런 태도는 전술한대로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한 대한청소년개척단,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선감학원 사건 등 길바닥에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이 국가의 체면을 손상시키므로 문제 있는 사람이 사회에 드러나지 않도록 강제로 어딘가에 몰아넣고 나오지 못하게 막는 국가적 수용 정책이[2] 수십년간 지속되어 온 것에 대한 반발이다.이는 당사자들인 탈시설을 주장하는 장애인들에게 수십년간 누적된 오랜 피해의식이기도 하다. 그들의 입장에선 단순히 신체기능적으로 비장애인보다 못한 것뿐이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당장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그냥 집밖에 나와 있는 건데 그게 남들 보기에 혐오스럽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정부에 의해 반 강제로 집밖에 나올 권리를 박탈당한 채 이에 따르는 수많은 부수적 권리들[3]이 원천봉쇄당한 채 시설에 갇혀 있고 시설의 내부가 투명하게 공개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폐쇄적이고 내부 사정이 새나오지 않게 되어 있는 사실상 감옥이나 다름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어떤 인권침해가 이뤄져도 무시당한다는 것이다.[4]
그러나 문재인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정부에서 내세우는 탈시설로드맵은 탈시설을 장애인의 기본권이 아니라 ‘주거선택권’의 하나로 본다는 점에서 장애인 민권운동 단체들에게 비난받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일반논평5는 “시설과 연계된 ‘위성’ 생활환경, 즉 아파트 또는 단독 주택 등 개인생활 외관을 띠면서 사실은 시설을 중심으로 한 생활환경 조성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즉 유엔과 장애인 인권운동 단체에서 요구하는 탈시설 사안과 정부에서 추진하는 탈시설 정책은 여러모로 많은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탈시설이 장애인에게 선택권을 주자는 것이라면 UN과 장애인 인권운동 단체는 의무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심의담당관은 장애인단체들과 협력하여 모든 장애인 특화거주시설 폐쇄를 목표로 하는 전략적 탈시설화 계획을 반영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 대한민국의 주요 장애인 단체들은 서구권보다 보수적인 편이라 당사자의 입장 위주로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부모들의 눈치도 보고 있으며 특히 2022년에는 국민의힘 측에서 강제 탈시설 논란 등으로 장애인 당자자가 주축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을 비판하면서 비당사자 단체인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기도 했고 이로써 비당사자들의 발언권이 더 강해졌다.[5]
이러한 유엔의 입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체는 별로 없는데 그나마 대한민국에서는 이에 해당되는 단체가 그 여론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뿐이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판하는 이들 중 '시설과 거주 형태는 장애인 본인들의 선택의 문제다'라고 주장하는 이준석, 오세훈 등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논리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유엔의 입장은 탈시설은 보편 인권에 속하며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고 설령 시설에 남기를 원하는 장애인이 있더라도 그것은 일종의 가스라이팅처럼 그릇되게 길들여진 사고방식이어서 일단 사회에 재적응시키고 봐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유엔은 어디까지나 장애인 시설의 존재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급진적 탈시설화을 통해 장애인들을 사회로 내몬다면 시설에 있던 장애인들이 순식간에 차별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을 탈시설 반대 진영에서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나중에 논리랑 다를 게 없다. 장애인이 시설에 수용됨으로써 지역사회에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구조적인 차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리 니이먼 같은 해외 장애인 인권운동가들은 모든 형태의 장애인 시설 수용이나 특수교육 등을 과거의 흑백 분리 정책과 동일시하기도 한다.[6] 장애인 인권의식이 높은 나라들일수록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보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 흔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차별이 심하다는 이유로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접할 기회조차 없게 만들어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더 공고히 할 우려가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인권운동가들도 아무런 대책 없이 탈시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모든 장애인 탈시설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장애인 평생교육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한다. # 급진적인 탈시설 주장이 문제가 아니라 위정자들이 탈시설 후 장애인에 대한 보호장치에 대한 입법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스웨덴은 1997년에 모든 장애인 시설을 폐쇄했다. # 뉴질랜드·스웨덴·노르웨이 등 유럽연합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에서도 장애인시설 폐쇄와 탈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 게다가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에서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심의를 받은 첫 번째 정부다. #[7]
3.2. 탈시설을 비판하는 입장
유엔의 요구와 별개로 현실적인 이유로 탈시설화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주로 전문시설이나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발달장애인 같은 이들의 가족들이다. 이들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장애인이 안전하고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제도나 법 그리고 사회인식이 부족한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시설폐쇄만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한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식 강제적, 급진적 탈시설은 해외의 의료 전문가들은 1950년대 미국에서 이러한 강제 탈시설이 벌어진 것을 의료계의 흑역사로 간주하고 있어서 탈시설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입장을 취하며 이미 반성의 대상이다.[8] 과거 미국의 정신병원에서 행정적 편의와 비용 절감이라는 매우 이기적인 이유로 장애인들을 강제로 사회로 내몰았던 적이 있는데 이들은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약물에 중독되거나 각종 범죄에 노출되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켰으며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공고히 했다. 결국 많은 수가 시설로 도로 들어가는 회전문 효과를 낳았을 뿐이다. 그런데 대한국의 탈시설 운동을 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같은 단체들은 '시설 수용은 T4 작전이다! 장애인 학살이다!'라는 극단적인 비유를 들면서 이런 식의 급진적, 강제적인 탈시설을 정당화한다.
실제로 중증 장애인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의해 강제로 동의 없는[9] 탈시설을 당한 뒤 욕창으로 사망한 사건이 이미 발생했다. 욕창은 최소한의 돌봄만 받아도 방지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 받지 못하고 완전히 방치당했다는 뜻이다. # 피해자들은 거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의사소통도 힘든 심각한 중증 장애인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중증 장애인은 애초에 공동체 참여 및 자립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탈시설의 의미가 없다. 중증 장애인을 무작정 탈시설시킬 경우 건강상태가 악화된다는 것은 논문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대한민국의 탈시설 운동가들은 이런 탈시설의 단점이나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사항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시설에서 내보내는 것만이 무조건적인 절대선이라는 식으로 급진적인 접근을 하는 상황이다. #[10] 해외에서 중증 장애인의 강제 탈시설을 장애인 학대로 판정하고 반성하는 것도 이렇게 돌봄이 필수적인 장애인들이 자칫 무작정 시설 밖으로 쫓겨나 최악의 경우 죽음으로까지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탈시설의 주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각종 센터에 소속된 많은 케어 담당자들은 거의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인력이며 이런 곳에 탈시설이랍시고 국비 지원을 추가 편성한다고 한들 제대로 된 곳에 쓰일 리가 없다.
UN 요구사항의 핵심은 전략적 탈시설 로드맵 수립이며 그 골자는 장애인의 자립과 공동체 참여, 직업능력 향상 등 탈시설의 본래 목적을 살리는 내용이다. 그러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대한민국의 탈시설 운동 주체들은 거액의 돌봄 예산을 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대부분 해당 예산과 밀접한 이익관계가 있고 정치권과도 긴밀하게 유착되어 있다. 한마디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태다. 상기의 논문에서는 탈시설의 장점으로 '장애인들의 직업능력 향상'을 꼽고 있는데 이 직업능력 향상을 통한 장애인들의 자립과 사회참여는 아이러니하게도 강제 탈시설을 주장하는 전장연에 반대하는 장애인연대의 김민수 대표가 강조하는 사항이다.
실제로 탈시설화를 실시한 국가들에서도 자립할 수 있게 된 장애인은 소수이며 대다수는 가족이 부양하거나 도우미를 필요로 한다. 이마저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만 가능하다. 심지어 탈시설을 위한 사전조건이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무턱대고 탈시설을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가족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 탈시설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배려해야 할 재가 장애인에 대한 부담 증가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다. 지금도 장애인 부양에 지쳐서 가족이 장애인을 살해하거나 살해 후 자살하는 비극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계열 탈시설 운동가들은 이런 다양한 장애인 단체들의 현실적인 우려를 모두 정치극단주의로 치부하고 장애인 정책과는 상관없는 정치 논리를 끌어들여 무시하며 '지금 당장'을 주장하고 있다. #
즉 인권운동을 하는 소위 이상주의자들과 실제 장애인들의 복지, 의료인들의 관점 사이에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적으로 볼 때 인권에는 유예나 준비 절차가 없어야 한다지만 현실적으로 면밀한 지역사회의 여건 준비와 합의 없이는 장애인이 시설 밖에서 방치된 채 죽어가는 등 피해자만 양산될 수 있고 과거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2023년 2월 결국 오세훈 시장의 추진으로 탈시설 비리나 인권유린적인 강제 탈시설을 당한 장애인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루어지게 됐다. 대한민국의 탈시설 예산의 85%는 전장연에 돌아가고 있으며 시설 내 장애인들에 비해 탈시설 장애인이 사망률도 더 높다고 한다. 게다가 박원순 전 시장 시절에 무차별적으로 탈시설 대상을 확대하는 바람에 최중증 장애인들까지도 시설 밖으로 내몰리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한다. # # 이것은 탈시설 정책이 가야 할 방향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이다.
결국 서울시는 탈시설 관련 예산은 그대로 두되 장애인 거주시설도 지원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탈시설 정책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 그러나 추후 발표된 입장을 보면 선진국식 그룹홈 커뮤니티 모델 등을 언급하고 탈시설 반대 입장을 가진 다양한 장애인 주체들을 논의에 참여시킨다고 하는데 탈시설 사업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탈시설 사업에서 비리나 장애인 방치, 강제 탈시설 문제를 일으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만을 배제하고 점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
오세훈 시장은 덴마크를 방문해 그룹홈 형태로 운영되는 시설들을 들렀는데 대체로 긍정적인 언론 보도와는 달리 실제 발언의 내용을 보면 해당 시설의 구조를 적극 모방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전망이 어둡다. '덴마크는 예산에 여유가 있어서 이런 정책이 가능한 것이다' 운운하며 1인 1실 형태의 주거시설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인데 장애인 시설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여러 명이 한 곳에 집단수용되는 구조가 인권유린과 관련이 있다는 점인 만큼 1인 1실형 시설을 도입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 의미가 없는 전시성, 홍보성 방문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기존의 장애인 집단수용시설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당한 퇴행적 정책이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
4. 법학적 관점에서의 탈시설 검토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에서는 탈시설이라는 단어, 개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단순히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통합되어서 생활한다는 자립생활이라던가 혹은 장애인의 주거지, 동거인 선택 정도에 국한시키는 바, 이때,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2021년 공포한 탈시설 가이드라인 상에서의 탈시설이라는 연성법(軟性法, Soft Law)이 법적 효력이 구비되었는가가 문제이다.
연성법은 법적 효력이 없는데, 구체적으로 가령 국제사법재판소의 판례에 의거 유엔총회의 결의라고 할지라도 다수 국가가 표결에 찬성한 법적 확신만 구비되었을 뿐, 다수 국가가 실행하는 일명 국가실행 요건이 불비되어 국제관습법으로조차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는 국제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법원 판례 역시 정치적, 시민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으로 설치된 유엔자유권위원회에서 국가보안법에 의견을 제시해도 국가보안법의 효력에 영향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고, 헌법재판소 결정례에서 역시 국제노동기구 산하 '결사의 자유위원회'의 권고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거나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여, 연성법 자체의 국내법적 효력을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권고는 단순히 연성법에 불과한데다가, 조약 문구 상 탈시설이 부재한 점을 볼 때,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의 탈시설 가이드라인은 일방적인 선언 정도에 불과하므로 이를 준수하는 것은 각국의 재량사항이다. 이 점의 근거를 보충해주는 것으로는 장애인 관련 시설에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가 금지한 소규모 그룹홈마저 운영하지 않는 국가는 스웨덴 단 1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반박으로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자립생활 원칙을 확대하여 탈시설 원칙으로까지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 점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입안 과정에서 탈시설이 배제된 점으로 반박할 수 있다. 유엔에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창안하기 전에 각 전문가들이 방콕에 운집한 방콕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시설수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안에 내용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제19조에서 장애인의 자립생활과, 타 조항에서는 장애인의 자유의사에 입각한 거주지, 동거인의 선택 정도를 규정할 정도였다. 이때,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서는 조약 문구라던지 조약문과 기타 부속서를 통해서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를 통한 해석으로도 불분명한 경우에는 보충적 수단으로 교섭 당시의 문서 등 기록과 조약 체결의 전후 사정을 고려하여 해석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자체가 내용이 불명확하지 않은데다가, 보충적으로 당시의 방콕 회의의 권고안을 고려하면, 오히려 방콕 회의에서 전문가들이 탈시설을 권고안으로 유엔 측에 제기, 제출했으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상 반영되지 않은 점에 비추어보면, 탈시설이 협약 상 인정되지 않는다고 간주할 수 있는 여지 역시 상당부분 존재한다.
따라서,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되지 않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일방적으로 협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권고안을 도출하였다고 볼 수 있는 점을 시사한다. 이러한 점은 협약안의 탄생 과정이라던지, 협약 문언의 그 자체로 해석해야 하는 점을 볼 때, 국제법적으로 탈시설은 조약이라던가 국제관습법에 포섭되지 않는 연성법에 불과하며, 법원(法源)에 해당되지 않아, 탈시설을 타국가에 강요할 수도 없고, 개별 국가가 탈시설에 기속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5. 보론
보론으로는 탈시설에 대한 방안이다. 법학에서는 해석론을 카논이라고 하여, 문언 그 자체만을 해석하는 문리해석과, 해당 문언과 여타의 문언을 전부 고려하여 해석하는 논리해석, 입법 또는 입안 취지를 고려하여 해석하는 역사적 해석, 법의 목적을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이 존재한다. 이때, 탈시설의 경우 논리해석에 의거, 장애인권리협약 상에서는 장애인이 동거인, 주거지를 선택할 자유와 각종 복지혜택의 수급권과 노동할 권리인 노동권 등을 언명하면서 지역사회에의 통합을 강조한다. 목적론적 해석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주체로서 인정되는 것을 목적으로 협약이 전개되고 있다. 역사적 해석을 보면, 장애인권리협약이 당시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대두되는 격동기에서 태동하여 창안되다보니, 발달과 정신장애보다 주로 신체적 장애라던지 그런 분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취지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볼 때, 탈시설 역시 각 국가에서 채택하거나, 또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제기할 수 있어보인다. 다만, 해석의 카논을 고려할 때, 논리해석과 역사적 해석, 목적론적 해석에 부합되도록 위원회가 각국에 탈시설을 강요하기보다, 탈시설 외에 장애인의 권리를 가일층 보장하는데 시설이 유리하면 시설을 채택하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발달장애인과 사회심리적 장애인(정신장애인)의 경우 시설이 보호라던지 복지혜택의 수급에 유리할 수 있는 경우가 대표적 예시이다. 다만, 정신장애와 발달장애의 경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 장애범주로 포함되어, 협약에서 비차별을 언명하는 만큼, 이들에게 시설보다 자립생활이 유리하면 자립생활을 선택하게 할 수 있고, 반면 시설이 자립생활을 보장하는데 유리하면 시설을 선택하도록 할 수 있다. 또, 각국 자체가 탈시설을 협약의 실현 중 일환으로 보는 만큼, 장애인권리위원회도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절대적으로 강행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기보다는, 탈시설을 완화, 탄력적으로 적용하거나 협약 이행의 일환 중에서 탈시설을 선택하라고 부기할 필요로의 전환도 고려해볼 수 있다.
6. 관련 조직, 기관 ,인물
- 정의당
- 장혜영 - 유엔과 장애인 인권운동 단체와 같은 입장으로써의 '탈시설'을 지지한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많은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현재 대한민국에서 탈시설 운동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단체이며 사실상 ' 좋은 시설은 없어진 시설' 급으로 시설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이다.
- 밀알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장애인들이 자립할수있도록 돕는 자립생활 체험홈을 운영하고 있다.
- 노란들판 - 탈시설에 우호적인 기관이다.
7. 같이 보기
[1]
「조 씨는 “사람은 경험 속에서 생각할 능력이 만들어지는데 시설은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내가 경험하는 일들이 인간적인지, 비인간적인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들며 시설 밖으로 나오면 개죽음당한다고 세뇌한다”면서 “좋은 시설과 나쁜 시설의 차이는 ‘마당에 묶어놓고 사람들이 먹다 남은 밥을 먹는 개’와 ‘집안에서 사료 먹는 개’의 차이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은 ‘집 안에서 사료 줄 테니 계속 시설에 있어라’라며 장애인을 세상과 격리하는 것”이라면서 “까만색 목줄을 형광으로 바꾼다고 시설이 감옥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좋은 시설은 없다”고 성토했다.」
#
[2]
이는 실제로 문제가 있는 노숙자나 부랑자뿐이 아니다. 이미 조선시대부터
신언서판이라는 말로 집 밖에 나올 때는 외관을 단정히 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존재했고 두발단속, 복장단속,
야간자율학습등 국가의 통제에 반발할 가능성이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 돌아다녀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도시미관을 해치거나 집단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외모, 복장, 행실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길바닥에 나오지 못하도록 각종 사회적 터부를 만든 것들이 지금까지도 국가의 국민 수용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3]
대표적으로 근로권. 집 밖에 나와야 일이건 뭐건 할 거 아닌가?
[4]
이 문제를 단순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문제로 볼 수 없어지는 국면이 곧 다가오는데 바로 초고령화 사회다. 극단적으로 말해 늙고 힘이 없어지면 도시기능적으로는 장애인과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 그런데 지금의 대한민국이 노인들이 밖에 모여 있거나 노인들이 젊은 사람과 같이 섞여서 활동하는 것을 좋게 보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로 인해 요양원과 요양병원에 고려장하는 일이 흔하다.
[5]
서구식
당사자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장애인 인권운동에서 당사자들의 발언권을 중시해야 하며 전문 지식을 갖춘 비당사자는 (전문 지식 여부와 무관하게) 당사자 엑티비스트의 발언권보다 당연히 후순위여야 하고 비당사자의 제안을 당사자가 거부한다면 당연히 비당사자의 입장은 정책논의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 포함해서 전문 지식조차 없는 비당사자들은 아예 정책논의에서 배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6]
이 사람은 심지어
유대 보수주의자이며 트럼프 이전에는 공화당에 가까운 정치 성향을 띄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장애인 인권 담론은 (성소수자, 인종 등 이슈와 달리) 초당적인 의제로 받아들여진다.
[7]
다만 일본에서는 탈시설화(脱施設化,extitution)과는 구분하여 지역이행(地域移行)이라는 표현을 정부차원에서 정의하여 사용하고 있다. 도쿄 등 초거대도시권이 형성되어 있고 사회복지 인력이 지역별로 수요/공급에 맞춰 분배되기 힘들다는 서구권과의 현실적 차이를 반영하여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새로이 정의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 따라 정신병원 등의 시설을 완전히 폐지하는 게 아니라 통원화, 개방화, 소규모화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한국보단 적극적이지만 서양에 비해선 온건한 정도라고 볼 수 있겠다.
[8]
구글에서 영어로 'Deinstitutionalization'을 검색하면 과거의 의료계 흑역사와 거기에 대해 반성하는 내용의 비중이 더 크게 검색될 정도다.
[9]
의사표시가 불가능할 정도의 장애인이었는데 동의서를 날조해 강제로 탈시설을 시킨 것이 드러났다.
[10]
논문에서 탈시설의 장점으로 꼽힌 '공동체의 장애인 케어로 인한 장애인 삶의 질 향상' 등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 강제적으로 탈시설부터 시킨다면 큰 비극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과거 강제로 오갈 데 없는 장애인들을 일단 준비 안 된 채 사회에 내몰아 버린 미국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