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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차 아르메니아 왕국
고대 오론테스 (예르반드) 왕조, 아르탁세스 왕조, 아르샤쿠니 왕조가 통치한 왕국. 그 중 티그라네스 2세 시절 대 아르메니아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다.1.1. 오론테스 (예르반드) 왕조
첫 왕조인 오론테스 왕가의 시조인 오론테스 1세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아르메니아 사트라프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가 동생 키로스와 그리스 동맹군을 격파한 쿠낙사 전투에서 활약한 공으로 그의 딸 로도구네와 결혼하였다. 따라서 오론테스 왕가는 아케메네스 황실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오론테스 2세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의 사령관으로 분투하다가 전사하였다. 다만 동시기 리디아 사트라프로 재직하던 오론테스 2세의 아들 미트레네스는 일찍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항복하여 대가로 아르메니아 사트라프로 임명되었다. 그후 오론테스 가문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봉신으로써 아르메니아 사트라프 위를 세습하였는데, 이들을 옛 페르시아의 잔재라 여긴 셀레우코스 조는 항상 아르메니아를 경계하였다.그러다 기원전 260년 미트레네스의 아들 오론테스 3세는 암살당하기도 했으나 후자의 손자 아르사메스 1세의 치세인 기원전 239년 앙카라 전투에서 셀레우코스 2세가 폰투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 2세에게 패배한 후로 사실상 독립하였다. 기원전 235년 아르사메스 1세는 콤마게네 지방에 수도 아르사모사타를 세워 세력을 과시하였다. 하지만 그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크세르크세스는 기원전 212년 안티오코스 3세가 아르사모사타를 포위하자 항복하였고, 이후 후자의 누이 안티오키스와 결혼했으나 얼마후 그녀에게 암살되었다. 이를 틈타 안티오코스 3세는 아르사메스 1세의 차남 오론테스 4세를 아르메니아 사트라프, 다시 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를 콤마게네 사트라프, 크세르크세스의 아들 자리아드레스를 소포네 사트라프로 봉하며 오론테스 왕가를 분열시켰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안티오코스 3세는 자리아드레스의 장남 아르탁세스 1세에게 아르메니아를 차지하도록 사주하였다.
그의 계획대로 기원전 200년 아르탁세스는 작은 할아버지 오론테스 4세를 죽이고 아르메니아 사트라프에 올랐다. 다만 기원전 190년 마그네시아 전투로 셀레우코스 조가 약화되자 이듬해 자리아드레스와 아르탁세스 부자는 독립을 선포, 각각 캅카스와 반호 일대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기원전 188년 자리아드레스가 사망하자 소포네 왕국은 그의 차남 미트로부자네스가 계승하였다. 그는 지배권을 주장하는 형 아르탁세스에 맞서 카파도키아와 동맹하여 왕위를 지켜내었고, 이로써 소포네와 아르메니아 왕국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한편 셀레우코스 왕조의 봉신으로 남아 40여년간 사트라프로 있던 프톨레마이오스 역시 기원전 163년 독립을 선포하며 콤마게네 왕국이 설립되었다. 이렇게 안티오코스 3세가 분열시켜 놓은 오론테스 왕조의 세 나라들은 셀레우코스 조의 쇠퇴와 함께 차례대로 독립하여 동부 아나톨리아와 아르메니아 지역을 통치하게 된 것이다.
상술한 대로 아르탁세스는 아르사메스 1세의 증손이었으니 아르탁세스 왕조도 사실 오론테스 왕조에 속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기록이 밝혀지기 전에는 그저 자리아드레스와 아르탁세스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봉신이었다가 자립하여 각각 소포네, 아르메니아 왕국을 세웠다고만 알려져 있었기에 둘이 부자 관계라는 것을 몰르고 별개의 왕조로 서술하는 우를 범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따로 분류할 명분도 있는데, 기존 오론테스 왕조 시절 아르메니아가 셀레우코스 조의 (명목상으로) 제후국에 불과했다면 아르탁세스 1세는 39년간 재위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향후 4세기간 아르메니아의 중심지가 되는 아르탁사타를 세우는 등 국가로써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비록 그는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고 페르시아 단어를 다수 포함한 아람어를 사용했지만 오늘날까지 아르메니아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독수리와 아라라트 산을 주화에 새기는 등 아르메니아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1.2. 아르탁세스 왕조
자세한 내용은 아르탁세스 왕조 문서 참고하십시오.티그라네스 대왕 시절 아르메니아 '제국'의 강역
1.3. 아르샤쿠니 왕조
자세한 내용은 아르샤쿠니 왕조 문서 참고하십시오.1~3세기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간의 완충 지대 역할이던 아르메니아
2. 2차 아르메니아 왕국
바그라투니 왕조가 세운 왕국. 봉건제로 유지되었고, 봉신 중에는 카이스 토후국 등 이슬람 공국도 있었다.
이슬람 정복 후 이슬람 제국령 아르미니야 주에 편성되었던 아르메니아 지역은 아랍계 총독들의 지배를 받았고, 9세기 들어 그러한 총독들은 점차 자립하여 아르메니아 토후국 (إمارة أرمينيا)이라 불리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따금씩 칼리파들은 아랍인 총독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대신 충성을 맹세한 아르메니아인 기독교도 호족을 총독으로 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9세기 후반 압바스 왕조가 일명 ' 사마라의 혼란'이라 불리는 내전으로 쇠퇴하자 바누 샤이반 가문의 지배를 끝으로 아르메니아 지역에선 기독교도 호족들이 점차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그중 아르샤쿠니 왕조 시절 귀족 가문의 후예이자 다윗의 후손을 자처한 바그라투니 가문이 두각을 드러내었다.
바그라투니 가문은 이미 8~9세기에 아쇼트 3세, 슴바트 7세, 아쇼트 4세, 바그라트 2세 등의 총독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아쇼트 4세의 손자인 아쇼트 5세가 885년 압바스 칼리파 알 무타미드로부터 왕관을 하사받아 국왕 아쇼트 1세로 즉위하며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이 시작되었다. 기독교 군주가 무슬림 황제에게서 받은 왕관으로 대관식을 치렀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칼리파의 호의나 제후국화가 아닌 정치적인 수였다. 당시 동로마 제국이 말라티아를 점령하는 등 고토 회복에 나서자 압바스 왕조는 아르메니아가 그에 합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자체적인 왕국으로 격상시키고 명목상의 종주권이라도 유지하려는 의도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10세기 아르메니아 왕국은 함단 왕조, 부와이 왕조 등과 경쟁하며 옛 아르메니아 지역을 대부분 회복하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기반한 문화를 꽃피우는 등 번영을 누렸으나 11세기 전반 결국 동로마 제국에 병합되어 멸망하였고, 일대는 얼마안가 셀주크 제국에게 정복되었다.
이당시 아르메니아의 인구는 600만명으로 동로마 제국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지역강국이었다. 수도였던 아니는 10~20만명의 대도시였고 속국 중 하나였던 바스푸라칸 왕국 또한 1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대국이었다.
에오엠2 결정판 DLC 마운틴 로얄스에서 조지아인 팩션과 등장하는 아르메니아 팩션 설명에서는 2차 아르메니아 왕국과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이 언급되어 있다.
3.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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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아르메니아어: Կիլիկիոյ Հայոց Թագաւորութիւն (Kilikio Hayots Tagavorutyun)
프랑스어: Le Royaume Arménien de Cilicie[1]
1080년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왕가인 바그라티 왕조의 분파라고 주장하는 루벤 가문이 세운 국가. 다만 루벤 가문의 주장은 근거가 없이 스스로 자처한 것이었다. 아르메니아 본토와는 멀리 떨어진 킬리키아에 건국되었으며, 이 국가 때문에 해당 지역은 '소 아르메니아'라고 불리기도 했다. 수도는 본래 타르소스였으나 나중에는 시스로 옮겨갔다. 처음부터 왕을 칭한 것은 아니며 건국 당시에는 공국이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십자군 편을 들었지만, 동로마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안티오크 공국과도 사이가 나쁜 탓에 안 그대로 룸 술탄국에게도 시달리던 와중에 기독교군과도 연이어 싸워야 했다. 유달리 동로마에게도 허구헌 날 털렸는데 공작 레본 1세는 동로마군에게 잡혀 3년동안 갇혀있다가 죽었으며 동로마 측은 사로잡은 세자인 루벤을 두 눈을 멀게하고 절망 속에 죽게 했다. 그나마 둘째인 도로스가 탈출하여 도로스 2세로 즉위하여 동로마 제국군을 한번 물리치기도 했지만 곧 반격당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결국 1158년 동로마 황제 마누일 1세에게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며 충성을 다짐하면서 동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도로스 2세가 죽고 나서 레본 2세는 십자군과의 관계 개선 및 서방 측과 우호 관계를 맺으며 동로마 정교회와 가톨릭 측에게 중립적으로 나서는 외교를 했다. 동로마의 반발에 이슬람군 견제를 내세워 명분화했고 아르메니아 공국에서 이름도 아르메니아 왕국으로 바꾼다. 이 시절에 그래도 안정적인 통치를 벌이기도 했지만 이후, 후계자 내분으로 또 동로마 및 기타 세력의 분열과 침공을 받아야 했다. 또한 국민의 다수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였지만, 왕실[2]은 가톨릭과 우호적이었고 1198년 레본 2세 (왕국 승인 후에는 레본 1세) 교황 승인 하의 대관식을 위해 가톨릭과의 일치를 선언하여 민심을 크게 잃기도 했다. 아들이 없던 레본 2세는 본래 조카 알리스가 안티오크 공국의 공자 레몽 (1199년 사망)과 결혼하여 낳은 종손 레몽 루벤을 후계자로 삼았으나 1216년 늦둥이 딸 자벨이 태어나자 변심하여 그녀로 대체하였다.
1219년 레본이 사망한 후 아르메니아 왕국은 선왕의 어린 딸 자벨과 장성한 종손이자 보에몽 4세의 조카 레몽 루벤 간에 분열되었고, 후자는 교황의 지지와 함께 타르수스를 장악하였다. 하지만 1220년 자벨의 섭정 램프론의 콘스탄티노스가 타르수스를 포위하였고, 이에 레몽 루벤은 동맹인 구호기사단에 도움을 청했으나 그들 역시 안티오크 공국에 맞서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3개월 간의 포위 끝에 도시는 항복하였고, 포로가 된 레몽 루벤은 얼마 후 옥사하였다. 1226년 콘스탄티노스는 아들 헤툼 1세와 자벨을 결혼시켰고, 이로써 루벤 왕가는 램프론 출신의 헤툼 왕가로 대체되었다. 헤툼 왕가는 약 800년 전에 멸망한 고대 아르메니아 최후의 왕가인 아르샤쿠니 왕조의 아주 먼 후손을 자칭하였다.
13세기 중반 들어 셀주크를 뭉개던 몽골에게 협력하며 일단 몽골의 속국이지만 침략을 받지않고, 몽골군과 같이 손잡고 1260년 다마스쿠스를 뭉개기도 해다. 그러나 새로 일어난 맘루크 왕조에게 보복당해 거꾸로 1275년 수도인 타르수스가 함락되어 수만여 명이 학살당하거나 노예가 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아르메니아를 도우러 온 몽골, 즉 일 칸국군도 1281년 맘루크군에게 참패하면서 이제는 맘루크 왕조에게 굴복하여 속국이 된다. 칼라운에게 온갖 굴욕적인 요구를 당하며 이를 갈던 아르메니아는 1298년 다시 일 칸국군과 손잡고 맘루크군을 뭉개며 설욕했지만 또다시 맘루크군에게 제대로 공격받는다. 1303~04년까지 벌인 홈스 전투를 비롯한 시리아 전선에서 아르메니아-일 칸국 연합군은 참패했고 이후 맘루크의 속국이 되어 시달리다가 십자군을 다시 일으켜 연합하려고 했지만 사전에 들켜 왕이 폐위당하고 맘루크군에게 또 나라가 털리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국왕 레본 4세는 키프로스 왕국과 손잡으려고 했지만 키프로스 측의 강압적인 요구[3]에 백성들은 반발했고, 많은 백성을 억누르며 불만을 탄압하던 레본 4세는 결국 반대파에게 1341년 암살당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레본 4세의 사촌인 기 드 뤼지냥이 콘스탄틴 2세로 새롭게 즉위하지만 이 양반은 가톨릭 신자라서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대다수인 아르메니아 백성들과 충돌이 벌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어 같은 기독교끼리 내분에 시달리던 와중에 맘루크군의 대대적인 공격까지 이어지며 1375년 허무하게 멸망했고 마지막 왕인 레본 5세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거기에서 1393년 죽었다.
3.1. 대중 매체에서 등장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 DLC의 아르메니아 문명은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코카커스 캠페인에서 도로스 2세가 다루어졌다.
3.2.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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