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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336년부터 1381년/1399년까지 아나톨리아 중동부 지역을 통치했던 왕조. 왕조를 개창한 에레트나는 본래 일 칸국의 장군 출신이였다. 14세기 중반에 카라만 왕조와 함께 아나톨리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였으나, 에레트나 사후 벌어진 내전으로 인하여 쇠퇴하였다. 이후 1381년 권신 카디 부르한 알 딘에게 술탄위를 찬탈당했으며, 1399년 오스만 술탄국의 술탄 바예지트 1세의 침공으로 완전히 멸망했다.2. 역사
2.1. 성립
에레트나 왕조의 시조인 에레트나는 본래 일 칸국의 아나톨리아 총독이던 하산 부즈루그의 휘하 장군이였다. 그러나 하산 부즈루그가 일 칸국 중앙 정권의 정쟁에 개입하여 자리를 비우게 되자, 1336년에 아나톨리아의 새로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에레트나 왕조는 당시 일 칸국의 붕괴로 혼란하던 주변의 정세로 인해 주변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1330년대부터 1340년대 초까지 둘카디르 왕조, 추판 왕조 등의 주변 세력들이 에레트나 왕조를 공격해왔으며, 특히 추판 왕조는 에르진잔, 에르주룸 등을 점령하고 에레트나를 크게 위협했다. 다행히 1343년 에레트나가 추판 왕조의 침공군을 크게 물리쳤으며, 에레트나는 술탄을 칭하고, 카이세리를 수도로 정하여 완전한 독립을 선포하게 된다.2.2. 전성기
건국 이후 에레트나 왕조는 과거 일 칸국이 아나톨리아 내에서 가지고 있던 세력을 계승하여 앙카라 동쪽부터 에르진잔까지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확보해 사실상 아나톨리아 동부 지역을 석권하였다. 에레트나는 일 칸국 붕괴 이후의 내전에서는 본래 자신의 상관이였던 하산 부즈루그가 세운 왕조인 잘라이르 왕조를 지지하였고, 1343년 이후 추판 왕조는 점차 쇠퇴하였으며, 잘라이르 왕조가 추판 왕조를 격파하고 1357년에는 끝내 멸망시키면서 에레트나 왕조는 외세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된다. 에레트나 왕조는 아나톨리아 최강국으로서 스미르나 십자군 때 아이딘 왕조를 지원하는 등 기존에 카라만 왕조가 하고 있던 아나톨리아의 왕초 노릇을 대신했고, 1350년에 카라만 왕조의 베이 아흐메트를 죽이고 콘야를 잠시 점령하는 등 카라만 왕조를 에레트나 왕조의 신질서 아래에 편입시키는데 성공하였다.2.3. 쇠퇴
1352년 왕조의 시조 에레트나는 사망했고, 그의 아들 기야스 알 딘 메흐메트가 술탄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이후 에레트나 왕조는 1354년 메흐메트의 이복동생 자파르가 술탄위를 찬탈하는 것을 시작으로 내전에 휩싸여 쇠퇴하기 시작한다. 내전에 패배하여 술탄위를 찬탈당한 메흐메트는 카라만 왕조로 달아났다가 1355년 아히 베이국의 도움을 받아 술탄위를 되찾았고, 자파르는 맘루크 왕조 치하의 이집트로 쫓겨났다. 이로 인해 맘루크 왕조와 에레트나 왕조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1361년 메흐메트는 맘루크 왕조를 두려워하던 둘카디르 왕조와 동맹을 맺고 당시 맘루크 왕조의 영토이던 말라티아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메흐메트는 말라티아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다마스쿠스의 맘루크 총독이 이끌고온 2만4천 대군에게 패하여 말라티아를 잃고 만다.메흐메트의 원정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그의 정치적 입지는 몰락했고, 1363년에 또 다시 반란이 일어나자 메흐메트는 이번에는 맘루크 왕조의 영토인 시리아로 달아난다. 이후 메흐메트는 1365년에 또 다시 복위에 성공하지만, 그 직후 그의 13살짜리 아들 알리를 술탄으로 옹립한 반군 세력에 의하여 살해당하고 만다. 메흐메트의 치세 이후 에레트나 왕조의 영토는 점차 축소되었다. 흑해 연안의 카닉 베이국이 에레트나 왕조의 영향권에서 독립해나갔으며, 아마시아와 에르진잔 등의 주요 도시들도 독립하였다. 서쪽과 동쪽 끝의 영토는 오스만 베이국과 백양 왕조에 의하여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