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3:37:41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Cristóbal Balenciaga
파일: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jpg
본명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에이사게레
Cristóbal Balenciaga Eizaguirre
출생 1895년 1월 21일
스페인 왕국 바스크 기푸스코아주 게타리아
사망 1972년 3월 23일 (향년 77세)
스페인국 하베아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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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기업인, 패션 디자이너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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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패션 디자이너. 발렌시아가의 창립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였다.

2. 생애

1895년 스페인 바스크 기푸스코아주의 어촌도시인 게타리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옷을 만들던 어머니를 따라 옷을 만들기 시작한 그에게는 옷을 만드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그가 13세가 되던 해 마드리드에서 카사 토레스 후작 가족의 별장에 놀러간 그는 후작 부인이 입은 드레스를 빌려가 며칠 후 부인에게 똑같이 만든 옷을 내보였다. 카사 토레스 후작부인은 프랑스 장인이 만든 오트 쿠튀르 옷보다 더 꼼꼼한 그의 바느질 솜씨에 감탄하였고, 그를 산 세바스찬에 있는 부티크에 추천했다.

이후 휴양지 산세바스티안으로 이동해 부티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영국식 테일러링, 상류층에 문화를 배웠고 뛰어난 바느질 솜씨와 완벽주의를 고집하는 성격으로 1917년 발렌시아가를 옷가게를 차려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후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딴 에이사라는 이름으로 바꿨고 산세바스티안을 본점으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도 지점이 생겼으나 1937년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조르주 생크거리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발렌시아가' 부티크를 1937년 8월에 오픈했다. 17세기 화가 벨라스케스에게서 영감을 받은 첫 번째 파리 컬렉션으로 하루 만에 파리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프랑스 패션에 공헌한 것이 인정되어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오트쿠튀르보다 프레타 포르테가 패션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꾸뛰리에로서의 자존심을 지닌 발렌시아가는 1968년 마지막 컬랙션을 만들고 은퇴를 선언했다.[1]

이후 스페인으로 돌아가 4년이 지난 1972년 지병인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1]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부분인데, 디자이너들과 재봉사, 패턴사는 별개의 직업이다. 그래서 수석 디자이너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중에는 아예 재봉이나 패턴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말로 디자인만 공부하며, 디자인만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바느질을 배우긴 하지만 진짜 기술자들에 비하면 실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발렌시아가는 디자인은 물론 재봉 등 옷 제작 전반을 통틀어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가브리엘 샤넬이 '발렌시아가만이 진정한 꾸뛰리에'라고 부른 이유가 이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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