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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사보르 원내 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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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플렌코비치 내각 (2020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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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 |||||
크로아티아 민주연합 6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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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민주세르비아당 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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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공급 | |||||
크로아티아 인민당 – 자유민주 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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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사회자유당 2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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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수령자 크로아티아당 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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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5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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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 |||||
사회민주당 3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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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농민당 2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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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당-
시민자유동맹 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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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리아 민주의회 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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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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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운동 12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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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야당 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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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녹색 연합 6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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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7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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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15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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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vatska seljačka stranka | |
약칭 | HSS |
한글명칭 | 크로아티아 농민당 |
상징색 |
초록색
|
슬로건 |
Vjera u Boga i seljačka sloga! 신에 대한 믿음과 농민의 조화! |
대표 | 크레쇼 벨랴크(Krešo Beljak) |
창당일 |
1904년
12월 22일(창당) 1989년 12월 15일(재창당) |
이념 |
녹색 정치 자유주의 농본주의 사회자유주의 반파시즘 공화주의 친유럽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좌파 |
주소 | Ul. kralja Zvonimira 17, 10000, 자그레브 |
청소년 조직 | HSS 청소년 단체 |
정당 연합 | 정의의 물결 |
당가 |
Slavni sine hrvatskoga roda 크로아티아인의 유명한 농부아들 |
사보르 의석 수 |
1석 / 15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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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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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크로아티아의 농본주의 정당으로 크로아티아 정당들 중에서 중간 단절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되었다.2. 역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지배를 받을 때인 1904년에 스체판 라디치(Stjepan Radić)에 의해 크로아티아 인민농민당(Hrvatska pučka seljačka stranka, HPSS)으로 결성되었다. 크로아티아 농민을 위한 이익에서 시작하였지만, 점차 민족주의 정당으로도 발전하면서 크로아티아인 있는 지역으로 확장하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들어서면서 크로아티아인을 위한 유일한 정당이자 제2당으로 남아 있었으며, 사회주의적 농민 운동 정당으로부터 세르비아인의 패권주의에 반대하는 크로아티아인 민족주의 정당으로 변하였다.1920년에 크로아티아 공화농민당(HRSS)으로 변경하여서 공화제 주장에 나서기 시작하였지만, 선거에서 번번히 제2당에만 머문데다가 알렉산다르 1세의 압박으로 1927년에 현재의 당명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1928년에 스체판 라디치 당수가 암살[1]당한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불안정해지면서 결국 전제군주제가 도입되었다. 1934년에 알렉산다르 1세의 암살 이후에 다시 입헌군주제로 되돌리고 나서 1935년, 1938년 총선에서 야권연합을 구성해 선거를 치렀지만, 다시 야당으로 머물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1940년, 그 전 해 출범한 크로아티아 자치주(Banovina of Croatia)의 지방선거에서 대부분 승리한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유고슬라비아 침공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유고슬라비아 전역 당시 대부분의 당원들이 중립에 가까웠고, 일부는 우스타샤[2]나 체트니크에 동참했다. 그리고 종전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자 위헌정당으로 전락하였고, 당 지도부는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 자유선거로 전환되자 다시 돌아와서 선거에 참여했고, 이듬해 크로아티아가 독립하자 크로아티아 인민당 – 자유민주와의 정당 연합을 결성하여서 의석 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른 적도 있으며, 크로아티아 민주연합과도 손을 잡은 적이 있다. 현재는 연합 재개(Restart koalicija)라는 정당 연합에 구성 정당으로 유지 중이다.
3. 성향
일반적인 농본주의 정당들이 우파에 가까운 달리 이 정당은 좌파성향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초 창당 당시에 여성을 사회문화적으로 발전시키고, 평등과 참정권 획득을 위해서 설립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 20세기 초 창당한 만큼 지금의 성향과 달리 보수적인 영향이 있어서 기독교 민주주의, 사회보수주의 성향이 강했다.그리고 녹색보수주의와 다르면서 농본주의와 대립하는 환경에도 관심을 드러내면서 진보 정당으로 꼽히고 있다. #
[1]
주위에서 암살당할 수 있다는 첩보를 말했지만, 그는 전쟁의 군인처럼 의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으로 의회에 갔다. 의회 내 문자 사용을 키릴 문자로 할지 로마자로 할지 법안 회의가 끝나자 몬테네그로계 세르비아인 정당 인민급진당의 푸니샤 라치치(Puniša Račić) 당수의 사주를 받은 자에 의해 암살되었다.
[2]
그 이전에
크로아티아 시민 및 농민 보호라는 준군사조직이 있었는데, 이들이 2차 대전 당시 우스타샤에 동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