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12:53:28

코쿠보 테츠야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0000><tablebgcolor=#ff0000> 파일:히로시마 도요 카프 엠블럼.svg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25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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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25 아라이 타카히로
1군 77 후지이 아키히토(1군 수석코치) · 83 아사야마 토요(타격코치) · 89 코쿠보 테츠야(타격코치)
80 아카마츠 마사토(외야수비·주루코치) · 90 미요시 타쿠미(내야수비·주루코치)
74 나가카와 카츠히로(투수코치) · 86 키쿠치하라 츠요시(투수코치) · 81 이시하라 요시유키(배터리코치)
2군 71 코 신지(2군감독) · 85 후쿠치 카즈키(수석 겸 타격·주루코치) · 84 아라이 료타(타격코치)
72 히가시데 아키히로(내야수비·주루코치) · 75 히로세 쥰(외야수비·주루코치)
82 요코야마 류지(투수코치) · 87 타카하시 켄(투수코치) · 76 쿠라요시 카즈(배터리코치)
3군 78 우네 타츠미(총괄 겸 기숙사장) · 91 무카에 유이치로(야수종합코치 겸 전력분석담당)
73 코바야시 칸에이(투수육성강화코치) · 92 노무라 유스케(투수코치 겸 전력분석담당)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선수
틀: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돌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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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쿠보 테츠야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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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히로시마 도요 카프]] 등번호 12번}}}
시라하마 유타
(2004-2007)
코쿠보 테츠야
(2008~2009)
타케우치 히사시
(201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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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노리
(2005-2009)
코쿠보 테츠야
(2010~2020)
야노 마사야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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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요시 유키
(2017-2021)
코쿠보 테츠야
(2021)
사카모토 코시로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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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모토 카츠미
(2007-2020)
코쿠보 테츠야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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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小窪哲也.jpg
<colbgcolor=#ff0000><colcolor=#ffffff> 히로시마 도요 카프 No.89
코쿠보 테츠야
小窪哲也 / Testsuya Kokubo
생년월일 1985년 4월 12일 ([age(1985-04-12)]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나라현 카츠라기시
포지션 3루수, 2루수, 1루수[1]
투타 우투우타
학력 PL학원고교 - 아오야마가쿠인대학
프로 입단 2007년 대학생ㆍ사회인 드래프트 3위 ( 広島)
소속 구단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08-2020)
히노쿠니 샐러맨더스[2] (2021)
치바 롯데 마린즈 (2021)
지도자 경력 히로시마 도요 카프 1군 내야수비・주루코치 (2022~2023)
히로시마 도요 카프 1군 타격코치 (2024~)
등장곡 ONE OK ROCK - 努努 -ゆめゆめ-
1. 개요2. 선수 경력
2.1.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2.2. 독립 리그 시절2.3.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3.1. 2021 시즌
3. 은퇴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도요 카프 소속 코치.

2. 선수 경력

어린 시절에는 수영을 하고 있다가 친구를 많이 만들기 위해 야구부에 가입했다고 한다. 이후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선출되며 이름을 날렸고 고등학교는 당시 최고의 명문 야구부이던 PL학원고교로 진학. 고교 시절에도 코시엔에서 6타수 5안타를 날리고 고교야구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었다.

고교 졸업 이후 아오야마가쿠인대학으로 진학하여 4차례나 베스트나인을 수상하였다. 대학교 졸업반이던 2007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로 히로시마의 지명을 받았다.

2.1. 히로시마 도요 카프 시절

신인 시절부터 1군 스프링캠프에 배정되었으나, 캠프에서 생 과식으로 배탈이 나는 바람에 캠프 합류부터 늦어지더니 결국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몇 주 후 2군을 폭격하며 바로 1군 승격.[3] 승격 후에도 해설자 오오시타 타케시[4]로부터 히로시마에 부족했던 내야수가 이제야 나타났다는 호평을 들었다.

그러나 무조건 주전보장을 받을 만큼 출중한 실력은 아니었기 때문에 같은 포지션의 스타플레이어나 용병 선수에게 치여서 보통 대타, 플래툰, 내야 백업 유틸리티를 왕복하면서 주전자리를 보장받지는 못했다. 물론 2할대 중후반 타율에 중거리 타자 정도의 장타력이 있었고,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했기 때문에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한 것이지 1군에 자리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첫 3년을 제외하면 시즌 200타석을 넘긴 해도 없었다. 즉 수비, 타격 모두 어느 정도 능력치를 갖고는 있지만, 팀에서 1순위 옵션으로 생각할 만큼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던 셈. 그래도 2016년부터 2년 간 팀 선수회장[5]을 맡을 만큼 나름대로 프랜차이즈 취급은 받았던 모양.

특히 이런 내야 유틸 선수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수비 능력치가 내려가면 팀에서 빠르게 버려지는 것처럼 코쿠보도 점차 출전 기회가 줄더니, 2020년에는 겨우 3경기 출전에 그쳤다. 팀에서는 코치 선임을 제안하였으나 본인이 현역 연장을 바랐기 때문에 그대로 방출.

2.2. 독립 리그 시절

이후 새 팀을 찾지 못했고, 전문학교 야구부와 개인 훈련을 하는 등 시간을 보내다가 6월에 큐슈 지역 독립리그팀인 히노쿠니 샐러맨더스에 입단하였다. 독립 리그에서는 3개월 정도 뛰면서 18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421에 1홈런 12타점, 출루율 .500을 기록하였다.

2.3.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이후 8월 31일,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영입 발표를 하였다. 참고로 2021년 기준 NPB의 선수 영입기한은 딱 8월 31일. 즉 막바지의 막바지까지 버티다가 간신히 NPB에 돌아온 셈이다.

2.3.1. 2021 시즌

2군 경기를 몇 번 뛰다가 바로 1군에 올라왔다. 타격은 좋지 않지만 현재 롯데의 1루수 자리가 애매했기 때문에 그냥저냥 1루수로 쓰고 있다.[6]

이적 첫 경기에서 바로 홈런을 쳤지만 이후 안타를 치지 못하고 7경기만에 2군행.


그리고 10월 29일, 그대로 은퇴를 선언하며 롯데 생활은 두 달 만에 끝났다.

3. 은퇴 이후

친정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돌아가 1군 내야수비・주루코치를 맡는다. 2020년 시즌 후 팀에서 코치 계약을 제의했으나 거절했는데 결국 1년의 시간 차이는 있었지만 팀의 제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그럭저럭 쓸 만한 타격력과 수비력을 가지고 있다. 수비력은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한 느낌이고, 타격은 2할대 중후반 타율에 풀 시즌으로 칠 시 2루타 20여개와 홈런 5~10개 정도가 가능한 장타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특출나게 뛰어난 느낌은 없어서 그냥 1군에서 백업으로 버티는 정도에 그쳤다.

그 외에도 게임 내적으로도 멘탈이 강한 듯. 승부에 강하고 리더십도 좋다고 한다.

5. 여담

  •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두 주장을 맡았다고 한다. 리더십이 좋다는 말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닌 듯. 프로에서도 주장이 없는 히로시마에서 선수회장을 맡았으니 사실상 프로까지 주장을 맡았던 셈. 독립리그 시절에도 프로를 꿈꾸는 젊은 선수들에게[7] 여러가지 도움을 줬다고.
  • 같은 고향 출신의 동갑내기 오기노 타카시와 친구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사이이며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한다. 다만 아마추어 시절에는 코쿠보가 더 스타플레이었다고 하며[8], 오기노는 중학교 시절 공부해야 한다고 야구부 활동을 잘 하지 않았고, 고등학교도 야구보다는 성적대가 높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둘이 붙어있던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은 공부를 주로 한 오기노나 야구에 전념한 코쿠보나 비슷한 대학을 갔다.[9] 대학 시절에도 둘 다 국가대표에 뽑히긴 했는데 둘 다 유격수라 오기노가 코쿠보의 백업 멤버였다. 프로에서는 오기노가 외야로 전향한 후 코쿠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 것이 아이러니. 그리고 2021년 8월 31일부터 둘은 한 팀에서 뛰게 되었지만 두달만에 헤어졌다.

[1] 유격수도 볼 수 있었지만 중도에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말년에는 사실상 1루수만 본 수준. [2] 독립 리그 팀. [3] 이 시즌이 1군 기회가 제일 많은 시즌이었다. [4] 히로시마에서 선수, 코치생활을 모두 해본 사람이었다. [5] 원래 일본프로야구는 팀별로 주장과 선수회 회장을 별도로 두지만, 히로시마는 2009년 이후로 2020년까지 주장 제도를 폐지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선수회장이 사실상 주장의 역할을 하는 느낌. [6] 이노우에 세이야는 올 시즌 타격 성적이 너무 망한 데다가 나이도 많아서 사실상 에이징커브 취급을 받고 있으며, 브랜든 레어드는 허리가 좋지 않아 1루 수비가 3루 수비보다 나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1루수랑 맞지 않다. 나머지 1루수가 가능한 선수들 중에서는 오카 히로미처럼 본업이 외야수거나, 오가와 류세이, 미키 료처럼 타격이 전혀 안 되는 수준. [7] 코쿠보가 뛴 히노쿠니 샐러맨더스의 선수단 중 NPB 경력자는 코쿠보까지 딱 2명이었다. [8] 코쿠보는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부 에이스로 유명했다고 한다. 반대로 오기노의 경우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발은 빨랐지만 엄청나게 잘하는 느낌은 아녔던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한다고 야구를 잘 안 한 것도 있고. [9] 오기노는 칸세이가쿠인대학, 코쿠보는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각각 칸칸도리츠와 MARCH인데 두 라인은 동급으로 간주된다. 원래 운동부 입시가 실력대로만 갈리는 것이 아니므로 오기노가 야구에 전념했다고 해도 오히려 그보다 낮은 대학을 갔을 가능성도 높긴 하니 뻘짓은 아니겠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단 오기노는 대학 시절까지 야구로 1라운더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선수는 아니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