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다 4명신 | ||||
야마가타 마사카게 | 바바 노부후사 | 나이토 마사토요 | 코사카 마사노부 |
전국 3탄정[1] | ||||
사나다 유키타카 | 코사카 마사노부 | 호시나 마사토시 |
高坂昌信 (こうさか まさのぶ)
(1527년 ~ 1578년 06월 12일)
1. 개요
다케다 4명신의 한 사람. 후퇴단죠(逃げ弾正).[2]로 유명하다.2. 상세
젊었을 때 이름은 카스가 토라츠나(春日虎綱)[3] 또는 카스가 겐고로, 겐스케(겐노스케)다.풍림화산 등의 드라마에서 신겐이 '단죠(弾正)'라고 부르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원래 다케다 신겐의 엘리트 근위 무사 출신으로, 최초 출사는 1552년 아시가루 대장. 그리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1556년에는 우에스기가와의 접경 지역이자 최전선인 카이즈성(海津城)의 성주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본래 성은 카스가(春日). 하지만 신겐의 시나노 정복을 전후하여, 시나노의 호족이었으나 우에스기 가문과 내통하여 숙청당한 코사카(高坂) 가문의 양자가 되어 코사카 마사노부로 개명했다.
신중한 성격으로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괴멸시킨 후, 모든 장수가 추격을 주장할 때 유일하게 너무 깊숙히 쫒아가는 것을 피하도록 진언한 사실로도 알 수 있다.[4] 물론 이 당시의 이에야스는 말 위에서 똥을 쌀 정도로 혼비백산하여 실제로 줄행랑을 치고 있었으나, 최고의 상황에서도 최악의 돌발 상황을 언제나 대비하였던 그의 성격이 나타나는 일화이다.
세심한 면이 있어서 카와나카지마 전투에서는 전사자의 피아를 가리지 않고 후하게 장사를 치러줬으며,[5] 우에스기 측에 인도할 때에도 적극 협조하였다. 나가시노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으나 다케다의 군세가 대패한 사실을 미리 알고, 패잔병들이 주눅들지 않도록 미리 새 옷을 준비했다가 갈아입혔다. 참고로 이 전투에서 마사노부의 아들 마사즈미도 전사한 상황이었다.
다케다 신겐와는 와카슈도의 관계였던 듯 하다. 증거로 다케다 신겐이 코사카 마사노부에게 보낸 러브레터가 사료로써 남아있다. 편지 전문은 이렇다.
1.지금까지 야시치로에게 수작을 건넸던 일은 몇번 있으나, 복통이라는 등 이런저런 구실로 거절당했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2.나는 야시치로와 육체 관계를 맺은 일이 없다. 이전에도 결코 그런 적이 없고, 낮에도 밤에도 그런 일은 없었다. 하물며 오늘 밤 그런 생각은 꿈에도 갖고 있지 않다. 3.그대와 맺어지고 싶다고 생각하여 이런저런 손을 쓰고 있는 차에, 거꾸로 의심을 받으니 안타깝다. 지금까지 한 말에 추호라도 거짓이 있다면, 고슈 제1, 2, 3 대명신,[6] 후지, 하쿠산 신사의 신들, 거기에 하치만 대보살, 스와상하명신(諏訪上下明神)에게서 벌을 받을 것임을 신들 앞에 서약한다. 본래대로라면 보인[7]에 써야 하지만, 심부름꾼의 눈도 있고 해서 보통의 종이에 써서 보낸다. 내일이 고쳐 써서 보내겠다. - 7월 5일, 카스가 겐노스케에게, 하루노부 |
즉, 내 맘 속엔 너뿐이다. 걔랑 잔 적 없다.라는 서찰을 부하 무장에게 보냈다는 얘기다. 사실 전국 시대에 무사 계급에서 주군과 친위 무사, 가신 간의 성애 관계는 '슈도'라고 불리며 일반시되던 것이라서 당시에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자세한 것은 중도의 항목을 참조.
다케다 4명신 중에는 상당히 젊은 편으로, 나가시노 전투에서 대패한 후에도 4명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다케다가 부흥을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대응하기 위해, 숙적인 우에스기와의 동맹을 모색해서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8] 동맹이 맺어진 직후인 1578년 6월, 카이즈성에서 병사했다. 다케다 신겐의 군략에 대한 중요한 사료인 '코요군칸(갑양군감)'의 저자라고 알려져 있으나 코요군칸은 사료로서 신뢰성을 의심받는 책이어서 실제 저자인지 후세의 가탁인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여러 대중 매체에서는 위의 동성애 관계 때문에 점차 대놓고 섹드립에 가까운 묘사가 늘고 있다. 일본의 인터넷에서는 이것 때문에 '후퇴 단죠(逃げ弾正)'를 비틀어서 '바텀 단죠(受け弾正)'라고 불리는 상황.
코사카 가문은 코사카 마사사타(高坂昌定)가 살아남아서 은거했다가 그의 손자인 코사카 마사쿠니(高坂昌国)와 그 형제가 도쿠가와 히데타타의 사생아이었던 호시나 마사유키 이나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이 되어서 메이지 시대까지 이어진다.
3.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
1988년 NHK 대하 드라마 다케다 신겐에서는 농민 출신으로 등장한다. 활을 잘 쏘고 명민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무사로 벼락 출세하는데, 농민 시절 동료들을 부끄러워할 법도 하지만 친절하게 대해주고 무사가 된 자신을 질투하는 그들과 이야기할 때는 농민 말투를 사용하는 등 정직하고 소박한 인물이다. 꽃미남이지만 게이는 아니다. 오히려 우에스기 쪽의 쿠노이치와 러브스토리를 전개하기도 한다.2008년 NHK 대하 드라마 풍림화산에서는 주인공 야마모토 간스케의 제자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농민 출신이지만 간스케가 다케다 가에 임관할 때 그를 도운 것을 시작으로 다케다 신겐의 눈에 들어 다케다 가에 사관, 이후 착실하게 무사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설정상 추악한 용모인 간스케에게도 이렇다할 거부감없이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가르침을 받는 등 건전한 사고 방식을 지닌 청년으로 묘사된다. 이쪽은 꽃미남이라기보다는 서글서글한 이미지의 훈남 타잎인데, 간스케와 처음 만났을 때 간스케가 그의 얼굴을 부여잡고 잘생겼다고 감탄하기도 했으며, 이후 무사로 중용되는 그를 보는 신겐의 미소가 매우 묘하다. 다만 간스케의 양녀와 맺어질 것을 언약하긴 하는데 러브 스토리라기보다는 스승 간스케에 대한 예우라는 느낌이 강하고, 그나마 그 직후가 제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다.
4. 노부나가의 야망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
노부나가의 야망 신생 |
신생에서 능력치는 통무지정순으로 87/77/87/67.
노부나가의 야망 천상기에서는 소소한 이벤트의 주인공. 다케다 신겐을 스승으로 하고 마사노부를 제자로 해서 씨름을 교육시키면 낮은 확률로 이런 회화를 볼 수 있다.
신겐 : "마사노부, 두 번 다시 너 이외의 다른 사람과는 씨름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겠다."
마사노부 : "영주님, 마사노부는 이미 넋을 잃을 정도로 영주님께 반했습니다."
신겐 : "아아, 이대로 계속 자네와 씨름이나 하면서 지낼 수 있다면 좋겠군…."
마사노부 : "영주님, 아직 한낮입니다. 그 다음은 오늘 저녁에라도…."
마사노부 : "영주님, 마사노부는 이미 넋을 잃을 정도로 영주님께 반했습니다."
신겐 : "아아, 이대로 계속 자네와 씨름이나 하면서 지낼 수 있다면 좋겠군…."
마사노부 : "영주님, 아직 한낮입니다. 그 다음은 오늘 저녁에라도…."
위의 연애 편지 사료도 그렇고 실제 관계를 반영한 훌륭한 고증이다. 이건 정발판에서도 그대로 나오는데 상술되었듯이 낮은 확률로 볼 수 있는 이벤트이니 세이브 로드 신공을 이용하거나 열심히 씨름을 시켜주자.[9]
신장의 야망이 많이 벤치마킹한 명작 시뮬레이션 '전국몽환'에서는 전투, 지모, 정무, 교섭 모두 B다.
센고쿠히메에서는 조용하다 못해 소심한 성격으로 등장한다.
오다 노부나의 야망에서는 회의 때마다 도망치자는 이야기만 하는 여무장으로 등장한다.
태합입지전에선 4명신중 가장 평가가 좋다. 4명신 중 유일하게 군학이 4렙에, 후반 시나리오가 아니면 신분도 성주가 아닌 가로이기 때문에 다케다의 풍림화산을 배우려는 유저들의 영원한 친구다.
[1]
탄정(彈正) → 군 역직의 일종, 단죠.
[2]
가장 어려운 임무 중 하나인 후퇴하는 아군의 후위를 담당하여 이 역할을 잘 수행해서 얻은 별명이라는 설과,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붙었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 정발된 천상기와 장성록에서는 교묘한 탄정으로 의역했다.
[3]
일본어 위키피디아에서는
문서 표제가 이 이름으로 되어 있고, '코사카 마사노부'는 리다이렉트 처리되어 있다.
[4]
별명 '후퇴 단죠'의 유래가 된 일화라고도 한다.
[5]
다케다 가신단의 동료 사이인 무장 하라 토라타네도 비슷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우에스기 군의 부상당한 노장을 손수 간호하고 적진에 바래다 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6]
가이에서도 중요하게 꼽히는 3대 신사의 신들을 합쳐서 일컫는다.
[7]
쿠마노 신사에서 발행하는 부적. 쿠마노고오의 세이시('서사')라고 불리는 문서로, 이 문서에 써서 서약한 것을 어기면 천벌을 받아 죽임을 당해 지옥에 떨어진다는 신앙이 있어서 일본에서는 귀천을 막론하고 널리 맹세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8]
코에츠동맹(甲越同盟). 그런데 다케다 가문에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되지 않았다.
[9]
참고로
오다 노부나가를 스승으로 하고
모리 란마루를 제자로 해서 씨름을 교육시켜도 낮은 확률로 똑같은 장면을 볼 수 있다. 다만 대사가 좀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