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5-14 07:34:12

카와이 키사부로

파일:신센구미 깃발.svg
신센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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河合耆三郎 (카와이 키사부로)
덴포 9년( 1838년) ~ 케이오 2년 2월 12일( 1866년 3월 28일)

1. 개요2. 사망

1. 개요

신센구미 회계.

하리마 국의 다카사고 출신으로 집안은 부유한 쌀 도매상 출신이였다. 오사카로 시집 온 여동생이 신센구미의 소식을 듣고 가입해보라 권유하고 이에 입대했다고 알려져있다.[1]

주로 부대의 회계로써 돈 관리를 맡았으며, 비록 전투원이 아닌 회계였으나 이케다야 사건에도 참가하여 포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2. 사망

케이오 2년 (1866년) 2월에 국중법도를 어긴 벌로 할복을 하게 되었으며 할복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 회계 실수로 곤도 이사미의 첩이자 게이샤였던 미유키 다유를 술집에서 빼오는 비용[2]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설.[3]
  • 착각으로 인해 미유키 다유가 아닌 다른 게이샤를 빼오는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이로 인해 회계 실수를 일으켰다는 설.
  • 곤도의 거듭된 여성 관계와 그로 인한 낭비로 부대 비용 관리 책임자로써 난색과 쓴소리를 했기 때문에, 배제 대상이 되어 숙청되었다는 설.
  • 회계라는 자리를 악용하여 자금을 빼돌려 몰래 반란을 계획하다가 폭로되었다는 설.
  • 회계로써의 임무를 망각하고 개인적으로 횡령을 했다는 설.

다만 무사 집단이였던 신센구미에서 회계가 가능한 인원을 대체하기가 힘들었는지 할복 기간까지 회계 실수로 인해 없어진 자금을 충당해 올 경우 할복을 면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에 카와이는 친가로 부족한 자금을 교토로 보내 달라고 사자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운이 없게도 당시 친가에선 바쁜 나머지 자금을 바로 보낼 수 없어서 늦게 보내게 되었으며 그 자금은 카와이가 할복 한 후에 도착했다고 한다.

자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늦었다는 이유로 할복을 당한 사실을 들은 친가에서는 매우 분노하였으며 후에 신센구미에서 세운 무덤과는 별도로 아들을 공양하기 위한 공양탑을 당시 신센구미의 주둔지였던 미부데라에 세웠으며 그 공양탑은 아직도 미부데라에 남아있다.

대하드라마 신센구미!에선 책사인 다케다에게 대출을 해주었다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사망한걸로 각색되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매우 좋게 나왔으며 불쌍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1] 이 때문에 나가쿠라 신파치가 카와이의 출신을 오사카 출신으로 적게 된다. [2] 미유키 다유를 500냥을 주고 빼왔다고 하며 에도 막부 말기의 1냥은 약 5만엔 정도로 2500만엔씩이나 지불하고 그녀를 빼온 것이 된다. [3] 다만 이는 미유키 다유를 빼온 시기와 카와이 숙청 시기가 많이 동떨어져 있어 신빙성이 얇다고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