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도시
카스카이스 Casca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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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D6938><colcolor=#fff>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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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 포르투갈 리스본 지방 리스보아현 | ||||
면적 | 97.4km2 | ||||
인구 | 214,158명[1] | ||||
시간대 | UTC0 (WET) | ||||
우편번호 | 2750 | ||||
링크 | 공식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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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의 도시. 리스본 인근에 위치한 휴양지로 유명하다.2. 역사
기원전 2000년경부터 정착촌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1147년, 리스본과 신트라 등이 레콩키스타를 통해 이슬람 세력권으로부터 가톨릭 세력권으로 넘어가면서 같이 편입되었다.
1370년 4월 8일, 신트라로부터 독립된 지역이 되었다.
1493년 3월 4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의 첫 항해를 마치고 이 곳에 도착하였다.
1514년, 도시로 승격되면서 신트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되었다.
1755년 11월 1일,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다. 약 9분동안 지속된 지진은 도시 전체를 파괴했고 여러 차례 쓰나미도 몰려와 쓰나미로만 202명이 사망했다. 수도인 리스본 또한 큰 피해를 입었고 피해 복구를 위한 석조를 이 곳에서 채굴해 보냈다.
1807년 11월 30일, 나폴레옹 전쟁의 일부인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발발하면서 프랑스 제1제국의 앙도슈 쥐노가 이끄는 대육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1870년, 포르투갈 왕국의 왕실이 이 곳에 성을 개조했고 카를루스 1세가 이 곳에 9월 28일에 입성해 집무를 봤다.
1936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이 이 곳에 머물렀다.
1939년부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피난을 와 미국 등지로 망명을 하려는 사람들이 이 곳으로 몰려들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토마스 만, 칼루스트 굴벤키안, 존 메이너드 케인스, 에드워드 머로, 레슬리 하워드, 알렉산더 알레킨 등이 이 곳을 찾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전후에는 왕실과 귀족 가문들이 망명을 하러 많이 찾았다. 이탈리아 왕국의 움베르토 2세, 루마니아 왕국의 카롤 2세, 헝가리 왕국(1920년~1946년)의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오토 폰 합스부르크,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 등이 이 곳에 머물렀다. 또, 도시 계획이 새로 발표되고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에는 홍콩과 마카오의 재벌인 스탠리 호가 적극적으로 투자를 했다.
3. 자매 도시
- 기니비사우 부바크
- 모잠비크 샤이샤이
- 브라질 구아루자
- 브라질 비토리아
- 브라질 사우바도르
- 브라질 캄피나스
- 앙골라 벵구엘라
- 상투메 프린시페 산타나
- 일본 아타미시
- 중국 우시시
- 카보베르데 살
- 팔레스타인 가자
- 프랑스 비아리츠
[1]
2021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