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07:53:59

카를로스 부저

카를로스 부저 관련 틀
{{{#!folding ▼
카를로스 부저의 수상 이력
{{{#!folding ▼
파일:오륜기(여백X).svg
2004 2008

베스트팀
파일:NBA 로고.svg
3rd : 2007-08
파일:NBA 로고.svg
}}} ||
카를로스 부저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등번호 1번
웨슬리 퍼슨
(1997~2002)
카를로스 부저
(2002~2004)
스테판 그라함
(2006)
유타 재즈 등번호 5번
고르단 기리첵
(2004)
카를로스 부저
(2004~2010)
데빈 해리스
(2011~2012)
시카고 불스 등번호 5번
앤서니 로버슨
(2009)
카를로스 부저
(2010~2014)
바비 포르티스
(2015~2019)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번호 5번
스티브 블레이크
(2010~2014)
카를로스 부저
(2014~2015)
호세 칼데론
(2016~2017)
}}} ||
}}} ||
파일:cbooz.jpg
카를로스 오스틴 부저 주니어
Carlos Austin Boozer Jr.
출생 1981년 11월 20일 ([age(1981-11-20)]세)
서독 바이에른주 아샤펜부르크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듀크 대학교
신장 206cm (6' 9")[1]
체중 117kg (258 lbs)
윙스팬 218cm (7' 2")
포지션 파워 포워드 / 센터
드래프트 2002 NBA 드래프트 2라운드 35순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지명
소속 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02~2004)
유타 재즈 (2004~2010)
시카고 불스 (2010~2014)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14~2015)
광둥 서던 타이거즈 (2016~2017)
등번호 1번 - 클리블랜드
5번 - 유타 / 시카고 / 레이커스
가족 아들 카메론 부저, 케이든 부저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커리어3. 플레이 스타일4. 기타

[clearfix]

1. 개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취득한 전직 농구선수였다. 별명은 C-Boo ,부저비터.

2. 커리어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ad860d8f7fb208bed9fa779d48d01a0c.jpg
아버지가 군인으로 종사했던 서독 아샤펜부르크에서 태어난 이후 미국의 앨라스카 주 주노시로 이주했다. 주노 더글라스고등학교 시절 2번의 주 챔피언십을 이끈 뒤 세인트 존스 대학교 UCLA에도 흥미를 보였지만 이를 거절하고 듀크 대학교로 진학해 2001년 NCAA 챔피언쉽 토너먼트 챔피언십 우승의 원동력을 이끌었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1d5f9a1a063e0ce28c426fb4c73803c.jpg
2002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35순위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을 받은 후 루키 시즌 평균당 10.0 득점 7.5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2년 때는 15.5개의 득점과 11.4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2003년에는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받은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중심선수로 활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부저는 인간승리라고 할 법했다. 듀크 시절 그는 스타였지만, 비교적 키가 작고 운동능력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프로에선 통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NBA 드래프트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다.[2] 그런데 거액 장기계약을 노릴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이 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3년째 계약을 유지하거나 해지할 옵션이 있었는데, 만약 유지했다면 준척급 빅맨인 부저를 단돈 69만5천달러에 쓸 수 있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계약을 해지하게 되어, 부저는 제한적 FA로 풀리게 된다.[3] 여기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부저의 주장이 갈리는데,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주장에 따르면 양 측은 이후 6년 3천9백만 달러[4]에 계약하기로 합의하고 해지했다고 한다. 반면 부저는 그런 합의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5] 어쨌건 당시 쭉쭉 성장하고 있던 SF 안드레이 키릴렌코를 뒷받쳐줄 빅맨이 필요하던 유타 재즈가 그에게 6년/7천만달러 계약을 제시하고, 샐러리캡이 모자랐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이를 매치하지 못하고 울며겨자먹기로 그를 놓치게 된다.[6] 이때는 길버트 아레나스 룰이 생기기 이전이기 때문에, 샐러리 캡을 넘은 상태에서 자기팀 소속의 제한적 FA의 타팀 이적을 매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사실 부저를 싸게 쓸 수 있었음에도 RFA로 풀 수 밖에 없었던 건 이게 가장 큰 원인이다. 옵트인하면 다음해 비제한적 FA로 풀려 부저를 아예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1년만 기다려달라는 요청이나 다름없었던 것. 결국 부저 사태로 인해 길버트 아레나스 룰이 만들어지게 된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4349553dfc0c8e6e7f5532ea031fc08.jpg
부저가 유타 재즈에 입단한 2004-05 시즌에는 평균 17점에 9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부상도 많았고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하였다. 2005-06 시즌에는 햄스트링 부상 악화로 인해 못 나오고 있었다가 2월쯤에 복귀하여 20득점과 10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2006-07 시즌에는 이 주의 서부 컨퍼런스에 선출된 것 뿐만 아니라, NBA 올스타에도 선정되었지만 왼발 뼈에 금이 가 올스타 멤버에서 빠지게 되었다.

파일:external/media.nj.com/free-agent-carlos-boozer-file-wire-ddddef2b819fb465_large.jpg
2007년 4월 21일에 열린 휴스턴 로키츠와의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41점을 기록하여 3월 26일에 열린 워싱턴 위저즈 경기 이후 커리어 통산 기록을 올렸다. 그 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준결승전에서는 4승 1패로 결승전에 진출해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맞붙였지만 서부 컨퍼런스 우승에는 실패했다. 부저는 정규리그에서 82경기 가운데 74경기에 출전해 평균당 20.9개의 득점과 11.7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경기당 23.5득점과 12.2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2007-08 시즌에는 부저가 이달의 서부 컨퍼런스 선수에 이름에 올렸고, 12월 중순에는 득점과 리바운드, 야투율도 리그 전체에서 5위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올스타에 발탁되어 19분동안 득점 14개와 리바운드 10개를 기록하였고, 2월 13일에 열린 시애틀 슈퍼소닉스와의 경기에서는 22득점, 11개 리바운드, 1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여 본인의 첫 트리플 더블을 달성하게 되었다.

2008 플레이오프에서는 휴스턴 로키츠와 재경기를 펼쳐 4-2로 압승을 거두어 2라운드에 진출을 하게 되지만, 서부 컨퍼런스 1위인 LA 레이커스에게 패배하게 된다.

2008-09 시즌에는 왼쪽 무릎 관절경 수술로 인하여 44경기를 결장하게 된 부저는, 같은 시즌 평균당 16.2개의 득점, 10.4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2.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2009-10 시즌에는 82경기 가운데 78경기에 출전해 부상을 모면하면서 평균당 득점 19.5개와 리바운드 11.2개를 기록하였고, 필드에서의 슛 확률은 56.2%로 최고 기록을 올렸다.

파일:external/cdn.bleacherreport.net/CarlosBoozer_display_image.jpg
2010-11 오프시즌 때, 시카고 불스와 정식으로 계약을 한 부저는, 입단 기자회견에서 " 마이클 조던이 뛰었던 곳이라서 여기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누구든지 생각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었다. 부저는 평균 17.5개의 득점과 9.6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해 시카고 불스의 센트럴 디비젼 챔피언과 첫 동부 컨퍼런스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다음 해인 2011-12 시즌에서도 득점 15개와 리바운드 8.5개를 기록하였다 (66경기에 출장). 또 2012-13 시즌에는 79경기에 출장해 평균 16.2개의 득점과 9.8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그 후 사면 조항으로 시카고 불스를 떠난 뒤에는 LA 레이커스로 이적하게 된다.

파일:external/i.cdn.turner.com/ts_boozerintro.jpg
자세 좀 잘 맞추고 찍을 것이지, 그러니까 너 때문에 성적 망쳤잖아.

2014-15 시즌에 LA 레이커스에서 뛰게 되었지만, 코비의 부상도 있었고, 성적도 좋지 못한데에 불만을 품고 1년만에 떠나게 되었다.

2015-16 시즌은 팀을 찾지 못하고 잠시 야인으로 지냈지만, 2016년 7월 30일에 CBA의 광동 서던 타이거즈에서 뛰게되었다. 그러나 불과 1년 밖에 뛰지 못하고 방출당한 부저는 2017년 12월 18일에 은퇴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픽앤롤, 픽앤팝 수행능력이 뛰어나 유타 재즈에서 전성기를 보낼 때 포인트 가드 데런 윌리엄스와 호흡이 착착 맞았고, 사이즈는 작은 편이지만 힘과 스킬이 모두 뛰어난데다 독특한 폼의 점퍼도 잘 꽂아넣어 포스트-미드레인지 양면에서 위력적인 득점원으로 활약했다. 미들레인지 점퍼를 42% 이상으로 꽃을 정도로 준수한 슛터치를 갖고 있었다. 다만 시대 특성상 3점 빈도가 높지는 않았다.

박스에선 리바운드 단속 능력이 뛰어났지만 수비[7]는 못하고, 노력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다.

4. 기타

파일:external/27b4939736eca3da87757d4ce2a1716bf7516c8d6643ef1e9ef2fba89d5791b9.gif
  •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부저가 바스켓 카운트에 성공하자 그만 모르고 주먹으로 대니 크로포드 심판의 거길 쳤다. 다만 풀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다행히도 급소를 친 건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급소보다는 허벅지 근처를 친 것 같기도 한데, 급소가 아니라도 저 정도의 덩치가 때리면 아플 수밖에 없으니 저런 반응이 나온 것. 영상의 뒷부분에 나오지만 급소를 맞았으면 직후에 절대로 저렇게 멀쩡하게 걸을 수가 없다. 부저가 치고 나서 깜짝 놀라 안부를 살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고의로 한 것도 아니고 심하게 다치지도 않았던 대니 크로포드 심판은 그냥 웃어넘겼다. 조 크로포드 같은 심판들은 벤치에서 팀 던컨이 자기 보고 웃었다고 테크니컬 파울을 두 개 줘서 퇴장시킨 걸 생각하면 대니 크로포드가 대인배. 원래 심판에 대한 공격은 굉장히 엄격히 처벌받는다. 데니스 로드맨이 심판을 머리로 들이받고 퇴장&6경기 징계&2만 달러 벌금이란 중징계를 받은 에피소드는 유명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이클 조던 역시 92-93 시즌 당시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서 막판에 심판콜에 불만을 갖고 격렬히 항의하다 심판을 머리로 살짝 들이받고 즉시 퇴장과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즉, 여기서 대니 크로포드 심판이 이를 문제 삼았으면 최소한 퇴장시키는 건 기본이었다. 심판은 경기의 일부로 간주되고 없으면 진행이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경기 진행 중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이 때문에 심판들에게 찍힌 라쉬드 월러스가 한 시즌 41개란 경의적인 테크니컬 파울 기록을 세웠던 것. 물론 심판도 인간이기 때문에 어이없는 판정을 내릴 경우도 있는데, 번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8] 대부분의 경우 경기 중 심판의 권위를 인정하며 차후에 오류가 있다면 조치를 취하는 식으로, 위에 언급된 조이 크로포드의 어이없는 판정의 경우 던컨에 대한 테크니컬 파울은 인정하되, 크로포드 본인은 이에 대한 징계를 받았다.
  • 자식으로 쌍둥이 아들인 캐머런 부저와 케이든 부저가 있으며 두명 모두 농구 선수로 활동중이다. 둘다 2024년 U17 미국 대표팀으로 발탁되어 FIBA ​​U17 농구 월드컵 2024 대회에서 미국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 했으며 특히 형인 캐머런 부저는 대회 MVP까지 차지할 정도로 맹활약을 했다. #



[1] 2002년 드래프트 측정 결과 맨발 신장 6' 7.75" = 202.5cm, 착화 신장 6' 9.5" = 207cm 드래프트 익스프레스 홈페이지 [2] 팀들이 2라운드에서 신인들을 뽑을때는 그 선수가 그냥 평범한 롤플레이어감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체격/운동능력은(혹은 둘다) 좋은데 기술이 꽝이고 어려서 로또를 바라고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자의 경우 부저이고, 후자의 경우 맨발 221cm의 거대한 신장만 갖고 있던 하승진의 경우. [3] 비제한적 FA는 맘대로 계약할 수 있지만, 제한적 FA는 다른 팀이 계약을 제시하고 원 소속팀이 동일한 계약을 하겠다고 하면(match) 무조건 원소속팀과 계약을 해야 한다. [4] 당시 시세를 생각하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 다만 부저의 실력, 나이와 기대치를 생각하면 좀 아쉬운 액수. 당시 시세로 부저급의 빅맨은 적정가가 8~9백만 달러 사이일 것이다. 실제로 유타 재즈와의 계약 이후 오버페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후 그가 올스타급으로 성장하면서 이런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5] 사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합의했다는 금액은 당시 부저급의 선수로선 정말 최저치의 금액에 가까웠다. 당시는 슈퍼스타 파워 포워드들이 넘쳐났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전력이 워낙 떨어져서 올스타엔 못 뽑혔지만 15-11급의 빅맨이면 운이 좀 많이 따르면 올스타도 노려볼 만하다. (실제로 2003-04 시즌에 올스타에 선정된 자말 매글로어의 기록이 13.6점 10.3리바운드였다. 물론 매글로어는 당시 스타급이 거의 없던 센터라 쉽게 뽑힌 거지만) 게다가 20대 초반에 이제 막 2년차를 마무리한 선수가 이 정도 기록이라면 더 성장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고, 실제로 더 성장해 훗날 20-10까지 하는 빅맨으로 성장했다. 당연히 이 정도 유망한 젊은 선수라면 연평균 천만급을 지르는 팀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근데 이 정도 금액으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건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바보천치가 아닌 이상) 당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부저의 관계가 굉장히 좋고, 부저에 대한 팀의 평이 굉장히 좋았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거의 금지어 수준이 됐지만. [6] 부저가 뒤통수를 쳤다는 해석이 워낙 지배적이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물증이 없는 정황 증거에 불과하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거지 상식적으로 보면 아무 합의 없이 1년간 헐값에 쓸 수 있는 준척급 선수를 놔주는게 말도 되지 않기 때문에 부저가 합의했다가 뒤통수를 쳤다는게 99.999% 유력한 상황이긴 하다. [7] 어느 정도는 했으나 블락은 엄청 부족했다. [8] 퇴장당하지 말아야 할 선수를 실수로 퇴장시켰거나 하는 등 경기의 기본을 어긴 경우는 번복된다. 07-08 시즌에 5반칙한 샤킬 오닐을 실수로 퇴장시켰다가 재경기를 치른 게 대표적인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