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천영관(千永寬) |
생몰 | 1919년 4월 11일 ~ 1965년 4월 24일 |
출생지 |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면 구성리 (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성동) |
사망지 | 대전광역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천영관은 1919년 4월 11일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면 구성리(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성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중이던 1936년 3월에 동교생 구자훈·김해인(金海仁)·최락권(崔洛權) 등과 함께 항일결사 명랑(明朗)클럽을 조직했다. 그들은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 사용금지, 신사참배 거부, 악질 일본인 교사 배척 등을 전개했으며, 무궁화 식수 장려 및 미신타파 등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졸업 후인 1942년 6월 일제의 패망에 대해 언급한 것이 드러나면서 체포되었고, 이로 인해 명랑클럽의 전모가 드러났다. 이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고 1942년 9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대전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5년 4월 24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천영관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