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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총 天馬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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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2d2f34><colcolor=#fbe673,#f9d537> 추정 피장자 | <colbgcolor=#fff,#1f2023> 소지 마립간 · 지증왕 | |
출토 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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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천마총 금관, 금제 허리띠, 유리잔, 금반지 등
1. 개요
1973년 경주관광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발굴조사한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황금 반지 150여점.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우측 페이지, 맨 아래 28번이 천마총 금반지이다. 함께 나와있는 황금 유물들은 각각 황남대총 남분 금반지, 금관총 금팔찌, 경주 노서동 금팔찌,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경주 계림로 금귀걸이, 경주 황오동 34호분 금귀걸이, 천마총 금귀걸이이다.
천마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반지 150여점으로, 천마총 금관, 천마총 관모, 천마총 금제 허리띠,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천마총 목걸이, 천마총 유리잔, 천마총 환두대도, 천마총 자루솥, 기타 귀걸이 등 다양한 금제 장신구류 및 말갖춤류, 무기류, 토기, 유리배, 각종 구슬, 다리미 등과 함께 1973년 출토되었다.
1973년 당시 천마총에서 발굴된 유물의 총합은 장신구류 8,767개, 무기류 1,234개, 마구류 504개, 용기류 226개, 기타 796개, 총합 11,526개였고, 그 중에서 황금으로 제작된 유물은 785점, 금동제 유물은 227점, 유리제품은 7,735점이었다. 이후 지속적인 유물 연구 결과 약 1,000여점이 순금제 유물인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고 그중 금반지류는 약 150여점으로 확정되었다. 유물들의 제작 연대는 천마총 금관과 동일한 5~6세기(서기 400~500년대)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는 삼국 중 유일하게 반지 문화가 성행하였던 국가로, 고구려의 경우 안학궁지 제2호분에서 청동제 반지가 출토된 적이 있으나 유물이 많지 않고 형태도 조잡하며, 백제 역시 각종 호화스러운 유물이 출토된 무령왕릉에서조차 반지는 전혀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의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반지 두 국가 모두 반지 유물, 특히 금반지가 발견된 경우는 고구려는 총 2점, 백제는 공주읍 우금리 고분에서 단 1점이 나왔을 뿐이다.
반면에 신라는 고분을 하나 조사할 때마다 금반지들이 쏟아지는데, 특히 이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반지들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 지증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사용하던 왕실 위세품으로, 오직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인 동시에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