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5 11:21:05

차이와 반복

<colcolor=#000> 차이와 반복
Différence et Répétition
<nopad>파일:차이와 반복 프랑스어.jpg
한국어판 표지 ▼
파일:차이와 반복 한국어.jpg
<colbgcolor=#f4ce01> 저자 질 들뢰즈
국가 프랑스 파일:프랑스 국기.svg
형식 철학
언어 프랑스어
출판년도 1968년 (프랑스)
2004년 (한국)
쪽 수 412쪽 (원서)
708쪽 (한국어판)

1. 개요2. 구성
2.1. 차이와 반복2.2. 시간의 세 가지 종합
3. 여담

[clearfix]

1. 개요

『차이와 반복』은 , 스피노자, 니체 그리고 프루스트 등 나를 열광적으로 매료시켰던 인물들을 연구한 후, 내가 '철학을 하기' 위해 처음 시도한 저술이었다. 그 이후에 내가 한 일은 가타리와 함께 저술한 것까지 포함하여(물론, 나 자신의 관점에서만 말할 뿐이다) 이 책과 연결되어 있다.
After I had studied Hume, Spinoza, Nietzsche and Proust, all of whom fired me with enthusiasm, Difference and Repetition was the first book in which I tried to 'do philosophy'. All that I have done since is connected to this book, including what I wrote with Guattari (obviously, I speak from my own point of view).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영문판 서문 中
1968년에 출판된 질 들뢰즈의 철학사로 들뢰즈의 국가박사학위 주 논문이다.[1]

들뢰즈는 서양 철학 전통의 표상 중심의 사유 모델을 뒤집고 생성으로서의 차이 개념에 주목한다. <차이와 반복>은 이러한 철학적 기획의 일환이며 차이 자체, 반복에 대한 통념 비판, 니체의 영원회귀, 그리고 시간의 세 가지 종합 등을 통해 독자적인 형이상학의 기반을 구성한다.

2. 구성

  • 머리말
  • 서론 : 반복과 차이
  • I. 차이 그 자체
  • II. 대자적 반복
  • III. 사유의 이미지
  • IV. 차이의 이념적 종합
  • V. 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
  • 결론 : 차이와 반복

2.1. 차이와 반복

들뢰즈가 우선 주목하는 것은 차이이다. 역사적으로 철학자들[2]은 동일성만큼이나 차이에 주목해왔다. 일반적으로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은 항상 어떤 것이 다른 것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즉, 차이는 이미 존재하는 자기동일성을 전제한 후에 덧붙이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종차(diaphora)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종차는 어떠한 종이 다른 종과 다르다는 차이를 가리킨다. 하지만 여기서의 차이는 유개념과 종개념이라는 동일성을 전제로 하는 차이이다.
파일:monet-rouen-cathedral.jpg
클로드 모네 - <루앙 대성당> 연작, 유화, 1892~1894년
들뢰즈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기동일적인 실체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며 달라지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들뢰즈의 차이를 드러내는 사례로 <루앙 대성당> 연작이 꼽힌다. 모네는 2년에 걸쳐 매일 루앙 대성당 앞의 카페에 앉아 반복적으로 성당을 그렸다. 그렇게 그려진 것은 서로 같지 않은 30여점의 대성당 그림들이었다. 들뢰즈는 차이는 기존의 시각처럼 동일성들 사이의 관계로 이해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차이는 모든 개체, 개념, 사물들의 기저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창조적인 과정에 가깝다. 존재는 어떤 동일성 간 차이를 줄여가며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며, 끝없이 스스로를 차이화해가며 발산하는 운동을 만드는 과정이다.

차이가 생성으로서의 과정이라면, 반복은 어떻게 가능할까? 모든 순간은 저마다 독특하고 매 순간과 다르다. 그렇지만 인간의 인식 체계는 그러한 미세한 차이들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인간은 각각의 차이나는 것들을 동일한 것으로 여긴다. 즉, 반복은 끊임없이 생성변화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인위적으로 붙잡는 시도이다. 가령 인간의 경우, 세포가 일정 주기마다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1년이 지나면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는 대부분 새로운 것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동일한 존재로 여기며 살아간다.

들뢰즈에게 반복은 동일한 사물이나 사건을 재현하는 것[3]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무엇인가 '반복'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현재의 맥락에서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하고 재연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를 '재청원'(re-petitioning)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한다. 이에 대비되는 것이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옷입은 반복'으로 끊임없는 차이 자체가 되돌아오는 생성의 과정이다. 들뢰즈에게 전통적인 반복, 즉 헐벗은 반복은 차이가 새로운 것을 생성하는 과정을 멈췄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부차적인 동일성이다.[4]

2.2. 시간의 세 가지 종합

흔히 우리는 시간에 대해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인 구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들뢰즈는 시간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종합하면서도 서로 분리되어 상호 연관되는 공존으로 보았다. 들뢰즈는 이러한 시간 속에서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탐구하는 존재론으로 나아가며, 시간의 세 가지 종합 이론을 제시한다.

비가 내리는 상황을 가정하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면, 각각의 빗방울이 가볍게 표면을 두드리는 소리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립된 소리를 하나하나 듣는 대신, 연속적이고 일정한 패턴으로 엮어 하나의 빗소리로 인식한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작은 순간들을 하나의 끊임없이 흐르는 비라는 연속적인 감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시간의 첫 번째 종합은 독립적인 순간들을 하나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수축시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앞서 언급했듯 들뢰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하나로 연관되는데, 왜냐하면 현재라는 기본적인 경험은 수축을 통해서 방금 지나간 과거를 유지시키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습관이나 기대를 통해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간 현재-지나가는 현재-도래할 현재라는 일의적인 구도로 종합되며 '살아있는 현재'[5] 혹은 '시간의 정초'로 불린다. 살아있는 현재는 고정된 시간 단위가 아니며 지속적으로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내는 수축의 과정이다.

다음으로 시간의 두 번째 종합은 과거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위에서 제시한 비의 예시로 돌아가보자. 비가 그친 직후, 우리는 비가 내렸던 경험을 과거에 있었던 일로 기억하고 그것을 회상할 수 있다. 아마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상상하거나, 연속적인 비의 패턴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좋아하는 음악을 다시 듣는 과정을 예시로 들 수도 있다. 기억에 남는 구간이나 후렴구가 들려올 때, 우리는 과거의 순간을 종합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동시에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음에 나올 부분을 예상하게 된다.

시간의 두 번째 종합은 습관이나 기억을 통해 회상할 수 있는 과거와 이전의 경험에서 종합된 기대를 통해 예상되는 미래 모두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즉, 첫 번째 종합을 통해 즉각적으로 살아있는 현재를 얻는다면, 두 번째 종합은 그 현재의 일부를 과거의 기억이나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투영으로 종합하고 투영하는 것이다.

시간의 세 번째 종합은 항상 다른 두 가지 종합과 공존하며, 어떠한 현재와 구성된 과거/미래도 결코 완전하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장하는 시간의 층위다. 첫 번째 종합의 살아있는 현재, 그로부터 구성되는 두 번째 종합의 과거/미래의 표상들은 결코 완전하게 포착될 수 없는 잠재성 의해 끊임없이 파괴되고 분열되며 재생산된다. 다시 한번 음악에 대한 예시를 들어보자. 좋아하는 음악에 심취해 익숙한 구간이 들려오리라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갑자기 전화가 울리거나 전원이 꺼진다고 상상하자.

들뢰즈는 이를 위해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을 가져온다. 앞서 언급했듯 들뢰즈의 반복은 동일성이 아닌 차이 자체의 반복이며, 영원회귀에 대해서도 차이 자체의 회귀로 해석한다. 살아있는 현재→기억의 회상→미래에 대한 예측이라는 안정적이고 선형적인 구도는 세 번째 종합이 가져오는 예측할 수 없는 변이를 통해 파괴되며, 이는 끝없는 역동성을 지닌 채 차이를 발산한다.

3. 여담

  • 철학자 미셸 푸코는 1970년, 「철학 극장(Theatrum Philosophicum)」이라는 리뷰논문을 통해 이 책과 『의미의 논리』에 대한 서평을 썼다. 여기서 들뢰즈에 대한 찬사로 흔히 인용되는 "아마도 언젠가 이 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알려질 것이라 믿는다" 라는 구절을 남겼다.


[1] 지도교수는 모리스 강디야크Maurice de Gandillac이며, 부 논문은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이다. [2] 대표적으로 파르메니데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3] 들뢰즈는 이를 '헐벗은 반복'이라고 표현한다. [4] 이는 니체의 위버멘시, 끊임없이 자신만의 가치를 탐구하고 창조하는 자라는 개념과도 연결된다. [5] 들뢰즈가 현상학의 거장인 에드문트 후설의 개념으로부터 가져온 개념이다. 후설 역시 시간을 고정적인 점들의 구도가 아니라 거대한 흐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