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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하라이 오카쿄쿠(原井岡旭) |
본관 | 남원 진씨[1] |
출생 | 1927년 12월 15일[2] |
전라북도 남원군 대강면 방동리[3] 948번지[4] | |
사망 | 1966년 12월 25일[5] (향년 39세) |
전라북도 순창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46호 |
상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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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2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27년 12월 15일 전라북도 남원군(現 남원시) 대강면 방동리 948번지에서 아버지 진기열(晋璣烈, 1881. 1. 26 ~ 1952. 7. 4)과 어머니 김녕 김씨(1894. 8. 12 ~ 1962. 9. 7)[6] 사이에서 1남 4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1942년 순창공립농림중학교에 입학했고, 3학년 재학 중이던 1945년 2월 순창공립농림중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비밀결사 화령회(和寧會)에 가입했다. 이후 학우들과 함께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독립에 관한 토론을 했고, 항일운동가와 연계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할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1945년 3월 31일 학우들에게 반일 사상을 전파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곧 학교 당국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광주형무소에 투옥되어 구금되었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았다.
출옥 후 1948년 옥과국민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9년 경제신문사에 기자로 입사했다. 1960년 지방선거에서는 대강면장에 선출되어 민선 대강면장을 역임했고, 1961년에는 대한상이용사회 재산처리위원회 감사를 역임했다.
1966년 12월 25일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별세했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당초 남원시 대강면 사석리 맹골 선산에 안장되었다가 2022년 4월 30일 배우자 평택 임씨 임남이(林南伊, 1927. 8. 8 ~ ?)[7]의 유해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7묘역에 이장되었다.
[1]
학사공파(學士公派) 22세 욱(旭) 항렬.
[2]
남원진씨족보 학사공파편 135쪽에는 6월 22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
[3]
남원 진씨 학사공파(學士公派) 집성촌이다. 진강욱의 13대조 진호로(晋虎老, 1389 ~ ?)가 1420년(
세종 2) 낙향해 이 마을에 처음
정착했다고 한다.
[4]
1915년 지적원도에 따르면, 1915년 당시 이 지번은 진강욱과 21촌 지간의 족숙(族叔) 진기만(晋璣滿, 1841. 1. 5 ~ 1918. 8. 21)의 소유였다. 1949년 1월 20일 진기만의 장증손자 진면하(晋勉夏, 1917. 1. 12 ~ 1993. 12)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1985년 4월 24일에는 진강욱의 족손(族孫) 진병하(1958. 3. 2 ~ )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되어 현재에 이른다.
[5]
남원진씨족보 학사공파편 135쪽에는 1963년 9월 4일 별세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
[6]
김해성(金海成)의 딸이다.
[7]
임학래(林學來)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