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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興
1. 개요
주로 역사상에서 쇠퇴한 세력이 다시 (예전과 같이) 강성해지는 것을 뜻한다.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중흥기를 맞이한 국가는 얼마 안 가 정말 무너지는 경우도 꽤 많다. 이러한 사례가 발생하는 까닭은 최상위 권력층이 국가가 쇠퇴하게 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상부 구조의 일시적인 개혁으로 땜질을 하려다 보니 부작용이 생겨나 쇠퇴를 촉진하였기 때문이다. 보통 중흥기는 능력있는 명군들이 이끄는 경우가 압도적인데 문제는 뒤를 이은 군주가 전 군주 이상인 지도자가 아닌 이상 나라가 혼란에 빠지며 오히려 중흥 전보다 상황이 나빠지기도 한다. 명군의 뒤를 이은 지도자들이 능력이 나쁘지 않았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든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참고로 역사책 등에서 ‘중흥기’, ‘중흥의 군주’란 표현이 많이 쓰이고 소위 중흥기를 이끈 중흥 군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명군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중흥기를 ‘ 최전성기’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데 앞에 언급되었다시피 중흥이란 쇠퇴하던 세력이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경우에 따라 당대에서는 중흥이라고 하지만 후대 사학계에서는 아예 다른 정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는 주로 한 왕조가 멸망한 뒤에 다른 방계 황족이나 계승 서열이 낮은 직계 왕족이 전 왕조의 후계자를 자청하면서 같은 국호를 쓰는 정권을 세웠는데 그 정권의 특징이 전 왕조와 판이하게 다른 경우들이다. 중흥이란 평가 자체가 시대마다 바뀌기도 하는 등 주관성이 있는 항목이긴 하다.
2. 역사상 중흥의 사례
- 한국사
- 단군 조선 : 준왕 재위기
- 고구려 : 평원왕 ~ 영양왕 재위기
- 백제 : 동성왕 ~ 성왕 재위기[1], 무왕 재위기 ~ 의자왕 재위 초중반.[2]
- 신라 : 보통 진흥왕 재위기를 전성기로 보므로 통일을 이룬 문무왕 ~ 경덕왕이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통일신라는 통일 이전의 신라와 비교하면 나라의 성격이 매우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신라의 중흥기가 아니라 통일신라의 전성기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원성왕이나 흥덕왕 재위기 정도?
- 발해 : 선왕[3] ~ 대건황 재위기
- 고려 : 공민왕 재위기 때 원나라의 간섭을 벗어나 중흥의 기회가 있었으나 부인의 죽음으로 말년에 타락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 조선 : 효종 ~ 정조 재위기[4]
3. 관련 문서
[1]
특히
무령왕 시대에 한강을 일시적으로 탈환했다는 설이 있으며 시대상
나제동맹 시기와 겹친다.
[2]
한국사에선 특이하게도 중흥을 두 번 한 케이스이자 망국의 군주가 중흥을 한 케이스.
[3]
정복활동과 영토확장을 기준으로 본다면 문왕보다는 선왕 시기가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4]
손꼽힐 만큼의 명군들이 계속해서 배출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던 시기.
[5]
만력제 재위 초기를
만력중흥이라 부른다.
[6]
평가부터가 도쿠가와 막부 중흥의 선조(徳川幕府中興の祖)이다.
[7]
아치 에너미
베트남에겐 악몽이었다.
[8]
중흥기가 4번이나 있다. 자세한 것은
국가 멸망/사례 문서 참조.
[9]
중고등학교 교과서나 대학교 개론서 등에서 동로마(비잔티움)의 최전성기(or 최대 강역)을 일구어 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로마와 동로마(비잔티움)을 따로 보는 과거의 관점이 전제된 것이고, 그대로 이어졌다고 보는 최근의 관점에서는 중흥으로 본다.
[10]
당시 코임브라와 살라망카까지 내려온 레온세력을 크게 후퇴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