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주영형 朱永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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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 사진 ▼
출생 | 1953년 3월 11일 |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시 | |
사망 | 1983년 7월 9일 (향년 30세)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서울구치소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
체육교육과/학사) 경희대학교 교육 대학원 (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 |
병역 | 육군 중위 (서울대학교 ROTC 14기) |
직업 | 체육 교사 |
가족관계 |
배우자 자녀 2명 |
죄목 |
미성년자 성폭행 납치 살인 |
형량 | 사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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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2. 상세
주영형의 친구가 증언한 바에 의하면, 주영형은 키 178cm, 몸무게 78kg의 체격으로 당대에는 상당히 단정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속 직후 사진을 보면 30살도 안 된 나이에도 탈모 초기가 확인되는 머리와 면도하지 않은 얼굴의 수염 등 지저분한 인상 때문에, 그리 빼어나 보이지 않는다. 1년간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1980년대 특성상, 또한 ‘전두환이 직접 찍은 사건’이라는 더 특수한 환경의 영향으로 인해 직간접적 고문도 많이 당했을 테고, 결국 체포 및 구속과 취조라는 게 사람을 피곤하고 초췌하게 만드는 상황이다.[1] 그런 상태에서 찍힌 사진이니 초췌해졌을 것이다. 즉 면도도 못 한 데다, 상황 상 영상을 촬영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표정이 찌그러지고 안색도 나빠질 일들은 꽤 많이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1980년대에 28세 정도면, 오늘날로 치면 40살 정도로 보이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참고로 키는 21세기 20살(1982년생 이후)로 치면 180cm가 넘는 정도다.주영형은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해서 필기시험과 체력검정, 면접, 신체검사까지 합격했지만 실제 입학은 하지 않았다. 당시 육사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의 학력과 대단한 신체조건이 갖춰진 극소수의 타고난 엘리트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ROTC 4학년 후보생 시절 주영형은, 후배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ROTC는 1963년도 학군 1기 임관 이래 2010년 이전까지 똥군기의 대명사였으며, 1981년에 학사장교가 창설되었을 때 ROTC가 학사장교에게 저지른 구타 등 가혹행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살벌한 ROTC에서조차 공포의 대상이었으면, 이 인간의 성격은 안 봐도 비디오인 셈이다. 이후 제대하고 체육교사로 재직하면서도 그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근무했던 중학교에서 평소 학생들을 엄격하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보면, 본래부터 제 밑의 사람들에게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었다고 봐야 할 듯하다. 관련 기사
3. 범행
자세한 내용은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4. 최후
사형수 교화위원이자 사형집행 참관 종교위원인 문장식 목사의 회고에 의하면, 사형장에 들어오던 순간 주영형은 다소 창백해 보였으나 죽음을 초월한 듯 여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고 한다. 사형수로 보이지 않고, 마지막까지 평안하고 밝은 인상을 안겨준 모범수처럼 보였다고. 유언을 남길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내가
실수로 주사위를 한 번 잘못 던졌을 때, 그때 끝냈어야 할 것을 잘못을 숨기기 위해 계속 던지다 보니 이렇게 큰 죄를 범하게 되었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또한 부모님께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저에게 2명의 자녀가 있는데 끝까지 믿음으로 자라게 길러 주었으면 합니다.
이 장면을 직접 본 문장식 목사는 “그는 철저하게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자세였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어떻게 지식인이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안 잡힐 줄 알았을까? 최후의 순간에도 자기 자식을 걱정할 정도로 자기 자식 귀중한 줄 알면서, 왜 남의 자식이 중한 줄을 몰랐는가. 아!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이 이렇게 인생을 망치는구나 싶었다.”고도 평했다.
주영형이 유언을 남긴 후, 문장식 목사가 종교의식을 집전했다. 먼저 요한복음 14장 1~3절을 읽어주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런 다음 설교에 이어 찬송가 460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를 부르고, 축도를 했다. 주영형은 “여러분, 주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하면서 마지막까지 전도했고, 사형이 집행되었다. 목이 매달리고 떨어지는 순간 주영형이 생전 정말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주여!”였다. (출처: <아! 죽었구나 아! 살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