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酒食是儀. 조선 후기, 1800년대에 연안 이씨가 처음 편찬하여 여러대에 걸쳐 기록되어 온 한글 요리책.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에 위치한 은진 송씨(恩津宋氏) 종택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송영로(宋永老, 1803년 ~ 1881년)의 부인인 연안 이씨(1804년 ~ 1860년)가 처음 기록하기 시작하여 여러 대에 걸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에 남겨진 필체로 보아 최소 세 사람 이상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연안 이씨가 소대헌 종가에 시집와서 시가의 음식을 하나씩 익혀가며 이 책을 기록한 후, 그 뒤로 그녀의 대를 이은 여성들이 손끝으로 전수받은 음식 솜씨를 이 책에 하나둘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주식류, 찬물류, 병과류 및 음청류, 주류 등 음식을 만들고 재료를 다루는 법 96항이 기록되어 있고, 그 중에서 낙지 볶기에는 낙지찜을 하는 법이, 동김치에는 이를 활용한 생치 김치나 냉면을 만드는 법이, 약과 만드는 법에는 만두과와 다식과가, 앵두편에는 복분자편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어 총 100여 가지의 식품을 다루는 법과 음식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음식 조리 방법 외에도 산모에게 필요한 민간요법, 염색법과 탈색법 등 생활사에 관련된 자료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은진 송씨 가문에는 주식시의 외에도 술 만드는 비법을 따로 모아 정리한 술 제조 비법서인 우음제방이 있어 두 책을 함께 번갈아 가며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3. 구성
- 주식류(主食類)
- 부식류(副食類)
- 국/ 전골 : 열구자탕(2), 승기악탕, 완자탕, 전골채소
- 찜 : 떡찜, 숭어찜, 붕어찜, 도라지찜, 묵찜, 송이찜, 갈비찜, 연계찜, 계란쌈, 낙지찜
- 볶음 : 떡볶이, 동아초, 묵초, 낙지볶기
- 전 / 구이 : 제육전, 동아전, 집노리미, 풋고추적, 생선 굽는 법, 고기 굽는 법, 생치 굽는 법
- 숙채(熟菜) : 외상문채, 죽순채, 호박나물
- 회(膾) : 어채, 화채, 위어회
- 숙육(熟肉) : 상한 고기를 삶는 방법, 고기를 삶는 방법, 고기국을 끓이는 방법, 황구·흑구 쓰는 법
- 전약 : 백강(白薑), 계심(桂心), 녹각교(鹿角膠)
- 젓갈 : 장해법, 게젓
- 마른찬 : 소반찬, 약포, 시체약포
- 침채류(沈菜類) : 장김치, 동김치, 생치김치, 석박지, 동아석박지, 동가침채, 용인과지
- 기타 : 도화계란법, 계란 삶는 법
- 병과(餠菓) 및 음청류(飮淸類)
- 떡류 : 약식법, 소합떡법, 두텁떡, 갖은두텁떡, 섭화전, 석이전, 승검초단자, 토란단자, 감저단자, 석탄병, 잡과전, 증편, 요기떡, 율강병법
- 한과류 : 약과 지지는 법[2], 앵두편[3]
- 음청류 : 화면, 식혜, 매화차, 국화차
- 주류(酒類)
- 구기자주, 감향주(2), 별별약주, 두견주, 점감주, 송순주, 화향입주방
- 장류(醬類)
- 기타
- 게 오래두는 법, 세어법(생선을 씻는 방법), 분골니법( 잉어의 뱃속에 후추와 파 등을 넣고 항아리에 넣어 입구를 봉하고 뭉근하게 고아 생선살과 뼈를 분리하는 법), 저장법, 세척법, 양육법, 아기 베고 탈이 있을 때 약 쓰는 법, 산모젖내는 법 등등.
- 조리 도구 : 체(크기별로 체, 깁체, 고운체, 어레미, 얼멍이로 나누었다), 숟가락, 주걱, 홍두깨, 양푼, 열박(바가지), 옹배기, 찬합, 보시기, 탕기, 그릇
- 계량 : 길이단위로 치(寸)와 푼(分), 무게 단위로 푼(分)과 냥(兩), 기타 단, 방울, 줌, 보, 쪽
4. 특징
현재 전해지고 있는 고조리서들은 주로 경상북도 안동시, 영양군, 상주시 일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16세기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수운잡방, 여성( 장계향)이 쓴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 사대부가의 높은 가양주 제조 기술을 볼 수 있는 온주법, 19세기 말 한식 상차림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 상세히 설명하는 시의전서 등의 한국의 대표 고조리서들이 모두 저 지역 출신이다. 그러나 주식시의와 우음제방은 대전(大田)을 기반으로 한 은진 송씨 가문의 책으로 이례적으로 충청도 지역의 음식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간 영남 지방에 집중되었던 조선 시대 식생활 자료가 충청 지역으로 연구의 폭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또한 주식시의는 왕비를 배출한 사대부가와 궁중 음식과의 교류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왕비들이 대부분 그의 외손이라 할 정도로 왕실과 관련이 깊은데, 숙종의 비(妃)인 인현왕후가 동춘당의 외손녀이고,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와 순종의 첫 번째 비인 순명효황후도 이 집안 후손이다. 또한 동춘당의 증손녀가 장원급제한 김제겸(金濟謙, 1680년 ~ 1722년)에게 시집갔는데, 그의 후손 가운데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 헌종의 비인 효현왕후, 철종의 비인 철인왕후가 나왔다. 그러므로 송준길 가와 조선 궁중은 지속적인 교류가 있었으며, 궁중음식 가운데 몇 가지가 종가 음식으로 계속 전수되고 있었다. 1800년대 궁중의 의궤에 기록된 음식과 비교해볼 때 열구자탕, 완자탕, 금중탕, 숭어찜, 붕어찜, 연계찜, 어채 등과 약식, 두텁떡, 승검초단자, 약과 등의 조리 방법이 궁중 음식과 완전히 똑같은 것으로 추정 중이다.
마지막으로 주식시의에 기록된 음식 중 전골 채소, 도라지찜, 낙지 볶기, 외상문채 등은 다른 조선 시대 조리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조리법으로 대전 지방 특유의 음식 문화를 연구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