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뉴 카르발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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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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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주니뉴 카르발류 Juninho Carvalho |
본명 |
Carlos Alberto Carvalho dos Anjos Junior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카르발류 두스안주스 주니오르 |
출생 |
1977년
9월 15일 ([age(1977-09-15)]세) 브라질 바이아주 사우바도르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4cm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소속팀 |
EC 바이아 (1996~1998) 빌라 노바 FC (1999) 우니앙 상조앙 EC (2000) SE 파우메이라스 (2000~2002)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3~2011) 가시마 앤틀러스 (2012~2013) SD 주아제이렌세 (2015~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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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로, 일명 주니뉴(Juninho)라고 한다. 과거 일본 J리그의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스피드와 슈팅에서 강점을 보이며, 뛰어난 득점력을 겸비했다.원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나, J리그 이적 이후에는 스트라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2. 선수 경력
1996년 브라질 리그의 코리치바 FC에서 데뷔했으며, 이후 발라 노바 FC와 우니앙 상 조앙 EC를 거쳐 2000년 SE 파우메이라스로 이적했다. 2002년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후 부진의 늪에 빠지며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는 것을 막지 못해 흐지부지되었다.그 뒤 2003년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해 일본 무대를 밟았으며, 당초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포지션을 스트라이커로 변경했다.[1] 입단 첫 시즌부터 가공할 만한 득점력을 보여주었으며, 두 시즌만에 39경기 37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하며 당시 2부 리그였던 팀을 1부 리그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활약상으로 인해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레알 베티스로부터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팀에 충성심을 보이며 잔류를 선택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기록을 세웠으며, 2007년에는 31경기에서 22골을 넣어 1부 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은 2006년과 2008년, 2009년에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2007년과 2009년에는 J리그컵에서 준우승에 올랐다.
엄청난 활약으로 한 때 J리그 최고 몸값 선수에 등극하기도 했지만, 비록 이후 사과하긴 했지만 2011년 9월 24일 자신의 J 리그 200번째 출전 경기인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되자 감독의 악수를 거부하고 경기가 끝난 뒤 무단으로 귀가해 물의를 빚었다. 여기에 2011년 32경기에서 9골을 넣으며 이전에 비해 다소 저조한 활약을 보였으며, 결국 2012년 계약 기간이 만료되자 가시마 앤틀러스로 이적하였다.
1996년 브라질 청소년 대표로 4경기에 출전한 바 있다.
2008년 일본 축협의 제안으로 시민권을 따 귀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2]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결국 귀화 신청이 무산되었다(...).[3]
정대세가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독일 무대로 이적하기 전까지 함께 투 톱을 맞추던 상대였으며,[4] 이 투 톱은 2007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전남 드래곤즈를 탈탈 털어버렸기 때문에 한국 축빠들 사이에서도 제법 유명하다(...).[5]
이후 2009년 한일 올스타전 대회인 '조모컵' 당시 J리그 대표로 참가했으며, 1골을 넣어 팀의 4:1 승리에 일조해 한국 축빠들에게 여러모로 인상을 남겼다(...).
[1]
당초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주니뉴 대신 CR 플라멩구의
산드루 히로시를 영입할 계획이었지만, SE 파우메이라스와의 연습 경기에서 주니뉴의 기량을 확인하고 영입 대상을 주니뉴로 바꾸었다고 한다.
[2]
물론 주니뉴 본인도 귀화를 원했으며, 여기에는 비단 일본 국가 대표팀에 선발되는 것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지낼 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 또한 작용했다.
[3]
일본어를 듣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말하는 것이 능숙하지 못했다고 한다.
[4]
2009년에는 서로 득점왕 경쟁을 벌이다보니
페널티 킥 상황에서 서로 자기가 차겠다고 설전을 벌인 바 있는데, 결국 감독이 나서 주니뉴를 페널티 킥 키커로 결정했다.
[5]
당시 전남과 가와사키는 3차전과 4차전에서 만났는데, 3차전에서는 주니뉴가 2골을 넣었으며, 4차전에서는 주니뉴가 1골을 넣고 정대세가 2골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