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9:45:41

조판선



본 사업 계획은 취소 또는 무산되었습니다.

본 문서에서 다루는 사업 계획은 본래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유로 인하여 취소되었습니다.

1. 개요2. 추진 경과
2.1. 1935년, 일제강점기 시절2.2. 1966~67년, 박정희 정부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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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치원역 장항선 판교역을 잇는 철도 노선 구상. 1935년부터 이어진 유구한 떡밥으로 현재 보령선으로 계획이 이어지고 있다.

2. 추진 경과

2.1. 1935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강점기이던 1935년 일찍이 충북선과 연계해 충청남도 지역에도 횡단선을 만들어달라는 구상으로 등장하였다.

지역 사회에서는 '중부조선횡관철도기성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철도 노선 유치를 추진했다. 당시 공업도시로 발전하고 있던 군산 지역의 유지까지 규합해 추진에 나섰다. 영월 지역의 제련소에서 생산한 광물 및 가공제품을 금강에 철도를 부설해 군산까지 실어나르자는 구상이었다. # 기성회는 발대식을 열고 당시 내각총리대신에게 전문(電文)을 보냈다. 이를 두고 '조판선 운동'이라 칭하기도. #

2.2. 1966~67년, 박정희 정부 시기

약 30년이 지난 뒤, 지역 사회는 다시금 조판선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1961년, 107km 연장의 본 노선을 충남대전 지역에서 재추진하기 시작했다. #

1966년 당시 공주시를 찾은 박정희에게 공주군수가 앙고라 사육 지원과 조판선 예산 지원을 요구했다가 일축을 당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66년 12월, 새해(1967년) 예산으로 5천만 원의 기공비가 반영되었다. 제6대 국회 국회의원들이 지역 사업 챙기기 일환으로 유행처럼 철도예산을 편성했다면서 공주군을 지역구로 둔 박찬의 쪽지 예산 편성을 비판하는 기사가 게제되었다.

또한 유림들이 반발하여 노선이 무산되었다는 취지의 2015년 기사도 있다. 이유태 선생의 묘역으로 철도 노선이 결정되자 지역 유림들이 이후락과의 면담에서 반발해서 무산시켰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