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가톨릭에서 널리 보편화되어 있던 전통 제대 형태. 중세나 바로크 시대에는 제대 뒷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한 배경(reredos)을 둬 시각적으로 모든 회중이 자연스럽게 제대를 향해 집중하게 했다.
또한 제대 위에 십자고상과 감실을 같이 두었다.
참고로 사진 속의 제대는 트리엔트 미사의 제대가 아니라 일반 미사의 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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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제대. 뒷쪽으로 지성소의 앞면이 보인다. |
"제대는 우리를 로고스(말씀)의 희생과 함께하며 참여하도록 돕는 한편 함께 모인 공동체 안으로 천국을 끌어들인다. … 하늘을 연 제대는 교회의 공간을 닫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전례로 열어준다."
- 교황 베네딕토 16세
- 교황 베네딕토 16세
祭臺 / Altar
1. 개요
천주교, 정교회, 성공회 등에서 미사, 성찬예배, 감사성찬례를 봉헌할 때 제단으로 사용하는 탁자이다. 성당의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제대 위를 덮는 하얀 천은 제대포라고 하며, 제대포 위에는 십자고상, 촛대 등을 놓는다. 미사, 성찬예배를 봉헌할 때는 성찬용 빵과 제구[1] 그리고 미사 경본, 성찬예배서 등의 전례서도 함께 놓는다. 성당 규모가 아주 작다면 별도의 마이크를 설치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서 사제의 목소리가 회중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면 제대 위에 구즈넥 마이크를 놓기도 한다. 평소에는 이런 것들을 다른 곳에 치우고 천을 덮어놓지만 미사 시작이 임박하면 덮어놓았던 천을 걷어내고 위에 나열한 것들을 제대포 위에 올려놓는다.다만 1년에 딱 하루 제대 위에 어떤 것도 놓여있지 않는 때가 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이후 성체를 성체 보관 장소(수난 감실)로 옮겨놓은 후다. 그때는 제대포마저도 모두 치우고 빈 제대만 놔두게 된다. 제대가 아무런 장식없이 주님 수난 성금요일 하루 내내 꼬박 외롭게 비어있는 모습은 최후의 만찬 다음날 헐벗은 채로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제대포는 다음날인 주님 수난 성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중 영성체 예식 때가 돼서야 다시 깔린다.
신자들은 제대 앞에 나아갈 때와 제대 앞을 지나쳐서 성전을 가로질러 갈 때 제대가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흠숭의 표시로 제대에 머리나 허리를 숙여 절하거나 오른쪽 무릎을 꿇어 절한다. 이를 전례적 명칭으로 궤배라고 한다. 제대의 형태나 자료에는 별로 규정이 없으나 건물 전체와의 관계, 미적 고려, 관습을 참작하되 그 문화권에서는 품위 있고 귀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너무 거추장스럽게 커서는 안 된다. 제대는 고정 또는 이동용일 수 있다. 주교 예식서의 규정대로 축성하는 것이 상례이나 이동 제대라면 축복만 해도 된다. 그리고 제대를 너무 편의 위주로 사용함은 바람직하지 않고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교회 초기 300여 년 동안은 주택 교회에서 고유한 식탁이 제대로 사용되었다. 사도 바오로가 언급한 것처럼 "주님의 식탁"(Mensa Domini)이라 불렸는데, 아마도 귀족 집안의 가구로 흔하게 쓰인 삼발이 식탁이었을 것이다. 부제들이 적절한 순간에 그 식탁을 지정된 장소에 배치하여 그 위에 빵과 포도주를 올려놓으면, 주례자는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였다. 그 시절에는 따로 축성하는 의식이 없고 그 위에서 성찬례를 거행하면 저절로 탁자가 축성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박해가 끝난 후에는 나무 제대는 사라지고 돌로 고정한 제대로 바뀌었다. 그리스도교가 종교의 자유를 얻음으로써 박해의 위험이 사라지자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바실리카(Basilica) 건물도 처음부터 교회의 전례 집회를 위한 건물로 건축했으므로, 회중의 중앙에 준비했던 나무 제대 대신에 바실리카의 토대를 쌓을 때부터 돌로 제대를 만들 것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건물 전체의 중심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라 여겼기에, 제대는 그리스도의 영적 건물을 상징하는 돌로 쌓아올린 건축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때부터 주교가 제대에 성유를 부으며 축성하는 관습, 그리고 안에 성인의 유해를 봉안하는 관습이 새로 생겼다. 제대가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여겼기에, 교회의 뛰어난 지체인 성인의 유해를 봉안함으로써 총체적인 '교회'를 표현하길 원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대의 한 부분을 파고 그 안에 성인의 유해를 직접 모시거나, 제대 안에 순서대로 모셔 놓은 값비싼 상자 안에 성인의 유해를 안치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러한 제대에는 십자가를 각 모서리와 정중앙까지 총 다섯 군데에 새겼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십자가 수난으로 받은 다섯 상처(오상)를 의미하였다.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로 금속이나 합성 재질로 만든 최신식 제대가 만들어졌으나 전통을 고수한다는 이유 아래 돌로 만든 제대를 여전히 이용하는 성당도 있다. 주로 시골이나 소도시에 위치한 작은 성당들이 포함된다.
전쟁터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는 평평한 면이 있으면 그곳이 곧 제대가 되는데. 사진과 같이 지프 보닛을 제대로 쓰고 제대포를 대체하는 담요를 덮어서 미사를 집전하는 사례가 있다.[2]
2. 개신교의 경우
개신교에는 성공회나 루터교회 빼고는 제대가 없다. 그대신 성찬상(Communion Table)[3]이라는 게 있긴 하지만, 제대와 비교해봤을 때 형태나 배치 방법 등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강대상'이라 불리는 설교대 앞쪽이나 옆쪽에 놓으며 보통 그 위에는 성경책, 헌금접시(혹은 바구니), 성찬용 도구들을 올려놓는다.( 예시) 영어권에서는 간혹 희생제사가 아닌 단순한 기념임을 강조하기 위해 (THIS DO) IN REMEMBRANCE ME라고 적어넣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필요할 때에만 내놓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과 유럽 교회들은 이걸 항상 두는 경우가 많다. [4]또 일부 한국기독교장로회나 감리교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놓고 초를 켜는 교회도 꽤 있다.루터교회에서도 '제대'라고 부르는 곳도 있긴 하지만 교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가톨릭처럼 전통 제대 스타일인 경우도 있는가 하면 'Kanzelaltar'라고 해서 설교대와 합쳐진 제대도 있다. # 가톨릭과 루터교 제대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제대를 배치하는 형태와 빵을 넣어두는 감실의 유무. 대체로 루터교는 여타 개신교처럼 설교 공간을 가운데에 두고 제대를 밑에 둘 수 있지만[5] 성찬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가톨릭과 다르기 때문에 감실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성공회에서도 보통 제대라 부른다. 고교회파 성공회 성당 중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가톨릭처럼 전통 스타일의 제대를 꾸린 경우도 있고, 저교회파 교회를 중심으로 십자고상[6]과 촛불 정도만 간단하게 놓는 스타일의 제대를 꾸린 경우도 있다. 이 역시 고교회파는 감실이 있고, 저교회파는 없다.
[1]
성작에 담을 포도주는 별도로 준비한다.
[2]
사진에 있는 사제는 미 육군 군종장교이자 명예훈장 수훈자인
에밀 카폰이다.
[3]
교회에 따라 성찬제대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4]
서울 저동에 위치한 예장통합 소속 영락교회 예배당의 성만찬 제대에는 "나를 기념하라"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5]
성공회도 저교회파에 소속되었거나, 옥스포드 운동 이전에 건축된 성당에서 볼 수 있다. 반면 가톨릭은 아직도 설교대를 가운데에 두는 것이 불가능하다. 성체성사(성찬례)를 거행하는 장소인 제대가 성당 전체의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6]
드물게 십자가 틀만 쓰는 경우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