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웅 Jung Cha Wo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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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24e4d><colcolor=#ffffff> 출생 | 1997년 12월 6일 |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 |
사망 | 2014년 4월 16일 (향년 16세) |
전라남도 목포시 상동 목포한국병원 | |
가족 | 부모, 형 |
학력 |
관산중학교 (졸업) 단원고등학교 (명예졸업)[1] |
취미 | 검도, 체육 |
별명 | 웅이, 세월호의 작은 영웅 |
추서 | 2016년 10월 29일 의사자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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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단원고등학교의 학생이자 검도 3단 유단자, 그리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의사자. 단원고 재학 중 체육교사를 꿈꾸며 체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러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사망하였다. 참사 2년 뒤인 2016년 10월 29일, 보건복지부는 그를 의사자로 추서하였다.선장을 비롯한 상당수의 승무원들이 구조 의무를 소홀히하고 선박을 일찍 탈출하는 바람에 구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친구들을 구조하는데 힘을 보탠 사실 때문에 세월호의 작은 영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2. 생애
4.16 기억저장소-희생자를 기억하며1997년 12월 6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출생하여,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부모님 속 한번 썩인적 없는 엄청 모범생이였으며 집안일 부모님 안마를 하는등 그야말로 효자였다. 아버지와 장난치는 것도 좋아했고 어머니의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도 하고, 애니메이션[2]도 상당히 좋아하는 순수한 학생이였으며 학생들이 즐겨입는 브랜드 옷을 부모님이 사주려고 하자 본인은 그런것 필요없다면서 쿨한 아이였다고 한다. 특히 검도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검단을 시작, 고등학교 때까지 총 3단을 땄다.[3] 그를 가르쳤던 검도 사범의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이 가르치던 체육관 안에서도 독보적으로 검도를 잘했으며 나중에 검도사범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단원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체육교사를 꿈꾸며 체육대학교 진학을 준비했을 정도로 운동에 소질이 있었고 진로도 밝았다.
단원고 2학년 새학기가 시작되고 1달 뒤, 그는 제주도로 떠나는 수학여행에 참여하게 된다. 2014년 4월 15일, 세월호가 출항하기 직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인천항에 도착했다며 신나는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 유언이 될 것이라고 가족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그는 탈출 후 같은 학생들의 구조를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부모에게 연락을 남기지 못했다.
2.1. 안타까운 요절
2014년 4월 16일 오전, 세월호는 맹골수도를 지나던 중 갑작스럽게 침몰하게 된다. 사실 그는 생존할 수 있었다. 침몰 당시 선실에 머물고 있어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듣고 탈출이 지연되어 대다수의 학생들의 희생된 것과 달리, 그는 선실 밖에 나와있어 탈출이 다소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며 탈출을 도왔고, 근처 학생들이 물에 빠지자 구명조끼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어 학생들을 구출했다. 그의 이런 도움 덕분에, 물에 빠진 학생은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다.그러나 맹골수도의 엄청난 유속과 낮은 온도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버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물 위에서 의식을 잃고 말았고, 10시 25분 쯤 구조작업을 위해 침몰 해역에 도착한 어업유조선에 의해 발견되어 해경 보트로 옮겨졌다. 해경 요원들은 그에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했지만, 골든 타임을 놓쳐 결국 생존하지 못하고 12시 20분 목포한국병원에서 사망했다. 검도 사범과 체육선생을 꿈꾸던 고등학생 소년은 너무 의롭게, 그러나 너무 아쉽게 죽음을 맞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 뉴스보도 당시, 승무원 박지영과 함께 처음으로 사망이 보도된 희생자였다. 그의 부모는 진도로 오고 있을 때 버스 안에서 사망소식을 들었다. 버스 안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전원 구조된 것이라고 믿고 아이들을 곧 만날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부모를 보고 더욱 비통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도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대다수의 학생들은 실종 상태였다.
2.2. 그 후
그의 시신은 고향인 안산으로 옮겨져,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정부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국고로 모두 지원해줬는데, 그의 아버지는 "국민 세금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헛되게 쓸 수 없다"며, 아들의 장례용품을 최저가의 물건으로만 골랐다. 이러한 비화가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발인식 날, 그의 시신은 단원고등학교 교정을 둘러본 뒤 수원 연화장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20분 간격으로 화장로에 입장해 화장됐다.[4] 유골은 안산하늘공원에 안치되었다.2016년 10월 29일, 보건복지부에서는 그를 '초인종 의인' 안치범과 함께 의사자로 추서하였다. 서울특별시청에 있는 시민청으로 가는 지하 연결통로에 그의 사진과 사연이 적혀있다.
3. 여담
-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만든 영화 생일의 주인공 '수호' 는 그의 실제 스토리에서 일부 따왔다. 수호 역시 세월호에서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5]
- 생전 그를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사후 여학생이 쓴 이별편지가 노래로 나오기도 했다. 그 노래가 바로 # 뮤지션 '플레이트' 가 부른 <말야> 다.
- 생전에 같은 반 친구였던 슬라바와 상당히 친한 친구였고, 매일 붙어다녔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슬라바 역시 세월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 검도 사범 또한 인터뷰에서 슬픔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1]
2014년 2학년 재학 중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사망.
[2]
특히 도라에몽, 짱구, 스폰지밥
[3]
그의 친구 최덕하와 함께 검도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최덕하는 검도 2단이였다고 한다. 최덕하는 세월호 사건을 최초로 신고하였으나 정작 자신은 구조되지 못했다.
[4]
단원고에서 열린 노제에서 그의 어머니는 끝내 실신해서, 화장의식을 보지 못하고 납골당 안치 과정에서 다시 합류했다.
[5]
다만 수호의 캐릭터와 배경은 정차웅뿐만 아니라 다른 세월호 희생자 학생들의 사연에서도 모티브를 얻었다. 록 음악과
국카스텐을 좋아하는 수호의 모습은 생전 록 음악을 좋아했던 박수현(실제 국카스텐이 조문도 했다)에게서 모티브를 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