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룡 丁鎭龍 혹 정진영 (丁鎭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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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에 실린 정진룡 사건 기사. | |
출생 | 1915년 8월 2일[1][2] |
출생지 미상 | |
사망 | 1947년 4월 20일 (향년 31세) |
미군정 조선 서울 중구 | |
직업 | 조직폭력배, 정치깡패, 공산주의 운동가 |
정당 | 조선공산당 |
배우자 |
전처 (?~?) 김해숙 (?~1947년) |
자녀 | 1남 1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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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의 깡패 및 정치깡패. 정확한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광복 이후에 김두한과 수차례 대립하였으며 정진룡 사건 기사에 따르면 1947년 김두한 일당에 잡혀 대한민청 본부로 끌려가 맞아죽었다고 전해진다.2. 생애
그의 생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김두한 및 여러 사람들의 회고를 중심으로 서술한다.일반적으로 알려진 그의 생애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정진룡은 어린 시절부터 청계천 아래에서 모친과 함께 거지로 살았다. 또한 어렸을 적의 김두한과 같이 수표교에서 거지 생활을 하면서 친구처럼 지냈다. 성장 후 김두한 밑으로 들어가 건달이 되었다. 김두한은 정진룡의 쇠락한 집안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었으며 정진룡의 결혼도 김두한이 직접 도와주었다고 한다. 노변야화 24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유약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신영균의 증언에 의하면 아마추어 복싱 선수로도 활동할 정도로 힘이 셌다고 한다. 당시 김두한의 지시에 따라 부산을 제패한 뒤 다시 돌아와 야쿠자들이 점령하고 있던 명동을 수차례 공격했다.[3]
해방 이후에 정진룡은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노선을 걸었고, 김두한은 정진룡과 함께 조선공산당 박헌영 계파 산하의 조선민주청년총연맹(약칭 조선민청)에 가입하면서 김두한이 대장, 정진룡은 부대장을 맡았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죽음을 알게 되자, 조선민청을 탈퇴 및 해산하였고 우익으로 돌아선 이후 서로간에 극심히 대립하게 된다.
1947년 4월 20일, 정진룡은 조선공산당의 지시로 극장에서 '청춘의 봄'이라는 연극을 경호하고 있었다. 이것을 몰래 주시하고 있던 김두한의 대한 민청 대원들이 수류탄과 총을 가지고 극장을 습격했다. 정진룡은 부관인 김천호와 함께 도주를 했지만 김두한의 간부들과 부하들은 예상되는 도주로를 차단했고, 결국은 정진룡과 간부들, 대원들은 포위당해 생포되어 대한민청 본부로 끌려갔다.
지독한 고문이 계속되었고 전향을 권유받았지만 정진룡은 끝까지 거부하였고, 결국 피살당하여 시체는 암매장되었다. 김두한은 정진룡이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기를 희망하면서 그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폭행은 길고 단단한 일본 단풍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행해졌다. 정진룡은 박헌영 부재 시 남로당의 대표였던 허헌에게서 명령을 받았다고 했고 그는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모든 명령에 복종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이승만을 역적이라고 말했다. 이 순간에 김두한이 이성을 잃고 정진룡의 가슴을 찼다. 그는 정진룡에게 철회를 요구했지만 정진룡은 거절했다. 김두한은 또 한 방을 더 때렸고 그것으로 인해 정진룡은 체내 출혈이 시작되었고 곧바로 죽었다.
이 사건으로 김두한은 미군정에 구속되었고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당시 김구, 지청천, 이범석 등 우익 인사들의 구명 운동으로 집행이 무기한 연기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제1공화국 출범으로 인해 사건이 대한민국 검찰로 이관되면서 동년 9월에 석방되었다.
당시 정진룡은 같은 공산주의자였던 후처 김해숙과 전처와의 사이에서 둔 두 아이[4]가 있었다고 전해지나, 김해숙은 정진룡이 피살되기 전 모종의 사유로 피살되었다고도 하고, 혹은 자살했다고도 한다. 정진룡 사후 자녀들의 행방은 전혀 알 수 없다.
3. 기타
- 김두한의 회고록에서는 '정진영(英)'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구마적의 본명인 '고시형'이 '고희경'으로 잘못 알려진 것처럼 김두한의 부정확한 발음을 그대로 받아적어서 오기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 그를 실제로 본 사람은 외모로는 키가 크고 잘 생겼다고 증언했다. 출처 키 180cm, 몸무게 90kg의 거구였다.
- 대중매체에서는 공산당에 입단했다고 하는 것 밖에는 왜소하고 유약한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권투 실력을 자랑하던 강자였다.
4. 대중매체에서
4.1. 영화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 1부 정진영과 비슷하게 나온다. 김두한과는 거지촌 친구인데 공부를 좀 한 편이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인물. 김두한이 우미관패가 된 이후에 빵집에서 빵을 사 주고 용돈을 집어주거나 방 얻어 나가라고 몇십원씩 챙겨주거나 할 때 등장하고 그 이후 마루오까와 싸울 때 통역을 해 주기도 했다.4.2. 드라마 동양극장
여기서도 김두한이 생전 주장한 대로, 그리고 후에 나온 드라마 야인시대의 전개대로 김두한의 절친한 친구이자 함께 항일활동을 했지만 이념으로 인해 갈라섰고 김두한의 손에 죽는 것까지 동일하다. 하지만 야인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죽는 순간 김두한이 옳고 공산당이 김좌진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꼭 복수에 성공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한다.4.3. 드라마 야인시대
자세한 내용은 정진영(야인시대)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기사에서는 정진룡으로 되어 있고 나이는 32세라고 되어 있다.
[2]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의 생일이 8월 2일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외에도 출신지가 은평구 갈현동이라는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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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시 명동이 그 일대에서 먹을 것이 가장 많았다는게 그 이유라고 한다.
[4]
1남 1녀라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