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준백(俊伯) |
본관 | 광주 정씨[2] |
출생 | 1886년[3] 4월 23일 |
경기도
광주부
오포면 자작리 (現 경기도 광주시 추자동 자작이마을[4] 496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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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8년 5월 31일[5] (향년 42세) |
묘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 상마산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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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886년 4월 23일 경기도 광주부 오포면 자작리(現 광주시 추자동 자작이마을 496번지)에서 아버지 정동현(鄭東鉉, 1841. 11. 12 ~ 1907. 1. 10)과 어머니 원주 원씨(1848. 4. 7 ~ 1896. 1. 28)[6] 사이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19년 3월 27일 새벽 1시경 광주군 오포면 고산리(現 광주시 고산동) 주민 40여명과 함께 횃불을 들고 인근 야산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어 오전 11시경 오포면에 집결한 시위 군중들과 합류하여 시위대는 1,000여명에 달했으며, 이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오포면사무소와 광주군청까지 시위행진을 하던 중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의 무력 탄압에 제지되어 곧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일제에 격렬히 항거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강압적 핍박과 박해가 지속되자 결국 1928년 5월 31일 자결, 순국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