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전용규(田鎔圭) |
이명 | 전용규(田容圭, 田瑢圭, 田鎔珪) |
생몰 | 1872년 9월 1일 ~ 1918년 |
출생지 | 충청남도 홍성군 |
사망지 | 충청남도 홍성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전용규는 1872년 9월 1일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2년 9월 매일신문 기사 내용을 통해 일본 내에서 민권당의 약진으로 정부와의 알력이 일어나고 일본정부 역시 재정적 곤란으로 행정적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사실을 알고 국내에서 세력을 결집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려 계획하였다. 그는 수시로 동지들과 회합하고 지방 유세를 통해 세력을 확대했다.그러던 1912년, 임병찬이 고종의 밀칙을 받고 비밀리에 동지를 규합해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를 조직하였다. 임병찬은 호남지방의 의병과 유생을 규합하고자 아들 임응철(林應喆)을 서울에 보내 전용규, 곽한일,이인순(李寅淳) 등과 의논하게 하였고, 곧 조직을 전국 규모로 확대하였다. 그 결과 안병찬은 전라남북도 순무총장 겸 사령장관에 임명되었고, 전용규는 곽한일과 더불어 대한독립의군부의 총대표로 선임되었다.
대한독립의군부의 활동 목표는 일본 내각 총리대신과 조선총독 등에게 국권반환요구서(國權返還要求書)를 보내 한국 강점의 부당성을 깨우치고, 대규모 의병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1913년 5월 국권반환요구서를 대한독립의군부 조직을 통해 발송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5월 23일 동지 김창식(金昌植)이 체포되어 조직이 발각되었다.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전용규를 비롯한 임병찬 등 대한독립의군부 조직원 다수가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1917년 의병을 다시 일으키려 했으나 발각되어 거주 제한을 당했으며, 1918년경에 사망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전용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