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한호(張漢鎬) |
본관 | 인동 장씨 |
생몰 | 1906년 12월 15일 ~ 1972년 4월 16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제주목 구우면 한림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1] |
사망지 | 제주도 제주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공산주의자. 한국의 항일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한호는 1906년 12월 15일 전라남도 제주목 구우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서 장운교(張雲橋)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3년 3월 한림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이듬해 한수풀소년단에 가입했으며 1925년 한림청년회에 회원이 되었다. 한림청년회는 이후 제주청년동맹 한림지부로 개편되었으며, 장한호는 동맹 간부이자 공산주의자 이익우(李益雨)의 지도를 받아 김경봉· 양병시 등 여러 동지들과 함께 공산주의 지도 기관을 조직하고, 방법으로서 각자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여 동지들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결의했다.그해 6월에는 한림리에서 운동자연구회(運動者硏究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전책임자(全責任者)인 김경봉을 위시하여 사회주의 사상의 함양에 힘썼으며, 그해 10월에는 제주도 농민조합 조직을 위해 활동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일로 법원에 회부된 그는 1937년 4월 1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제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2년 4월 16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