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924년[1] 9월 5일 |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신천동 (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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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8년 9월 29일 |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 보훈병원 | |
묘소 | 국립신암선열공원 제1묘역-7호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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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장언조는 1924년 9월 5일 경상북도 달성군 수성면 신천동(현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서 태어났다. 대구 보광학원(普光學院)[2]를 다니다가 4학년 때 민족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1943년 10월 일본 제국 육군에 강제 징집되어 1944년 중국 후난성 헝산(衡山) 일대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뒤 난징지구 주둔 부대에 배속되었다. 그러던 중 일본군 병사로부터 중국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이 있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그는 광복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하였는데, 같은 해 4월 충칭 주둔 국민혁명군 공략을 목표로 한 즈장(芷江) 전투에 참전하기 위해 창사 샹탄(湘潭)지구에 배속되어 있던 중 목숨을 걸고 일본군 진영을 탈영하여 곧 중화민국 국민혁명군 유격대에 가담했다.
1945년 2월 광복군에 합류한 그는 4월 충칭에 도착하여 토교대(土橋隊)에 입대하고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光復軍總司令部 警衛隊)에 배속되어 정훈요원으로서 특수임무를 맡아 수행하다가 그 해 8월 15일 중국에서 광복을 맞이했다.
귀국 후 1950년 가을 경찰계에 투신하여 10년간 대구경찰서에서 순경 등으로 재직했으며 #, 1959년 경찰공무원을 퇴직한 후에는 칠성시장에서 가구업을 경영하는 등 # 평범하게 살아가다가 1998년 9월 29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 보훈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언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국립신암선열공원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