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도 수리 마을 출신으로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것에 도움을 줬다고 하며, 정약전의 부름을 받고 함께 연구해 차례를 매겨 책을 완성했다고 한다.
흑산도에서 문을 닫아 걸고 손님을 사양한 채 옛 서적을 좋아했으나, 집이 가난하고 책이 적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지만 공부한 것이 폭넓지 못했다고 한다. 성품이 조용하고 정밀해 직접 듣거나 본 풀, 나무, 새, 물고기는 모두 자세히 살피고 깊이 생각해 그 생리를 알았으므로 그 말을 믿을 만하다고 했다.
손암 정약전 시문에는 장덕순에게 두 수에 시를 보낸 것을 통해 정약전과 교류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중 하나에서는 장창대는 우뚝해 사림에서도 빼어나다 하네. 옛 서적 항상 손에 쥐고서 오묘한 도에서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고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아 한미한 양반 출신으로 보인다.
안동 장씨 족보에는 그가 1792년생이라고 하며, 족보에 나온 생년이 맞다면 정약전이 흑산도에 머무르는 시기에는 16 ~ 23세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