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2:11:07

자전거 보병


1. 개요2. 개념3. 역사

1. 개요

자전거 보병이란 자전거를 이용하여 기동하는 보병을 말한다.

2. 개념

보병의 기동화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로써 자전거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경제적·군사적 효용성을 고려하여 채택되었다.

자전거는 차량보다 느리기는 하지만, 인력으로써 작동하므로 타이어 등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이나 윤활유와 같은 소모품 외에 건초 사료, 연료를 소모하지 않는다. 또한, 공산품이니만큼 군마와는 달리 공급조절과 표준화가 용이하였으면서도 각종 차량이나 장갑차량보다 공업력을 훨씬 덜 잡아먹는다.

자전거를 사용한다면 같은 힘으로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더 많은 중량을 운반할 수 있다. 게다가 자전거 자체도 개인이 타지 않고 도수로 운반하려거든 충분히 휴대가 가능한 장비인데, 특히 부피를 줄일 수 있게 제작된 접이식 자전거도 1880년대 후반 전장에서 자전거 보병들이 더 원활하게 휴대하도록 발명된 것이다. 정비소요나 작업피로도 차량보다 훨씬 가벼운 만큼이나 간편했다.

따라서 직접 도보로 걸어야 하는 일반 보병보다 빠르게 기동하면서도 부대 중량은 더 가벼우므로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저비용으로 상당한 기동성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자전거가 다른 기동수단보다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선 인력에 의존하니만큼 속도와 중량의 상한선이 있고, 막상 군용으로 쓰기에 충분한 성능을 확보하려면 가볍고 튼튼하게 만들 정밀한 공학기술과 고무, 알루미늄 등 고급 소재를 사용해야 하므로 그리 저렴하지도 않고 공정의 난도와 여건이 단순하지만도 않았다.[1] 따라서 차량 보급율이 높아지고 그에 맞추어 교통 인프라가 정비될수록, 자전거는 군대에서 퇴출되어 갔다.

전술 및 전투기술 면에서는 옛 용기병 등 근현대적 기병이나 차량화보병, 기계화보병과 동일하게 운용되었다. 병사들은 전장까지 자전거로써 이동한 다음 공격개시선이나 방어선에 도착하면 자전거에서 내려 전투를 벌이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3. 역사

GCN에서 소개하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자전거들.

이미 19세기부터 자전거의 군사적 가능성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몇몇 사례에서 편린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보어 전쟁에서는 영국군 보어인들이 서로 자전거를 활용해 통신이나 기습을 벌였고, 미국-스페인 전쟁에서는 임기응변으로 자전거를 활용해 기동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보어 전쟁(1899-1902) 중의 자전거 영국인들은 4륜 자전거에 작은 가솔린 엔진을 부착하여 제한적이나마 동력화를 시도하고 맥심 기관총을 탑재하여 화력을 강화한 모터스카우트라는 전투 자전거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러한 자전거가 군용으로써 본격적으로 활용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유럽 각국에서는 일찍부터 자전거 보병으로 편제된 부대들이 나타났고, 주로 경보병, 수색대, 전령, 의무병(구급 운반) 등을 위하여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경보병인 베르살리에리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다수의 자전거 대대를 창설했는데, 이들이 사용한 자전거는 그 유명한 비앙키이다.[2] 자전거로 쌓았던 명성이 어디 안 간다고, 관련 공식 행사나 퍼레이드에 자주 불려나오기도 하고 가끔 구보 행렬 뒤에 자전거를 타고 나팔을 부는 인원들이 따라오기도 한다. 투르 드 프랑스에서 첫 이탈리아인 우승자인 옥타비오 보테키아(Ottavio Bottecchia) 선수는 베르살리에리에서 자전거 보병으로서 1차 세계 대전을 종군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초반까지는 자전거를 편재한 부대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군용 오토바이 같은 대체제가 나오고 군용 차량들의 대량생산으로 인해 점점 2선으로 밀려나거나 공업력과 자본이 부족한 국가에서 주로 쓰이는 장비가 되었다. 그래도 자전거 부대의 유용성 자체는 이미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증명되었기에 의외로 많은 국가들이 2차대전 당시에도 활용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무거운 화기와 군장을 싣고 신속한 이동을 할 수 있는 장점과 정비의 간편함, 저렴함, 접으면 수납이 용이한 이점으로 인해 중장비 투입 자체가 어려운 공수부대에서 요긴하게 써먹었다.

유럽 내에서 각자 적국보다 공업력이 뒤떨어졌던 핀란드군 폴란드군은 자전거 부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핀란드군의 자전거부대는 계속전쟁 당시 빠른 기동성을 통해 소련군에 역습을 가하는 의외의 활약을 했다. 2차대전 당시 중립을 표명했던 스웨덴군도 사단의 주력 장비가 자전거였다.

독일에게 첫 침공을 당한 덴마크군도 자전거 부대를 활용했다. 자전거를 편제한 부대가 독일군의 기갑 장비와 마주쳐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는 영화 4월 9일로 제작되었으며 자전거 보병이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국력에 여유가 있던 초반에도 공수부대 내 공수 자전거를 두었다. 대전 후반으로 가면서 연합국의 공습으로 인해 주요 군수공장들이 파괴되어 제대로 된 기동 장비를 생산하는데 차질을 빚고 석유 산지들을 상실하여 연료를 구할 데가 없어졌는데, 국민척탄병 사단은 물론이고 당초에 차량화나 기계화가 되어 있던 독일 국방군 무장친위대 예하 부대들조차 원래 편제에 있어야 할 차량을 공급할 수 없자 이를 자전거로 대체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영국군도 BSA(버닝햄 소(小)화기 회사)에서 제작된 공수부대용 접이식 자전거를 사용했다.

동시기 동아시아에서도 자전거는 적지 않게 쓰였다. 열강 사이에서도 특히 공업력이 열세한 편이었던 일본은 차량화 부대를 대체할 목적으로 부대원 전원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보병부대인 은륜 부대를 만들기도 했다. 일본군의 적이었던 중국 국민혁명군도 낙후된 공업력으로 인해 전근대적인 마차도 귀했던 상황이라 자전거를 군용으로 활용했고 민간 자전거들을 적극적으로 징발해가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약소국 게릴라들의 이동수단으로 사용되어 가난한 자의 기갑 장비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디엔비엔푸 전투에서는 베트남인들이 눈에 띄지 않는 샛길로 푸조 자전거를 이용해 수십만톤의 전쟁 물자를 분지를 둘러싼 산 정상으로 배달해 최신 장비로 무장한 프랑스군을 좌절시키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에서는 베트콩 베트남 인민군 호찌민 루트를 따라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임무에 자전거를 투입하였다. 이때 운송 효율을 위하여 짐을 적재할 받침대 추가, 그 무게를 버틸 보강 추가, 쓰지 않는 안장을 뽑고 손잡이로 쓸 장대를 대신 꽂는 등의 개조가 이뤄졌다고 한다.[3][4]

물론 현대라고 꼭 못 사는 나라나 집단만이 쓰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군의 경우, 1905년에 자전거 부대를 창설하여 2003년까지도 운용한 바 있다. #


[1] 고무와 알루미늄은 차량이나 특히 항공기를 만들 때 필요했다. [2] 지로 디탈리아 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머리에 닭깃털 꽂고 나팔 불며 구보하는 그 군인들 맞다. [3] 1967년 10월 13일, 뉴욕 타임스의 잭 솔즈베리 기자가 상원 외교 위원회에서 이를 증언하자 J.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이 다리 대신 자전거 폭격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내었다고 한다. 물론 이 아이디어에 청중들은 크게 웃어 넘겼지만 그 후... [4] 베트남 공화국도 특히 민병대를 중심으로 자전거 활용을 시도하였으나, 방어전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효용이 적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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