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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이형만 나전장의 나전칠기 제작 모습 |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 손대현 옻칠장의 나전칠기 제작 모습 |
KBS 월드의 홍보 영상 |
1. 개요
나전칠기( 螺 鈿 漆 器)는 야광패(貝)나 전복[1] 등, 껍질 안쪽이 반짝이는 조개류를 재료로 빛나는 무늬를 만들어 옻칠한 기물에 새겨넣은 것을 가리킨다. 옛부터 한국, 중국, 일본에서 제작했는데 삼국 공통으로 나전이라고 부른다. '나전칠기'라는 명칭에서 라/나( 螺) 자는 ' 소라', 전( 鈿) 자는 '장식하다'라는 뜻이다. 풀이하면 '소라로 장식하고 옻칠한 기구'란 의미가 된다. 광택 있는 흑색 바탕에서 무지개빛으로 찬란함을 뽐내는 도안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재료인 전복 껍질 자체부터 희소성이 있고 이를 수작업으로 가공해 모양을 내는 과정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현대 기준으로도 귀중품으로 취급된다.여기서 장식으로 사용하는 조개 껍질은 안쪽이 진주질 성분 때문에 영롱하게 반짝이는데, 이렇게 공예용으로 사용하는 조개 껍질 조각을 순우리말로 '자개', 자개를 기물의 표면에 장식하는 행위를 '자개박이'라고 부른다. 또한 나전칠기를 '자개공예'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역사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자개를 이용하여 장식한 물건 중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은 수메르 문명의 왕릉에서 출토된 우르의 군기와 우르의 전승기념비이다. 중국에서는 상나라 때부터 나전칠기를 만들었고 당나라 시기에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한국에서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평탈기법에 가까운 나전칠기를 발견하고 삼국사기에 칠전(漆典)이라고 하는 관청이 신라에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나전칠기를 널리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라 때의 나전 유물로 국보 제140호 나전 화문 동경이 현존한다.
고려 시대의 기록인 고려도경과 조선 시대의 동국문헌비고에 고려 나전칠기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다. 문종 시기에는 송나라와 거란에게 나전칠기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고려시대 나전칠기의 특징으로 복채법(伏彩法)과 금속선을 들 수 있다.
고려 시대의 나전칠기는 촘촘히 배열하는 기법으로 여백을 거의 두지 않아 세밀하고 화려했다. 특히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로 출장 후 작성한 보고서인 고려도경의 기록을 보면 '고려의 나전은 가피 세밀하여 귀하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서긍이 전반적으로 고려를 굉장히 깔보는 시선으로 작성했던 것을 보면 고려 나전 기술의 우수성을 볼 수 있다.
장식의 재료는 자개, 대모(바다거북 껍질), 금속선을 사용했으며 몇 mm밖에 안 되는 패턴을 반복해서 넣고 그 테두리에 두 줄로 된 금속선을 꼬아서 박아넣은 것이 고려시대 나전의 특징이다. 국화와 덩굴(당초)무늬, 모란 등을 넣었으며, 꽃의 색채을 표현하기 위해 대모에 복채하는 기법이 사용되었다.
현재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전세계에 20여 점이 남아 있으며, 대부분이 경전을 담아두던 경전함이다. 국내에서 소장중인 고려시대 나전은 7점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중인 나전은 일본 개인이 소장했던 유물을 매입한 것이다. 리움 소장 나전 팔각형 함은 도상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전기의 양식도 섞여서 여말선초에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움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작품 중에는 고려시대의 나전 장식이 된 붓도 있다. 일본 사립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소장품을 삼성가에서 매입하여 환수하였다. 이런 형태의 동시대 유물은 리움 소장품이 유일할 정도로 굉장히 희귀하고 특이하다.
2023년 13세기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가 환수되었다. 130년 동안 일본 개인 소장가의 집안 창고에서 소장되어 있던 유물로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문화재청이 복권기금을 사용하여 매입했다. 형태가 다른 고려시대 나전경함과는 다르다. 보존상태는 매우 뛰어나서 진품이 확실하다면 최소 보물로 지정될 만한 유물이다.
근대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나전칠기가 과거에 비해 쇠퇴했고, 이왕직(李王職) 소관의 미술품제작소에 소속된 나전부에서 나전칠기를 제작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상용도보다도 공예품으로서 상품적 가치를 인정받아 조선 및 일본 상류층 간 기념품, 답례품 등으로 인기가 있었다. 1925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에도 나전을 출품하여 수상을 하기도 했고 구미지역으로 수출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3. 현재의 나전
현대에도 나전칠기 명맥이 끊기지 않아서 지금도 기능장을 중심으로 나전칠기를 만든다. 다만 제작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길며, 수공예 작업으로 할 수밖에 없고 피부와 접촉 시 염증(가려움)을 일으키는 옻칠을 쓰기 때문에 기피되는 기술이라 한다.만들기 어려운 만큼 나전칠기, 특히 대형물인 자개장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여 안방에 놓을 만한 여러 자짜리 장롱은 가격이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장롱, 화장대, 협탁 등을 풀 세트로 장만하려면 6~7천만 원에서 1억 가까이 한다. 이토록 비싼 물건이 대중적으로 잘 팔리기도 어렵고, 게다가 근대에 나전칠기업이 쇠퇴기를 겪으면서 옻칠을 대체하기 위해 일본에서 개발한 저렴한 캐슈칠이 국내로 도입되면서 나전칠기의 품질이 매우 낮아졌다.
정작 캐슈칠을 개발한 일본에서는 현재 인체 유해성 때문에 캐슈칠을 사용하는 곳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도료의 재질이 옻칠, 캐슈칠, 우레탄 중 어떤 것인지 명확히 표기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도 옻칠 대신 캐슈칠(폴리사이트)을 발라놓고 옻칠이라고 광고하며 비싼 가격으로 파는 곳들이 있다. 간혹 나전칠기에서 냄새가 난다고 싫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냄새가 나는 칠기는 백이면 백 옻칠이 아닌 캐슈칠을 바른 저품질 상품이라고 보면 된다. 진짜 옻칠로 만든 제품은 코를 가까이 대고 맡아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2020년대에 들어 전통공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나전칠기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자개 굿즈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 예시로 전통문화 체험으로 유명한 돈의문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자개공예로 굿즈를 만드는 체험이며[2] 국내 포켓몬 스토어에 자개로 된 포켓몬 스티커가 나왔다.[3] 인터넷에서 자개 DIY 역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유명 만년필 브랜드인 PILOT/Namiki에서 자개와 옻칠로 장식한 라덴[4] 만년필이 고급 라인업 중 하나로 생산되고있다.
4. 나전 장신구
실제 전복껍데기를 가공한 나전으로 귀걸이, 목걸이 등 장신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무지개 빛깔로 반사하여 반짝이는 점이 큰 매력이라 실제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전복껍데기 자체가 매우 흔하기 때문에 자개 조각 한두 개 정도는 나전칠기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곳을 견학하면 공짜로 얻을 수 있다. 다만 조개 껍질 특성상 사파이어, 에메랄드, 자수정 등의 보석에 비해서는 재질 자체가 물러서 흠집이 나기 쉬우며, 비누, 땀, 샴푸 등 화학물질에도 상대적으로 예민한 편이어서 관리를 잘 해주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 한다. 가만히 보관만 잘한다면 문제 없이 오래간다.5. 해외의 나전
중국나전일본나전
베트남나전
태국나전
동양의 칠기는 오래 전부터 서양에 알려졌다. 17세기 시누아즈리와 자포네스크가 유행하던 시절 처음으로 서양에 알려졌으며, 특히 일본 칠기는 광택 있는 검정 칠기판 위에 금과 은으로 모티브를 그려넣은 화려함으로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동양의 칠기가 유명해지면서 서양인들은 그 비법을 알아내려 노력했는데, 이후 유럽에 칠의 비법을 소개한 사람은 18세기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이자 아마추어 식물학자인 피에르 댕카르빌(Pierre Nicolas Le Chéron d'Incarville, 1706-1757)이다. 그는 '중국 칠에 대해서'라는 연구서를 발표해 칠의 성분이 '치수'라는 나무에서 추출한 진액임을 밝혀내었다. 이 치수가 바로 옻나무이다.
6. 여담
- 배재대학교에 나전칠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칠기공예과'가 존재했지만 2012년에 5개 단과대학을 통합하는 과정 중에서 사라졌다. 해당 학과의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반대하고 대외적으로도 여러 가지 우려가 나왔지만 대학 측에서 강행하였다.[5]
-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옵션으로 추가할 것을 고려했으나 진품은 너무 비싸고, 모조품은 폼이 안 나서 반려되었다.
- MBC 소품실에 있는 각종 대도구, 소도구 중 가장 비싼 소품이 자개장이라고 한다. 시가 5천만 원 가량으로 인어아가씨 등 MBC 일일연속극에서 부잣집 안방에 자주 등장하는 소품이라고 한다.
- 전두환의 연희동 자택 응접실에 있던 고급 자개장이 매물로 나왔다. 해당 작품은 인간문화재 김태희 명인이 1984년 완성했는데 그 당시에 시가 3억 원[6]을 호가하는 상당한 고가의 명품이다. 1987년 일해재단(현 세종연구소) 거쳐 전두환의 자택으로 옮겼다고 한다. #[7]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2024년~2026년 어웨이 유니폼은 나전칠기의 디자인에서 모티브를 따온것이다. #
- 진공관 앰프 오디오 기기 '레트로그래프 마카롱'은 통영의 자개를 장식하고 훈민정음을 이미지화한 버전을 따로 출시해 화제가 됐다. #
- 일본의 추리극드라마 ‘바티스타 나전미궁’에서는 병원 노인들이 나전을 만들어서 병원을 돕고자 한다. 그리고 안락사하는 옥상의 방에는 나전장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