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전 농구선수
|
||
|
||
<colbgcolor=#eeeeee,#191919> 임영훈 | ||
출생 | 1977년 9월 23일 ([age(1977-09-23)]세) | |
본관 | 풍천 임씨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93cm| 체중 92kg | |
직업 | 농구선수( 파워 포워드 / 은퇴) | |
학력 |
세검정초등학교 (졸업) 용산중학교 (졸업) 용산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졸업) [1] |
|
프로 입단 | 2001 KBL 드래프트 (2라운드 12순위, 부산 기아) | |
현역시절 등번호 | 91[2], 13[3], 7[4], 0[5], 4[6] | |
병역 | 상무 농구단 (2003~2005) | |
소속 |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2001~2002) 창원 LG 세이커스 (2002~2006) 부산 KTF-kt (2006~2011)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193cm의 키로 궂은 일을 맡았던 수비형 플레이어 선수였다. 힘을 바탕으로 한 점프력과 저돌적인 파이터급으로 몸싸움이나 리바운드가 골밑에서 능숙했으며 외곽 중거리슛 등 다양한 공격의 활로를 맡았다.2. 선수 이전
용산고등학교 시절에는 전형수가 이끈 명지고등학교를 누르고 쌍용기전국대회에서 우승해 최우수 선수에 뽑히기도 했으며 성균관대학교에서는 동기 이현준을 비롯해 낙생고 3인방인 이한권, 진경석, 정훈과 함께 활약했다.3. 선수 시절
2001년 KBL 드래프트에서 12순위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에 지명되었으나 모기업인 기아자동차가 IMF 경영난으로 인해 모비스에 인수되면서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의 유니폼을 입고 47경기를 출전해 평균 5.6득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시즌이 끝난 뒤, 구병두와 맞트레이드된 창원 LG에서는 식스맨으로 기용되었으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상무에 입대했고, 제대 뒤에도 평균성적은 이전과 동일하게 부진하였다. 2006-2007 시즌 조상현의 보상으로 부산 KTF로 트레이드되어 식스맨으로 뛰다가 2010-2011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선수 말년인 2010년에는 5년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난 스튜어디스와 결혼에 성공하기도 했다.
4. 은퇴 이후의 활동
선수생활 은퇴하자마자 영훈고등학교 교직원으로 활동[7]하였다가 학교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영훈고등학교를 떠나 강서구 농구교실 코치[8]로 활동, 이후 코로나19 펜데믹 사태가 터지면서 잠시 공백기를 가졌으나 국민대학교 생활체육 담당교수로 활동하게 되었다.[9]2018년에는 훈스4060이라는 동호회농구팀의 선수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