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통일시대 남북의 작가와 독자들이 다같이 심취하고 영향받을 수 있는 문학작품을 든다면, 바로 홍명희의 <임꺽정>일 것이다. 그 점에서 <임꺽정>은 통일시대 우리 민족이 되돌아가 거기서 새로 출발할 필요가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시대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 강영주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나는 우리 문학사에서 벽초를 첫 손가락으로 꼽는다. - 신경림 (시인)
벽초 홍명희의 장편 피카레스크 소설. 1928년 11월 21일부터 1939년 3월 11일까지 〈 조선일보〉에 발표되고, 이어 1940년 〈조광〉 10월호에도 발표되었으나 미완으로 끝났다. 봉단(鳳丹)편·피장(皮匠)편·양반편·의형제편·화적편 등 5편으로 나뉘어 있다.
2. 상세
저작자 자신이 영웅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는지, 작중 초반은 임꺽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임꺽정보다 수십년 전 연산군 때 이장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이런 점 때문에 연재 초기 당시 독자들의 항의가 많기도 하였다.애초에 10권 기준으로 2권 후반에나 임꺽정이 태어나고 그나마도 딱히 주인공의 탄생스러운 묘사는 없다. 또한 양반편은 그 당시의 세도정치, 의형제편은 7형제가 각 챕터의 주인공이다. 임꺽정이라는 타이틀 주인공을 내세웠음에도 군상극도 되는 신기한 작품이 홍명희의 임꺽정이다.
벽초 홍명희가 월북을 한 관계로,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금서로 지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흥미진진한 내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은밀히 복사해서 돌려보았다는 일화가 있다.
신문 연재 당시의 인기는 매우 대단해서, 신간회 활동을 빌미로 홍명희가 수감당해 연재가 중단되자 소설을 연재하게 해달라는 편지가 총독부에 빗발치듯 몰려왔다. 결국 홍명희는 감옥 안에서 연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관원들도 이 소설에 푹 빠져서 홍명희가 쓴 원고를 조선일보 측에 보내기 전에 돌려 가며 읽었다고 할 정도.
홍명희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임꺽정의 전설을 채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도적이나 호걸 이야기를 얻었으며, 그 민담들의 결집체가 된 것이 바로 임꺽정이라고 한다. 임꺽정을 위시한 두령들의 능력이나 인물성을 보면 고전 소설인 수호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추정된다.[1] 사실 저자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수호전에서도 많은 걸 따왔다고 하는데, 일례로 황천왕동이 동굴 안에서 비수로 호랑이 뒤를 찌르는 장면은, 흑선풍 이규의 행적을 거의 그대로 본뜬 것이다. 실제로 청석골 두령들의 모습을 보면 양산박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국적 정서를 드러내는 토속 구어체가 많이 쓰이고 있으며, 한국의 문화도 많이 기록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 문학을 연구한 어느 일본인 교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져가는 조선의 문화를 소설 속에 보존하기 위한 시도였다는 비평을 하기도 했다.
소설속에서 주인공 임꺽정은 젊은 시절 스승 양주팔을 따라서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역사속 실존 인물들을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만나는 사건들이 여러 개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이순신을 만나 호통치는 장면, 토정 이지함을 제주도 가는 길에 만나는 장면[2], 이지함과 남명 조식이 만난 자리에서 이지함이 임꺽정을 평하던 장면, 남산 밑에서 초막을 짓고 인종을 방자하던 윤원형을 만나 죽도록 패주는 장면, 백정이던 임꺽정이 귀양가던 양반 이해가 장독으로 죽자 관을 구해 시신을 안치하고 이를 고맙게 여긴 동생 퇴계 이황이 직접 임꺽정을 찾아오는 장면 등등
화적편에서 미완으로 끝났다. 왜 미완으로 끝났는지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설이 분분하다. 일제가 전시 체제로 접어들면서 조선 문화 탄압이 시작되자 절필했다는 견해가 유력하나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한동안 북한에서 홍명희가 그 후의 내용을 써서 완결지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최근 남북 교류의 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손자 홍석중의 말에 따르면, 광복 후 주위에서 소설을 완결 짓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지만, 홍명희가 ' 소설의 결말은 독자들의 상상에 남겨두고자 한다'고 말하면서 거부했다고 한다. 비평론으로 볼 때 이미 임꺽정 무리의 몰락이 확실시 된 상황까지 써진 이상, 특별히 그 뒤의 내용이 필요없다는 견해도 있다. 관군을 피해서 대부분의 두령과 그 수하가 구월산으로 이동하고, 혼자 남은 오가가 청석골에 남아 있다 뿔뿔히 흩어지는 졸개들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연재가 끝났다.
손자인 소설가 홍석중이 임꺽정의 최후를 화살에 맞아 죽는 것으로 쓴 것도 있는데 이후에 홍명희의 임꺽정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은 홍석중이 쓴 결말 부분을 따른다. 다만 북에서 완결은 시켰는데 할아버지만큼의 맛은 내지 못했다.
2004년에 저작권 인식이 신장되면서 출판사 측에서 북한에 있는 작가 홍명희의 유족들에게 저작권료로 1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원래 공산주의에서는 저작권법을 인정하지 않으나 2001년에 북한에서 저작권법이 제정된 후 2004년 이후 북한 출판사와의 저작권 협상을 해서 나온 책이 더러 있다.
임꺽정이 스승으로부터 받는 검, 장광도는 일본도로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유명한 도공인 비젠 오사후네 나가미쓰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사사키 코지로의 애검인 모노호시자오를 만든 걸로 유명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만든 칼로 임꺽정은 이 칼로 삼포왜란에서 왜구를 수없이 썰어낸다.
이 소설의 가치 중 하나는 8도 전역의 사투리를 이 소설 하나에서 전부 읽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임꺽정이 8도 전역을 돌아다니거나, 형제들이 각 지방마다 나뉘어 살고 있는 것을 서술할 때 그 지역 사투리를 세심하게 고찰해 적어두었다. 각 지역의 고유한 옛 단어들을 읽어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국어사전에도 안 나오는 단어가 있어서 한때 '임꺽정 우리말 용례사전'이 나왔을 정도.
3. 파생 작품
사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임꺽정 소설, 만화 작품들은 홍명희 소설이나 임꺽정 드라마를 참조했다고 봐야 한다. 가상인물인 임꺽정의 의형제 캐릭터들이 홍명희 소설이 아닌 다른 임꺽정 소설, 만화에도 대부분 같은 이름으로 등장하며 줄거리도 비슷하다.3.1. 이두호 임꺽정
홍명희의 임꺽정에서 파생된 만화이다. 만화가 이두호가 그렸다. 홍명희의 원작을 사용하고 싶으면서도 정작 만화가가 검열[3]이 두려운 나머지 임꺽정과 서림을 뺀 나머지 등장인물의 이름을 싸그리 고쳤다.자신은 등장인물의 이름뿐만 아니라 상당한 창작력을 가미했다고 주장하지만 널리 인정받진 못한다[4]. 이를테면 만화의 김달평이라는 인물을 살펴보자. 소설가 김성한의 "이마"라는 소설에 박치기를 잘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정난정의 첫사랑이었고 임꺽정 패거리에 잠깐 몸담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박치기를 잘하고, 정난정의 첫사랑이면서 그녀를 찾아 헤맨다든지 하는 내용이 이두호의 "마빡 김달평"이다. 당연히 전자의 소설이 먼저 나왔고 인지도도 높다.
이후 임꺽정의 아들 임차손이 이순신 장군과 어린 시절부터 우정을 맺게 되는 후속편 '파행'을 스포츠조선에 연재하다가 무슨 사정인지 흐지부지 갑자기 끝내버렸다.
파행에선 차손이가 서림의 목을 베어버려 아버지 원수를 갚는 가상 상황이 추가되었다. 더불어 1570년에 병으로 죽어가는 남치근에게 양반 차림으로 가서 내가 임꺽정 아들이라고 말하는 게 추가되었다. 병자리에 누워있던 남치근은 눈이 커지며 놀라지만 병 때문에 말도 못 하고 컥컥거리다가 그대로 죽는다.
본래 임차손이 이순신과 더불어 임진왜란에 참전하는 부분까지 그려내려고 했으나 결국 무산되고 임차손이 사촌 동생의 묘[5] 앞에서 자신의 장성한 아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연재가 종료된다. 이 부분이 좀 개그스럽다. 처음보는 사이여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혈육임을 안 임차손이 네 어머니는 어찌됐냐고 묻자 아들은 당신 땜에 새까맣게 속이 타 죽었단 말이오!하며 들이받고 임차손은 억장이 무너지면서 그런 아들을 끌어안고 아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데 수풀 뒤에서 좀 천천히 올라가라고 아들에게 타박하는 아내와 마주쳐 둘다 얼떨떨한 와중에 아들은 심드렁하게 뭐하시우. 얼른 가서 보듬어주지 않고라고 한다.
임꺽정의 아내와 처남 역시 상당 부분 다르다. 원작에서는 끝까지 사회화가 안 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만화에서는 백두산에서 내려온 후 인간 사회에 나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인 임꺽정 역시 성격이 다르다. 원작에서 임꺽정은 성격상 문제가 많다. 이두호 임꺽정에서도 이러한 점은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외강내유된 모습을 더 많이 부각시킨다. 특히 반편인 형과 여동생을 극진히 생각하고 지켜주지 못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 등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모습을 더욱 부각시킨다. 소설판에서는 형과 누나였던 사람인데 형제 관계를 뒤집어 놓은 것은 아마도 임꺽정의 소년가장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누나인 섭섭이가 꺽정의 실질적 보호자였지만 만화판에서는 임꺽정이 보호해주어야 했지만 결국 지켜주지 못한 것으로 묘사된다.
등장인물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당대 야사에도 나오는 단천령 이억순과의 사건도 삭제되었는데 원작에서 몇 안 되는 임꺽정의 인간미를 볼 수 있는 사건인데 왜 삭제되었는지는 불명이다. 돌팔매를 잘 하는 배돌석이 삭제되고 그 대신 박유복에 상응하는 조금맹[6] 이 팔매와 표창을 같이 쓴다. 그리고 배돌석의 특성에 정난정의 연인을 섞어 김달평이라는 인물로 재창조되었다. 또한 쇠도리깨를 쓰는 곽오주는 '박돌깨'라는 인물로 나오는데, 원작의 곽오주와는 달리 정신 상태도 정상이고, 거칠지만 인간적인 개그 캐릭터로 등장한다. 서림과도 그가 배반하기 전까지는 톰과 제리처럼 애증이 섞인 수준이다.
작품성으로 보면 홍명희의 소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결코 본받을 만한 각색은 아니다. 다만 문화 쇄국주의 시대이던 때에 우수한 즐길거리가 없던 시절이라 여태까지 '그런 만화가 있었지'라고 기억되는 수준. 한국어의 맛과 만화적인 질펀한 선을 잘 살린 고우영의 작품이 훨씬 작품성이 우수하다.
원작의 한계인지 이두호 작품의 한계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가상 인물과 실존 인물들을 한번에 등장시키는 과정에서 고증오류도 소소하게 등장한다. 가령 보우는 청년 시절의 임꺽정과 만났을 때부터 중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보우는 1515년생으로 문정왕후가 정권을 막 장악했을 당시(1545년 명종 즉위)의 시점에도 겨우 30살을 갓 넘긴 나이였다.
단, 이두호의 임꺽정을 이렇게만 평가절하할 수도 없다. 각색이 아쉬운 점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벽초 원작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서이지, 단일 작품으로서는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 ~ 1990년대 만화로서는 드물게, 그리고 벽초의 원작에서도 그다지 묘사되지 않은 주인공 임꺽정의 내면 묘사라든가,
신문 연재가 끝난 후 1995년에 대본소판(초판)이 출판되었고 2004년 경 무삭제판이 발매되었다. 초판을 만든 프레스빌이 97년 말 같은 그룹 계열 출판사였던 대교출판에 합병되면서 절판된 것을 자음과 모음에서 재출간했다. 초판은 헌 책방이나 중고장터 등에 가끔 올라오지만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무삭제판은 거의 찾기가 힘들다. 공공 도서관에 간혹 있으니 잘 찾아보는 게 좋다. 일단 남산도서관에 완전판 전권이 있다.
2017년 11월 표지를 새로 그리고 2천질 한정으로 출판됐다(전 20권 세트) e북으로도 같이 나와서 판매중이다.
3.2. 드라마
자세한 내용은 임꺽정(드라마)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곽오주는 흑선풍 이규, 배돌석은 몰우전 장청, 이봉학은 소이광 화영, 황천왕동은 신행태보 대종.
[2]
스승 양주팔이 "재주가 삼군을 덮을 만하나 끝내 쓰이지 못할 것"이라고 평한다
[3]
이두호가 만화를 연재하던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원작자의 행적 탓에
홍명희와 그의 작품을 언급하는 건 껄끄러운 마찰음을 낼 수 있었다.
[4]
원래 만화가 이두호의 출신 자체가 일본 만화를 그대로 베껴 그리는 번안 만화가였다 말이 좋아서 번안이지 불법 복제. 이두호 본인은 "그 시절엔 다들 그랬다"라는 말로 여태껏 일관해왔다. 자세한 건 이두호 항목 참고
[5]
임꺽정의 형인 가도치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토포사가 씨를 남겨두면 안 된다고 땅에 내리쳐 죽였다(...)
[6]
고우영 화백의
임꺽정에서도 동일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바로 차돌이라는 캐릭터다. 처음엔 돌팔매질을 하다가 스승에게 표창을 받은 후 표창던지기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