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양천구청장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초대 전명호 |
제2대 권이긍 |
제3대 유천수 |
제4대 탁병오 |
제5대 허재구 |
제6대 허완 |
제7대 김승규 |
제8대 양재호 |
제9대 허완 |
제10대 추재엽 |
|
제11대 이훈구 |
제12대 추재엽 |
제13대 이제학 |
제14대 추재엽 |
제15·16대
김수영
|
|
제17대 이기재 |
|||||
}}}}}}}}} |
1949년 2월 5일 ~ ([age(1949-02-05)]세)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2. 생애
1949년,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목동리(현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당산초등학교, 서울장훈중학교를 졸업하였다.[1]서울장훈중학교 졸업 후 좋지 않은 가정형편으로 인해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3. 정치인 시절
1991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양천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양천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양천구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양천구의회 의장을 지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한나라당 서울특별시당 부위원장을 지냈다.계파로는 원희룡계에 속해 있었던 모양이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양천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무소속 추재엽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대학 입학 검정고시 대리시험으로 인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확정되어 2007년 구청장직을 상실하였다.
4. 검정고시 대리시험 논란
당선된지 1년도 안 되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았고, 결국 2007년에 구청장직을 상실했는데, 그 이유가 대학 입학 검정고시 대리시험(...)이었다. 당시 선거 팜플렛에 가난한 집안을 그렇게 강조했었던지라 유권자들의 배신감이 매우 컸다.어떻게 보면 양천구청장의 수난사의 본격적인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 최고위원이었던 원희룡이 공천에 개입해 자기 사람이었던 이훈구를 공천시키기 위해, 추재엽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는데 이 게 매우 잡음이 있었다. 아예 경선 조차 치르지 않고 공천에 배제시켜버렸던 건데, 추재엽은 이 때 지역구민들에게 매우 평이 좋았기 때문에[2]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좀 많이 심각했었다.
결국 추재엽은 공천에 불복하여 탈당했으나 낙선했고, 추재엽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5. 가족관계
부인 전난순 여사와 2남이 있다.6. 둘러보기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middle; margin-right:10px"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81818,#e5e5e5 |
종로 | 성동 | 광진 | ||
김충용 | 정동일 | 박장규 | 이호조 | 정송학 | |
동대문 | 강북 | 도봉 | |||
배영철 | 문병권 | 서찬교 | 김현풍 | [[최선길|최선길]] | |
노원 | 은평 | 서대문 | 마포 | 양천 | |
이노근 | 노재동 | 공석 | 신영섭 | 추재엽 | |
강서 | 구로 | 금천 | 영등포 | 동작 | |
김재현 | 양대웅 | 한인수 | 김형수 | 김우중 | |
관악 | 서초 | 강남 | 송파 | 강동 | |
박용래 | 박성중 | 맹정주 | 김영순 | 이해식 | |
동대문구청장
홍사립 사퇴 (2009.5) 관악구청장 김효겸 구청장직 상실 (2009.11.26) 서대문구청장 현동훈 사퇴 (2010.4) |
|||||
민선 1기 / 민선 2기 / 민선 3기 / 민선 5기 / 민선 6기 / 민선 7기 / 민선 8기 | }}}}}}}}}}}}}}} |
[1]
뭐 서울 외곽지역이 다 그러했듯이 지금이야 목동에 초등학교가 많지만, 이 때는
당산동까지 가야 했다.
마을버스도 없었던 시절이니 뭐... 목동이 개발된 시기는 1980년대였고, 현재의 목동은 그야말로 논밭이었다. 목동사거리에서 목동4단지로 넘어가는 곳은 원래 계곡이 있었다. 목동리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하천이 있었다. 지금이야 다
복개 상태지만...
[2]
전국 최초로 음식물 쓰레기 용기 개발해서 양천구 각 가정에 무상 보급해서 음식물 쓰레기 악취를 줄인 성과를 인정 받아 매니매스토 평가 등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어 표창을 받기도 했었으며, 일본에서 취재를 왔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