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2 09:59:06

이화상


1. 개요2. 생애3. 자료4. 인적사항5. 대중매체

1. 개요

李和尙
(? ~ 1398?)

조선의 인물. 이지란의 장남.

2. 생애

고려사에 따르면 1388년 위화도 회군 때 최유경이 우왕에게 군사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알리자 이화상은 이방우, 이방과와 함께 성주의 우왕의 처소로부터 이성계의 군대 앞으로 도망갔으며, 우왕이 정오가 되어도 이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태조실록에는 1398년 공조 전서(典書)로서 명을 받아 정도전에게 술을 내릴 때 단편적으로 나온다. 국가 기록에서의 등장은 이렇게 기사 2개가 끝.

3. 자료

청해 이씨 문중에서 전하는 이화상 관련 문서는 다음과 같다.

4. 인적사항

이화상의 생몰년은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 음력 1398년 1월이고, 그의 처 이씨를 임명한 문서에서 고(故) 이화상이라고 기록된 것이 같은 해 음력 12월인 것을 통해 음력 1398년 1월 ~ 12월 사이에 사망했다고 비교적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태어난 해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이는 출생년도를 부인에게 맞추느냐 어머니에게 맞추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선 이화상 처 이씨 고첩에서 부인의 나이를 세는나이 37세, 곧 1362년생으로 언급하고 있어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결혼이 아니었다면 이화상이 태어난 해 역시 대략 그 전후로 추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지란의 두 부인 중 함안 윤씨와 이지란의 결혼은 우왕 연간(1374~1390)의 일이고, 곡산 강씨와의 결혼도 정황상 아무리 빨라도 1371년 이전으로 소급하기 어려워서 태어난 해를 어머니에게 맞추게 되면 최소 1372년생이 된다. 게다가 일반적으로는 함안 윤씨가 첫 번째, 곡산 강씨가 두 번째 부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실제 추정 연령은 더욱 어려진다. 태종 원경왕후의 사례처럼 부인의 나이가 남편보다 많을 수는 있지만, 그 경우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까지 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이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이화상을 이지란의 어머니들과 연결짓기 어려워진다.

결론적으로 이화상의 인적사항과 행적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다.

기록이 풍부한 동생 이화영(李和英)에 비해 국가 기록에는 딱 2번 나오는 게 끝이고, 태종실록의 이지란 졸기에는 존재 자체가 누락되어 있다. 게다가 후대인 1774년( 영조 50)에 쓰인 이지란 신도비문에는 아예 아들 순서에서 이화영에게 밀려나 마치 둘째 아들인 것처럼 되어있다. 이랬던 인물이 졸지에 태종 이방원(드라마) 덕분에 재조명을 받은 셈.

5. 대중매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화상(태종 이방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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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는 이방원과 사이가 좋은 것으로 나오고 위화도 회군 때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며, 이방원을 도와 여러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문중에 따르면 제1차 왕자의 난 이전에 사망하지만 여기서는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돕거나 조사의의 난 때 군사가 움직인다는 것을 이방원에게 알리기도 하면서 동생 이화영의 행적이 적절히 섞인 모습을 보여준다.
[1] 관청 명의로 발급되는 임명장, 증명서 등 각종 문서를 가리키며 교첩(敎牒)이라고도 한다. 국왕 명의로 발급되는 교지 또는 왕지(王旨)보다는 등급이 낮다. 조선시대의 교첩 중 현존하는 것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