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0c0c0><colcolor=#ffffff> 이창희 李昌熙|Lee Chang-h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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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3년 5월 24일 |
경상남도 의령군 | |
사망 | 1991년 7월 19일 (향년 58세)[1][2] |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암센터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경주 이씨 (慶州 李氏)[3] |
직업 | 기업인 |
학력 |
보성중학교 (졸업) 가쿠슈인대학 이학부 (화학 / 학사) 와세다대학 대학원 (상학 / 석사) 와세다대학 (상학 / 박사 수료) |
부모 | 아버지 이병철, 어머니 박두을 |
형제자매 | 4남 6녀 중 차남이자 셋째 |
배우자 | 이영자[4] |
자녀 |
장남
이재관[5] 차남 이재찬[6] 삼남 이재원 장녀 이혜진 |
손주 |
손자 이준호(1996년생)[7] 손자 이성호(1998년생)[8] 손녀 이지혜(1995년생)[9] 손녀 이다현(1997년생)[10] 외손녀 조인영(1993년생)[11] 외손자 조호재(1998년생)[12] |
병역 | 면제(국외 장기체류)[13] |
경력 | 새한미디어 회장 |
신체 | 175cm[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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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새한그룹 창업주. 아호는 청산(靑山).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의 차남, 즉 삼성전자 회장을 지낸 이건희의 작은형이자 이맹희의 큰 남동생이다. 이재용 삼성 회장의 둘째 큰아버지이기도 하다.
2. 생애
경상남도 의령군 출신으로 보성중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쿠슈인대학에 입학하였고 1964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였다.귀국 후 아버지 이병철이 세운 삼성그룹에 입사하여 한국비료 이사, 제일모직 이사, 삼성물산 이사 등을 거쳤으나,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하고 나온 후 1969년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하면서 후계 구도에서 배제되었다. 이창희는 단순히 아버지를 배신하겠다는 생각에서 왕자의 난을 일으킨 것이 아니고, 박정희 정권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병철 회장이 계속 삼성의 주인으로 있는 한, 삼성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여 아버지를 삼성에서 몰아내려고 한 것이다. 나중에 이창희는 이병철에 의해 엄청난 굴욕을 당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박정희에게 이병철의 처벌해달라고 투서했으나 박정희가 움직이지 않았고 그렇게 왕자의 난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큰 형 이맹희에게 다음과 같은 불만을 털어놓곤 했다.
형님만 외국으로 나가고 나면 아버님이 모든 일을 다 하시는데... 정부와의 관계도 있고 해서 실제적으로 아무 일도 진행이 안 됩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미국으로 갑니까? 나는 삼성을 살리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미국으로 갑니까? 나는 삼성을 살리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삼성그룹을 나와 1973년 미국 마그네틱 미디어 사와 손잡아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를 세워 카세트테이프 제조업을 개시했고, 1977년 새한전자를 인수하고 1979년에 그 회사를 합쳐 이듬해에 새한미디어로 사명을 바꿨다. 1980년대 내내 비디오테이프, 플로피디스크 등 기록매체 관련 사업 중심으로 회사를 키워 선경그룹의 SKC와 선경매그네틱에 버금가는 기록매체 전문메이커로 키워냈다.
1984년 공기업 한국종합화학공업으로부터 충주비료공장을 불하받아 1986년 대한민국 최초로 옥사이드공장으로 개편했지만 1988년에 공장 화재로 수난을 겪은 바 있다. 1987년에는 아일랜드 슬라이고시에 현지법인을 세워 공장 건설을 시작했으나 그 결실을 못 보고 1991년 7월 19일 오후 6시, 미국 메릴랜드 주 존스 홉킨스 대학교 병원에서 백혈병 치료 도중 병세가 악화되어 58세로 사망하였다.
삼성과 CJ그룹의 소송전 때 그의 부인이자 이건희 회장의 작은 형수인 이영자(나카네 히로미)가 이건희 회장과 삼성 앞으로 소송을 건 적이 있었다.
사후 부인과 장남 이재관이 삼성으로부터 제일합섬을 넘겨받아 새한그룹을 경영하였으나 경영 실패로 새한미디어를 포함한 모든 계열사가 매각되었다.[15] 2010년 8월 18일에는 차남 이재찬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16]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해서 주변의 안타까움을 줬는데( 기사) 이 일이 일어난 지 12년이 되는 2022년 6월 11일에는 이재관 전 새한미디어 부회장까지 향년 59세로 사망하게 되면서 더욱 주변의 안타까움을 샀다.[17]게다가 2년 후 2024년 12월 2일 삼남 이재원마저 향년 58세로 사망하면서 이로 인해서 새한미디어의 아들들은 모두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였다.[18]
한편 고명딸 이혜진은 래딕스글로비즈와 래딕스플렉스를, 사위인 조명희는 디엠퓨어텍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은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 등과 상부상조하고 있다고 한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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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은 어릴 적 이맹희, 이창희를 일본으로 보내 일본인 소실 '구라다'와 같이 살면서 학교에 다니게 했다. 그러나 이맹희, 이창희는 이병철의 일본인 내연녀 구라다와 잘 지내지 못해서 집기를 부수며 싸우기도 하는 등 갈등을 빚었고 덕분에 둘 다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독립해서 따로 살게 된다. 아직 어렸던 이건희는 구라다와 잘 지내는 편이었다고는 하나, 친한 수준까진 아니었는지 개와 어울리며 외롭게 지냈다고 한다. 때문에 이맹희는 훗날 구라다와 사이가 좋지 않아 이병철 눈에 난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회고하기도 했다.[19][20]
4. 가족관계
자세한 내용은 범삼성가 문서의
가계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사인은
혈액암.
[2]
아버지 이병철보다는 나중에 사망했지만 어머니 박두을보다는 먼저 사망했으며 범삼성가 2세 형제들 중 가장 먼저 사망했다. 심지어 범삼성가 2세 중 최연장자인 사촌형 이동희(1924~1996)보다도 먼저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장남과 3남 모두 그와 비슷한 나이에 사망했다.
[3]
판전공파(判典公派)-사정공파(司正公派) 중시조 40세 ○희(○熙) ○형(○炯) 항렬.
[4]
일본인으로 본명은 나카네 히로미. 이창희와 결혼해서 한국으로 귀화한 이후 남편의 성씨를 그대로 이어 썼다. 고로 이들의 자녀는 한일혼혈.
[5]
2022년 사망
[6]
2010년 투신자살
[7]
차남 이재찬의 장남.
[8]
차남 이재찬의 차남.
[9]
장남 이재관의 장녀.
[10]
장남 이재관의 차녀.
[11]
장녀 이혜진의 장녀.
[12]
장녀 이혜진의 차남.
[13]
1933년생이기에 본래 같았으면 6.25 전쟁 중인 1952~53년에 병역판정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이창희는 형
이맹희와 마찬가지로 병역판정검사 이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서 형처럼 병역면제다. 1956년에 귀국한 형 이맹희와 달리 이창희는 일본에서 좀더 유학을 하고 일본인 여성과 연애결혼까지 해서 1962년에 한국으로 귀국해서 병역판정검사를 받을 나이를 이미 지났다. 이창희의 아들들 역시
한일혼혈이라서 전부 병역면제다. 1992년생까지는 혼혈들은 일단 병역면제를 시켜줬기 때문.
[14]
1930년대생 남성 평균키가 160cm 중반대인 것을 감안하면 아주 큰 편이다. 자신과 다르게
형,
동생은 모두 키가 160cm 초중반대로 키가 작은 편이다.
아버지 역시 키가 160cm 중후반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혼자서 유난히 장신인 셈이다. 아들들도 키가 170대 후반~180대 초반으로 키가 큰 편이다.
[15]
새한그룹의 마지막 흔적은 구 충주정밀인 새한(주)가 유일하다.
[16]
자주 다니던 동네 수퍼나 가게에 외상이 많았고 TV 등에서 자신의 아버지 등 가족들 이야기가 나오면 상당히 싫어했다고 하며
사촌형과
사촌
동생들 사이에서 열등감도 많이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세탁한 옷을 배달하러 온 동네 세탁소 주인에게
할아버지가 학사모 쓰고 있는 액자 사진을 가리키며 '우리 할아버지'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할아버지만큼은 상당히 존경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17]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먼저 사망한 동생 이재찬과 마찬가지로 사업부도로 인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생전 앓던 지병이 많았다고 한다. 지병으로 인해 미국에서 수술을 받기도 하고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원래 이재관은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병 때문에 체중감소가 심하게 됐다고 한다.
[18]
샤르코-마리 투스 병으로 죽을 뻔한 상황을 겨우겨우 넘긴 상태인 그 이재현조차도 최소 환갑은 넘긴 채 현재 살아있다.
[19]
삼성일가 비사를 정리하는 이용우도 같은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20]
다만 이맹희는 구라다상을 두고 호암과 묘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그건 말하기도 부끄러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썼다. 삼성을 소재로 한 '유리상'이라는 소설에 나온 이야기로 그야말로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