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05:18:05

이진호(축구선수)

파일:JinHo.Lee.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 이름 이진호
李珍浩 | Lee Jin-Ho
출생 1984년 9월 3일 ([age(1984-09-03)]세)
경기도 안양시 #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2cm, 84kg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에이전트
학력 옥동국민학교
학성중학교
학성고등학교
울산과학대학교
프로 입단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 유스 크루제이루 EC (2000~2001)
AC 키에보베로나 (2002)
선수 울산 현대 호랑이 (2003~2011)
광주 상무 불사조 (2006~2007 / 군복무)
포항 스틸러스 (2010 / 임대)
대구 FC (2012~2013)
제주 유나이티드 (2013 / 임대)
광주 FC (2014)
에어 포스 센트럴 FC (2014)
천안시청 축구단 (2015~2016)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플레이 스타일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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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축구선수 출신의 현직 스포츠 에이전트.

자신의 팀에 대한 애정을 그라운드에서 열정으로 뿜어내어 열정의 스트라이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울산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울산 프로팀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강한 선수로 유명하다. 울산 현대 축구단 서포터들에게 울산의 아들 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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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 시절. 대구 FC 시절. 제주 유나이티드 시절. 광주 FC 시절.

2.1. 프로 입단 전

2000년에 학성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이호, 송한복과 함께 울산 현대 호랑이와 가계약을 맺고 브라질 크루제이루 EC 유소년팀에서 2년간 뛰다가 2002년에 이탈리아 축구팀인 AC 키에보베로나 입단 테스트에 합격해 유소년 팀과 정식 계약에 성공하기도 하였다. 특히 오스트리아 2부리그 팀과의 자체 연습경기에서 3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해 키에보 스카우터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2군에서 뛰며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이탈리아 축구협회가 외국인 쿼터를 전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는 룰을 새로 만드는 바람에 계약 연장에는 실패 하였고 결국 국내로 돌아와 학성고등학교에 복학했다.

2.2. 울산 현대 호랑이

2003년에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했으나 울산에 입단하자마자 입은 골절상으로 데뷔 시즌을 거의 통째로 날려버리는 불운을 겪게 된다. 2004시즌까지 컨디션을 추스리기 위해 주로 2군에서 활동하며 2년동안은 8경기 출장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5년부터는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는데, 그 해 11월 20일 K-리그 플레이오프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후반 34분 이천수의 도움을 받아 결승골을 성공시켜 울산 현대 호랑이의 플레이오프 결승 진출에 공헌하였다.

다음날인 11월 21일 상무 입대가 결정되었으나, 피로 골절으로 인하여 2달간 귀가 조치를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진호의 챔피언 결정전 출전 여부가 화제가 되었고, 결국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 교체 투입되어 2005년 K-리그 우승에 공헌하였다.

2006년 광주 상무 불사조에 입대하였으나 부상으로 인하여 그 해 리그에서 9경기를 뛰는데 그쳤다. 2007년 리그에서 20경기를 뛰었고, 2008년 제대하여 울산 현대에 복귀하였다.

제대 후 2년 동안 주전으로 뛰며 12골을 넣었다. 그러나 신예 김신욱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린 2010년 노병준과의 임대 트레이드로 6개월간 포항 스틸러스에서 12경기 7골을 넣으며 포항의 회복에 기여했다.

울산 현대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이진호 선수를 떠나보내게 되자, 울산팬들의 항의글로 울산 현대 구단 공식 홈페이지 자유 게시판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특히 임대 후 완전 이적 협상 옵션이 붙은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면서 항의는 더욱 거셌다. 이진호 선수는 실력도 좋지만, 무엇보다 울산을 사랑하는 선수임을 구단 관계자와 김호곤 감독만 빼고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 ... 하지만 이후 인터뷰를 통해 자기가 직접 임대 이적을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포항의 임대 생활을 잘 마치고, 2011년 울산으로 돌아와 준주전급 선수로 활약했다.

2.3. 대구 FC

2011시즌 설기현, 고슬기, 박승일, 루시오 등 이진호를 대체할 공격진들이 등장해지면서 입지가 줄어들다가 결국 2012년 1월, 대구가 소유권을 갖고있는 이근호를 영입하기 위해 이적료 10억과 함께 대구 FC로 이적하게 되었다. 울산 시절 코치로서 인연이 있던 당성증 코치가 대구에 있기 때문에 대구로 이적하기 수월했다고 밝혔다.

대구로 이적한 이후에도 울산과의 경기 종료 후, 울산 서포터인 처용전사를 향해 큰절을 올리는 등 여전히 울산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며 울산 팬들의 사랑을 받고있다. 그러면서도 대구에 대한 충성심도 상당해 양쪽에서 호평중. 거기에 활약도도 높다.

2012년 6월 24일 부산 아이파크 경기에서는 혼자 2골을 터뜨리며 2:1 대구의 승리를 견인하기도 하였다. 2012년 원톱으로 뛰면서 39경기 9득점의 활약을 보여주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2013시즌을 앞두고 중동 팀으로 이적을 추진하다가 해당 이적이 틀어지면서 동계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며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2.3.1.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3년 6월, 제주 유나이티드 최원권과 트레이드 되어 6개월간 맞임대를 가게 되었다.

제주에서는 17경기 3골 3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임대 생활을 보냈다.

2013 시즌 종료 후 제주를 떠났고 챌린지로 강등된 대구와도 계약 해지하며 FA가 됐다.

2.4. 광주 FC

FA가 된 이후 태국 프리미어 리그 진출을 시도하다가 남기일 감독의 권유로 K리그 챌린지 팀인 광주에 합류했다.

하지만 7경기 출장에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는 미미한 활동을 보여주었고 전반기 종료 후 광주와 계약 해지 후 팀을 떠났다.

2.5. 에어포스 센트럴

2014년 여름 태국 프리미어 리그에 있는 에어포스 센트럴 FC와 1년 6개월간 계약을 맺었다.

반 년 동안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팀이 강등당하고 말았고, 이진호의 연봉을 맞춰줄 수 없던 팀과 계약 해지 후 다시 팀을 떠났다.

2.6. 천안시청 축구단

2015년 2월 15일 당성증 감독이 지휘하던 천안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하였다. 고교 시절 함께 브라질로 넘어갔던 송한복과도 재회했다.

2016년 2월 이진호는 당성증 감독을 찾아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행히 당성증 감독은 제자의 심정을 이해하며 수락했고 천안시청 축구단으로 이적 후 2015~2016 두 시즌 동안 23경기 6득점 2도움의 기록을 남긴 뒤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3. 은퇴 후

은퇴를 하면 대부분 지도자를 생각하는 데 반해 성격상 지도자의 길은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동안 조금씩 모은 돈으로 작은 상가에 임대업을 하며 지내다 에이전트로 오래 일하는 친구로부터 에이전트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KY 스포츠라는 에이전트사에 들어와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4. 플레이 스타일

184cm의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며, 외국인 선수에 밀리지 않는 강한 힘과 골에 대한 강한 집중력을 보인다. 건장한 체구의 공격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유연함으로 빠르고 부드러운 플레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 또한 이진호의 강점 중 하나이다.

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