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4 03:52:02

이담명 승정원사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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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聃命 承政院史草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

1. 개요

조선 현종~ 숙종 시기 영남 남인을 대표하던 명신이자 문익공(文翼公) 이원정(李元禎,1622~1680)의 아들이었던 이담명(李聃命 1646~1701)이 승정원 주서 역임 당시 승정원일기를 작성하고자 매일 임금의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기록하여 남긴 승정원 사초.

현종 13년(1672) 6월 18일부터 숙종 1년(1675) 5월 8일까지 약 3년간 작성한 기록으로 총 161책이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었다.

2. 내용

승정원사초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편찬할 때 사용되는 원고 격인 사초(史草)류로, 승정원에서는 주서들이 매일매일 작성한 승정원사초를 중심으로 하여 기타 여러 장계, 편지, 당후일기, 조보 등을 모아 한 달에 한 권 또는 두 권씩 승정원일기를 만들어 보관하였다. 이러한 승정원사초는 조선 세조 3년(1457)에 세조가 주서를 두 명으로 늘리고 춘추관의 기사관 역할을 겸하도록 하면서 무조건 기록을 철저히 남기라고 명함으로써 처음 작성했다고 한다. 실록의 사초와 동일하게 매달 승정원일기가 완성될 때마다 세초하여 없애는 것이 기본이었다.

현재 남은 승정원사초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의 광주이씨(廣州李氏) 종가에 세전되던 것으로, 현종~숙종 대의 주서였던 이담명이 남긴 글이다. 원칙대로라면 승정원일기가 만들어진 후 모두 세초하여 없애야 했지만, 어떠한 이유에선지 이담명은 자신이 적은 승정원사초 3년분을 그대로 남겨놓았다.

총 161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주서 한 명이 단 3년 동안 작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종실록(22권 23책)과 현종개수실록(28권 29책)을 모두 합친 분량의 3배 정도가 되고, 조선왕조실록 전체 분량의 1/5에 달한다. 이러한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실록의 내용에 정식으로 들어간 이담명 승정원초서의 내용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여, 당시 어마어마하게 방대했을 기록물 작성 문화를 유추할 수 있다.

승정원일기보다 더욱 원천적인 1차 사료로, 현종~숙종대의 정치상황을 매우 자세히 알 수 있고, 또한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의 뼈대가 되는 승정원 주서 초서 작성방법도 알 수 있다.

2007년에 칠곡군의 문익공(文翼公) 이원정(李元禎)의 종가에서 이담명 승정원초서 및 고전유물 100여 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였다.

2024년 현재에도 번역 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 왜냐면 승정원일기 번역 때문이다. 이게 번역이 완료되면 현종, 숙종 때 벌어진 예송논쟁의 연구 흐름을 뒤바꿀 수도 있을 정도로 중대한 사서이기에 빨리하면 빨리 할수록 좋겠지만...

3.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