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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하우케

<colbgcolor=#EBF5D6><colcolor=#000000> 바텐베르크 여공
율리아 하우케
Julia, Prinzessin von Battenberg
파일:Julie_von_Hauke.jpg
이름 폴란드어 율리아 테레사 살로메아 하우케
(Julia Teresa Salomea Hauke)
독일어 율리아 테레자 잘로메아 하우케
(Julia Teresa Salomea Hauke)
출생 1825년 11월 24일
러시아 제국 폴란드 입헌왕국 바르샤바
사망 1895년 9월 19일 (향년 69세)
독일국 헤센다름슈타트 제하임유겐하임 하일링겐베르크 성
배우자 헤센의 알렉산더 공자 (1851년 결혼 / 1888년 사망)
자녀 마리, 루트비히, 알렉산더르 1세, 하인리히, 프란츠 요제프
아버지 얀 마우리시 하우케
어머니 조피아 라퐁텐
형제 마우리시 나폴레온, 에밀리아, 레오폴트, 브와디스와프, 유제프, 조피아, 빈센티, 콘스탄티, 에밀리아 요아나, 알렉산데르
종교 가톨릭 루터교회
1. 개요2. 생애3.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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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계 폴란드 귀족 한스 모리츠 하우케 백작과 소피 라퐁텐의 딸이다.

바텐베르크 가문의 창시자로 스페인의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비 앨리스, 2대 밀포드 헤이븐 후작 조지 마운트배튼, 1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루이 마운트배튼의 친할머니이다.

2. 생애

독일계 폴란드 장군 한스 모리츠 하우케와 독일계 폴란드 의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한스 모리츠 하우케는 여러 뛰어난 업적들을 세운 장군이었다. 폴란드 입헌왕국이 수립된 이후 하우케는 전쟁부 장관과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1829년 폴란드 왕국의 백작이 되었다. 폴란드 총독이던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은 하우케를 그의 오른손이라고 불렀다. 11월 봉기가 일어났을 때 반란을 이끌어달라고 요청받았지만 거절하자 죽임을 당했다.[1] 어머니는 1831년 8월 반란군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5살인 율리아를 포함해 고아가 된 하우케 백작의 자식들을 니콜라이 1세가 거두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데려왔다.

율리아는 스몰니 학원에서 교육받았다. 졸업 이후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태자비의 시녀가 되었다.[2] 시녀로 일하며 마리야 황태자비의 오빠인 헤센의 알렉산더 공자를 알게 됐다. 율리아는 알렉산더와 애인인 소피 슈발로브나의 연애 편지를 중간에서 전달해주던 사람이었지만, 소피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며 그들의 연애가 끝난 후 율리아는 알렉산더의 애인이 됐다.

1851년 초에 결혼을 약속했지만 율리아의 부주의로 결혼한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우연히 알렉산더와 율리아의 애정행각을 목격한 니콜라이 1세는 분노하며 관계를 정리할 것을 명령했다.

알렉산더는 니콜라이 1세에게 결혼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니콜라이 1세는 허락하지 않았다. 황제는 알렉산더가 율리아와 결혼하면 러시아 군대와 궁정에서 알렉산더를 쫓아내겠다고 위협했다. 모두들 알렉산더가 신분이 낮은 율리아와 결혼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블레슬라우로 야반도주했다.

알렉산더와 율리아는 1851년 10월 28일 프로이센 실레지아(현재 브로츠와프와 폴란드)의 브레슬라우에서 결혼했다. 율리아는 왕족과 결혼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기에 이들의 결혼은 귀천상혼으로 간주돼 율리아는 남편의 작위를 따를 수 없었으며 태어날 아이들은 헤센 대공가 계승권을 가질 수 없었다. 알렉산더의 형인 루트비히 3세는 율리아에게 바텐베르크 여백작(Countess of Battenberg)위를 주었다. 후에 바텐베르크 여공(Princess of Battenberg)으로 승격됐다.

3.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녀 에어바흐쇤베르크 공비 마리
(Marie, Princess of Erbach-Schönberg)
1852년 2월 15일 1923년 6월 20일 에어바흐쇤베르크 공 구스타프
슬하 3남 1녀
1남 제1대 밀포드 헤이븐 후작 루이 마운트배튼
(Louis Mountbatten, 1st Marquess of Milford Haven)
1854년 5월 24일 1921년 9월 11일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
슬하 2남 2녀[3]
2남 불가리아 공 알렉산더르
(Alexander, Prince of Bulgaria)
1857년 4월 5일 1893년 11월 17일 요하나 로이싱거
슬하 1남 1녀
3남 하인리히 공자
(Prince Heinrich)
1858년 10월 5일 1896년 1월 20일 영국의 베아트리스 공주
슬하 3남 1녀[4]
4남 프란츠 요제프 공자
(Prince Franz Joseph)
1861년 9월 24일 1924년 7월 31일 몬테네그로의 안나 공주[5]


[1] 아버지의 죽음 이후 3명의 오빠들 마우리시, 요제프, 브와디스와프는 반란에 가담했다. 요제프는 봉기 중에 사망했다. 마우리시는 반란이 실패한 후 외국으로 도피했으며 이후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2] 언니 조피아는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시녀였다. [3]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비 앨리스,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제2대 밀포드 헤이븐 후작 조지 마운트배튼, 제1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루이 마운트배튼 [4] 스페인 빅토리아 에우헤니아 왕비 [5] 몬테네그로 국왕 니콜라 1세의 6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