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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카탄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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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역사
3.1. 19세기3.2. 20세기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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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카탄반도 멕시코 남동부, 벨리즈에 위치한 반도이다. 과테말라의 일부 지역도 유카탄반도에 속해 있다. 유카탄이란 이름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뜻의 마야어[1]에서 유래했다.

세노테가 유카탄반도에 있는 카르스트 지형이다.

유카탄반도 주민들은 마야 문명을 이룬 마야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2. 특징

백악기 말에 소행성이 떨어져 공룡을 포함한 백악기 대멸종을 일으킨 곳이 유카탄반도에 있는 칙술루브(Chicxulub) 지역이다.

기후는 일 년 내내 열대 기후이기 때문에 열대우림이 존재한다. 북부 지역은 건조 기후에 속한다.

대부분의 강이 시냇물 수준으로 작아서 지도로 보면 신기할 정도로 강이 안 보인다.

멕시코 쪽에서는 행정 구역상으로는 유카탄주에 속해 있지만 킨타나 로오주와 캄페체주의 일부도 유카탄반도에 속한다.

3. 역사

역사적으로는 마야 문명이 생겨난 곳이다. 유카탄반도에는 마야 문명 당시의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으로 치첸 이트사가 있다.

마야인들은 피라미드를 세우고 여러 도시들을 세웠다.[2] 당시 마야어는 마야 문자라는 고유 문자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9세기에 들어서면서 마야 문명은 쇠퇴하게 되었다.

16세기에 스페인이 멕시코 일대를 정복하고 유카탄반도를 정복했다. 다만, 아즈텍 문명과 달리 유카탄반도는 여러 부족들로 나뉘어져 있었고 일괄적인 행정 체계 확립이 어려웠다. 이후 유카탄반도 전역은 누에바에스파냐라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유카탄반도에 위치한 벨리즈 일대는 벨리자라는 이름의 스페인 식민지였지만 18세기에 영국이 마호가니와 관련된 사업에 진출하면서 벨리자를 두고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다. 벨리자는 영국과 스페인이 협정을 체결해서 영국령으로 인정되었다.

벨리자 일대는 히스패닉들이 이주했다.

3.1. 19세기

1821년에 멕시코가 멕시코 제국으로 독립하면서 중앙아메리카에 해당하는 지역들도 1823년까지 지배했다. 유카탄반도에 속했던 국가들 중 과테말라는 1823년에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의 일부로 멕시코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유카탄반도의 대부분은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벨리즈 지역은 과테말라와 영국이 영토 갈등을 일으키면서 19세기부터 영국령 온두라스라는 이름으로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3.2. 20세기

20세기 후반에 영국령 온두라스는 벨리즈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과테말라 측은 벨리즈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벨리즈 측은 영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4. 관련 문서



[1] 스페인 사람들이 유카탄반도에 처음 발을 디디고 마야인들을 만나 대화를 시도했는데 당연하게도 마야인들이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한 것을 스페인인들이 지명으로 착각하여 굳어졌다. [2] 유카탄반도에는 마야 문명의 도시 유적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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