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楡橋신라 시대 서라벌 남천에 축조한 교량.
월정교, 일정교와 함께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다리 중 위치가 확인된 다리이다.[1]
2. 상세
위치는 월정교에서 서쪽 20m 위치에 있었다. 폭 6m 정도로 지금으로 치면 2차선 도로 정도였다. 2024년 현재 다리는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돌다리인 월정교, 일정교와 달리 나무 목재로 만든 목조 다리였다. 유(楡)자는 느릅나무라는 뜻이다. 다만 1986년 발굴조사 당시 나무조각 수종을 분석해 보니 이름과 달리 주 재료는 잣나무였고, 일부분만 느릅나무였다고 한다. 몇백년은 사용했을테니 꾸준히 보수하면서 수종이 섞인 것으로 여겨진다.
월정교가 생기기 전에 서라벌 중심가에서 남쪽의 남산(경주), 남산 신성, 그리고 사량부, 모량부, 황산나루(지금의 양산시)와 낙동강 방향으로 갈 때 이용하던 다리였다. 예를 들어 김유신이 집(제매정택)에서 천관녀의 집(천관사지)으로 말 타고 갈 때도 나룻배를 타지 않고 말이 걸어서 다다랐으니, 이 다리를 걸어서 지났을 것이다.
원효와 요석공주가 만난 장소기도 하다.
경덕왕 19년(760)에 근처에 튼튼한 돌다리 월정교와 일정교를 만들면서 유교의 역할은 축소되었고, 이후 언젠가 무너져 터만 남게 되었다.
[1]
그 외엔 문헌기록에는 있지만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들(금교, 귀교, 굴연천교, 신원교, 남정교, 덕정교 등), 그리고 기록에 등장하지 않지만 교량 유지는 남아있는 곳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