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88년 8월 13일 |
함경도
정평도호부 부남사 풍양리 (현 함경남도 정평군 구읍리) |
|
사망 | 1950년 3월 10일[1] (향년 61세) |
서울특별시 | |
본관 | 원주 원씨[2] |
초명 | 원종린(元鍾麟) |
이명 | 원종제(元鍾濟)[3] |
호 | 일우당(一愚堂) |
가족 | 배우자 노문제, 차남 원주연, 4남 원충연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377호 |
상훈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독립유공자 원주연은 그의 차남이며, 원충연 반혁명 사건의 주동자 원충연은 그의 넷째 아들이다.
2. 생애
1888년 8월 13일 함경도 정평도호부 부남사 풍양리(현 함경남도 정평군 구읍리)에서 아버지 석천(石泉) 원의성(元宜性, 1844.3.22. ~ 1903.7.22.)[4]과 어머니 창원 박씨(昌原 朴氏, 1850.1.6. ~ 1922.9.4.)[5] 사이에서 7형제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일찍이 경기도 여주군에서 신흥학교(新興學校) 교사로 근무하다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귀향하여 대서업(代書業)에 종사하였다. 1914년 중화민국 지린성 옌지현(延吉縣) 류다오거우(六道溝) 용정촌(龍井村)[6]을 거쳐 1915년 지린성 허룽현(和龍縣) 터우다오거우(頭道溝)[7]으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 대서업을 경영하였다. 이후 비밀리에 한국 독립운동에 우호적인 활동을 지속했다는 이유로 일본 제국 영사관으로 압송되었고, 1916년 1월부터 1919년까지 3년간 중화민국에 체류하는 것이 금지되는 동시에 함경북도 회령군 헌병분대로 인도되어 고향으로 쫓겨났다.
1919년 3월 5일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이 서명한 기미독립선언서를 구해 읽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기로 결심하였다. 이후 자신의 집에서 이대관(李大關)을 만나 만세시위 계획을 말한 뒤 태극기 1백여매를 제작하였으며, 배홍청(裵弘靑)·노용빈(盧龍斌)·주호택(朱鎬澤)에게도 만세시위계획을 의논하여 찬성을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참여하도록 권유하였다.
또한 3월 6일에는 장예학· 노문표·윤화락(尹和洛)의 집을 방문하여 각각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이종하(李宗夏)에게 대형 태극기 2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3월 7일 약속대로 정평군 부내면 풍남리[8]에 많은 주민들이 모이자,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기미독립선언서를 토대로 취지연설을 한 뒤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일본 제국 육군 헌병에 의하여 강제로 시위가 해산되었다.
그후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1919년 4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를 제기하여 1919년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원심 판결이 취소되었으나 형기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이에 상고를 제기하였으나 1919년 6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혐의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었다.
1950년 3월 10일 서울특별시에서 사망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유해는 당초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에 배우자 전주 노씨(全州 盧氏) 노문제(1885.4.13. ~ 1950.12.23.)[9]와 함께 안장되었으나 1995년 5월 10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이장되었다.
[1]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기준. 대전현충원묘적부 및 원주원씨대동보 시중공계편 권9 694쪽에는 3월 11일,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에는 3월 15일로 각각 상이하게 기록되어 있다.
[2]
시중공계(侍中公系)-교리공후(校理公后)-정민공파(貞愍公派) 28세 종(鍾) 항렬.
[3]
2004년 12월 11일 경향신문 기사와
2003년 11월 3일 사이버뉴스24 기사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원충연의 아버지를 함경남도 정평에서
3.1 운동을 주도한 것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어 건국훈장을 받은 '원종제'로 쓰고 있는데, 정작 함경남도 정평 출신으로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은 원종제가 아닌
원종집이다. 아마 원종집의
潗을
濟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싶다.
[4]
자는 치강(稚綱).
[5]
박치경(朴致京)의 딸이다.
[6]
현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
[7]
현
중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화룡시 터우다오진(頭道鎭)
[8]
현 정평군 구읍리
[9]
노유옥(盧惟玉)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