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움베르 드 그로슬리 Humbert de Groslé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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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90년 | |
프랑스 왕국 파싱 | ||
사망 | 1434년 | |
프랑스 왕국 리옹 | ||
아버지 | 앙드레 드 그로슬리 | |
어머니 | 제네바-룰린의 베아트리스 | |
직위 | 마콩의 집행관, 리옹의 세네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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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에서 샤를 7세의 편에 서서 부르고뉴군에 맞섰다.2. 행적
1390년경 프랑스 왕국 파싱에서 파싱의 영주인 앙드레 드 그로슬리와 제네바-룰린의 베아트리스 사이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마콩의 집행관이자 리옹의 세네샬을 맡았던 장 드 그로슬리의 조카였다. 그가 속한 그로슬리 가문은 리옹과 제네바 사이의 오베르뉴론알프 지역에 속한 부기 지방의 명문가였다. 1418년 7월 샤를 7세에 의해 리옹의 세네샬이자 대장에 선임되었으며, 1420년 라 세르베트에서 파르디악 백작 베르나르 8세 다르마냐크와 함께 로쉐바론, 살레노브 영주로 구성된 부르고뉴군에 맞서 싸웠다.1422년 포레즈에서 봉기를 일으킨 농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밀라노 공작으로부터 500명의 창병과 1000명의 궁수로 구성된 부대를 지원받았다. 1423년 샤토 드 라 뷔시에르를 포위하고 있던 부르고뉴 원수 장 2세 드 툴롱옹을 급습해 생포했다. 그러나 1424년 부르고뉴군이 샤토 드 라 뷔시에르를 공략하는 걸 막지 못했다. 이후 도팽 샤를의 지시에 따라 부르고뉴국과의 여러 협상에서 참여해 평화 협상을 잇따라 논의했다. 1424년 9월 샹베리에서 열린 협상에 참여했고, 몽뤼엘과 바제르에서 열린 협상에 참여했고, 1427년 11월 엔에서 열린 협상에 참여했으며, 1431년 9월 부르앙브레스에서 열린 회의에도 참여했다.
1430년 도피네 지방을 정복하기 위해 부르고뉴 공국과 사보이아 공국의 지원을 받은 오랑주 공국의 공작 루이 2세 드 샬롱아를레에 맞서기 위해 도피네 총독 라울 6세 드 고쿠르, 카스티야 출신 용병대장 로드리고 데 빌란드란도와 함께 병사 1,600명을 이끌고 진군했다. 1430년 6월 11일 안통 전투에서, 로드리고가 용병대를 이끌고 안통에서 콩롱비에로 이어지는 부와 데 프렁쉬스 숲길 정면에서 오랑주군 4,000명을 대적하는 사이에 라울 6세와 함께 적의 양 측면을 요격해 격멸했다. 이후 도피네 원수로 선임되었고, 1431년 부르고뉴 공국의 영토였던 샤롤레에 대한 습격 작전을 실시했다.
14334년에 리옹에서 사망했고, 그로슬리 가문이 대대로 묻혔던 성보나벤투라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는 생전에 도피녜 지방의 브로텔 가문 출신 여인과 결혼해 9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전해지나, 그가 사망했을 때는 어떤 자녀도 살아있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재산은 매각되어 친척인 바레이 가문에 넘겨졌다.